사법지원 원년의 역설… 법정 입구서 멈춘 휠체어

파이낸셜뉴스       2026.02.09 15:49   수정 : 2026.02.09 16:27기사원문
예규는 생겼지만, 휠체어 장애인에 불친절한 법정
노후 청사·부족한 예산…시설 접근성은 여전히 과제
"베리어프리 법정 최소 1곳은 필요...전향적 검토해야"





사법부가 장애인과 고령자, 임산부를 지원하는 규정(예규)을 올해부터 새롭게 시행했다. ‘배려’에 가까웠던 사법 약자 지원책을, 사법부가 스스로 이행을 약속한 ‘엄격한 기준’으로 격상시킨 것이 골자다. 대법원은 이를 토대로 올해를 ‘사법 접근성 강화 원년’으로 선언했고, 조희대 대법원장 역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법 지원을 계속해서 늘려가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법원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장애인 등이 법정 안에서 마주치는 물리적 걸림돌부터 인적 지원, 복잡한 제도적 한계까지 곳곳에 장벽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법원의 시설과 예산 실태, 전담 지원 제도의 실효성, 난해한 판결문 접근성 등 사법 약자를 소외시키는 현실을 3회에 걸쳐 집중 점검한다. [편집자 주]


[파이낸셜뉴스] “아직도 법정에 휠체어가 실제로 들어가기 어렵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출입로부터 피고인석까지 충분한 이동 공간이나 경사로가 확보되지 않은 곳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죠”(장애인 사건을 다수 대리한 김도윤 국선전담변호사)

“지체장애인을 고려한 당사자석·증인석 배치나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유도블록 설치는 여전히 미흡합니다”(이승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

9일 기자가 직접 찾은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 형사 표준법정의 모습은 이러한 지적을 그대로 보여줬다. 대부분 법정은 3층 이상 상층부에 위치해 주출입층에서 승강기를 타야만 이용이 가능했다. 이마저도 승강기는 전동휠체어 한 대만 들어서면 여유 공간이 없을 정도로 좁았다. 장애인이 다른 이용객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법정 안도 사정은 비슷했다. 방청석은 28석이 마련돼 있었으나,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좌석은 출입문 앞 양쪽에 각 1석씩 총 2석뿐이었다.

또 방청석과 당사자석 사이는 레일형 난간과 약 8cm 높이의 단차로 구분됐다. 이로 인해 피고인석으로 이동하려면 경사로를 이용해야만 했다. 지팡이를 짚은 노약자라면 경사로를 오르내릴 때 동행인의 부축이 반드시 필요해 보였다.



■'지침'라는데, 현실은 '8cm의 단차'

대법원이 연초에 내놓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사법접근 및 사법지원에 관한 예규’는 △법정 내 휠체어 통로, 장애인용 당사자석·증인석 설치를 구체적 규격으로 명시하고 △수어 통역, 점자 자료 제공, 사법지원관(도우미) 배치 근거를 마련하며 △판결문, 소송 서류 등을 사법 약자가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제공하는 것에 노력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현장은 첫 단계부터 대법원의 선언과는 상당한 차이가 났다. 특히 법정의 물리적 접근을 의미하는 '시설 접근성'은 사법절차 참여의 출발선으로 인식되는데도 여전히 실질적인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장애인에 대한 사법시설 접근 제한 해소는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된 숙제다. 사법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 58개 법원 청사 중 18곳(31%)이 장애인 편의시설 적정설치율에서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 평균(80.7%)을 따라가지 못했다.

또 사법정책연구원이 20개 법원을 대상으로 추가 조사한 결과 주출입구 접근로의 폭과 기울기, 바닥 마감 상태 등 세부 항목의 적정설치율은 이전 조사 때보다 더 낮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문 앞 경사도가 법적 기준인 3.18도 이하를 충족한 청사는 13곳에 불과했다.

헌법 가치를 수호한다는 법원이 정작 현실에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헌법 제11조를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일부에서 개선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2017년 신축돼 장애인 시설 관련 우수등급을 받은 서울동부지법 형사법정의 경우, 내부 단차를 완전히 없애 휠체어 사용자와 보행자 모두 제약 없이 이동할 수 있다.

■7년 전보다 못한 예산, 멀기만 한 ‘사법 평등’

문제는 이러한 '베리어프리(장애인과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가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개조한 형태)' 법정이 예산 장벽에 가로막혀 전국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사법부의 '장애인 등 편의시설 확충 및 보완' 예산은 2019년 9억9700만원, 2020년 9억3700만원에서 대폭 줄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5억2600만원 수준에 머물렀다. 올해는 관련 예산이 다시 7억2100만원까지 늘었으나, 7년 전과 비교하면 72% 수준에 그친다. 이마저도 국민 사법 접근권 향상에 청사 환경개선 예산을 합친 금액이다.


현장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우리나라 법정은 구조적으로 좁아 휠체어 이용자가 아예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법정 접근성 문제는 결국 예산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이어 "적어도 전국에 베리어프리 법정 하나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시설 접근성 예산에 대한 적극적인 확대와 전향적인 검토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scottchoi15@fnnews.com 최은솔 정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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