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 색깔보다 '내 꿈'이 중요해"… 金 향한 18세의 돌진, 실패마저 빛났다
파이낸셜뉴스
2026.02.10 07:00
수정 : 2026.02.10 09:20기사원문
韓 여자 설상 최초 '올림픽 메달' 유승은, 동메달 획득
"안전하게 타면 은메달, 도전하면 금메달 혹은 꽝"… 그녀의 선택은 '도전'
설원 나뒹굴었지만, 세계는 18세 소녀의 '심장'에 박수를 보냈다
[파이낸셜뉴스] 계산기 따위는 두드리지 않았다. 경우의 수 같은 건 겁쟁이들의 핑계일 뿐이었다.
그녀가 리비뇨의 밤하늘을 향해 몸을 던진 순간, 메달의 색깔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중력을 거스르는 인간의 위대한 의지만이 설원 위에 남았다.
유승은은 10일(한국시각)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 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빅에어 결선에서 최종 3위를 기록,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스노보드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자, 여자 선수 최초의 결선 진출이라는 대기록이다.
하지만 이날 전 세계가 주목한 것은 그녀의 목에 걸린 동메달이 아니라, 마지막 3차 시기에서 보여준 '미친 승부수'였다.
상황은 이랬다. 2차 시기까지 유승은은 압도적인 1위였다.
하지만 압도적인 '세계 1위' 무라세 코코모(일본)와 뉴질랜드가 낳은 동계 올림픽 스타 조이 사도스키 시넛(뉴질랜드)이 3, 4차 시기에서 미친 듯한 점수를 쏟아내며 순위가 뒤집혔다.
운명의 마지막 3차 시기. 유승은은 출발대에 섰다. 이미 동메달은 확보된 상황. 적당한 난이도의 기술을 안정적으로 구사한다면 은메달까지는 노려볼 수 있는 배치였다.
조이를 꺾기 위해서는 85점 이상만 얻어내면 됐다. 85점도 높은 점수지만, 2차시기의 83.5점 연기에서 착지만 조금 더 안정적으로 하면 되는 상황.
실수를 줄이고 안전하게 착지해 시상대 한 계단을 더 올라가는 것, 그것이 보통 선수의 선택이다.
하지만 18세의 '승부사' 유승은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은 은메달이 아닌, 오직 가장 높은 곳 '금메달'을 향해 있었다. 1위 무라세를 넘으려면 89점 이상의 초고득점이 필요했다.
"Go Big or Go Home." (크게 지르거나, 집으로 가거나)
유승은은 주저 없이 보드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 난도의 기술, 아니 그 이상의 한계에 도전했다. 코코모가 했던 4회전 이상의 회전수와 그만큼의 비거리가 필요했다. 공중에서 몸을 비틀고 회전하며 그는 금빛 착지를 꿈꿨다.
결과는 실패였다. 회전수는 충분했지만, 착지 과정에서 중심을 잃고 설원 위로 나뒹굴었다.
점수판에는 3차 시기 점수가 기록되지 않았고, 순위는 3위로 확정됐다.
그러나 실패한 그녀의 얼굴에 눈물은 없었다. 툴툴 털고 일어난 유승은은 헬멧을 고쳐 쓰며 환하게 웃었다.
마치 "봤지? 나 쫄지 않고 던졌어!"라고 외치는 듯한 당당한 미소였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팬들은 메달 색깔을 떠나 그녀의 용기에 기립 박수를 보냈다.
지난 1년간 발목이 부러지고, 팔꿈치가 빠지고, 손목이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스노보드를 놓지 않았던 독종. 그 지독한 승부 근성이 올림픽 결선 마지막 순간, 가장 화려하게 타올랐다.
안전한 은메달보다 위험한 금메달을 택한 18세 소녀의 '아름다운 도박'. 비록 금메달은 놓쳤지만, 유승은은 우리에게 올림픽이 무엇인지, 도전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증명했다.
그녀가 잃은 것은 은메달이지만, 얻은 것은 전 세계의 존경이었다. 유승은의 스노보드 인생은 이제 막 첫 번째 점프를 뛰었을 뿐이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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