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생명으로 보던 그 마음, AI 시대에 되찾아야 할 태도

파이낸셜뉴스       2026.02.10 18:21   수정 : 2026.02.10 19:42기사원문
(5) 돌에 담은 마음, 돌신앙
달이나 화성 모두 '돌'이건만
자본주의에선 '돈'이라 불러
원래는 사람의 마음 담는 그릇
日은 도조신 등 石神으로 모셔
돌 신앙 탄생 뿌리는 '거석문화'
제주 설문대할망과 모아이 석상
영혼을 가진 생명처럼 존중해와
아니미즘에 깃든 인간 교감 능력
차가운 AI 시대 속 필요한 유산



계수나무 아래 떡방아를 찧는 옥토끼 이야기가 새롭다. 달 표면의 지형 때문이고, 화성의 표면을 보여주는 위성사진도 풍화된 돌의 모습이다. 인공위성으로 우주생명체 찾기의 화두가 변질돼 희토류가 목적이라는 마각이 드러났으니, '돌=돈'의 자본주의 방정식에 대한 확신은 인류종말의 '둠스데이' 시계 85초라는 빨간불과 무관하지 않다.

달과 화성이 지구와 완벽하게 공유하는 것이 돌이지만, 인간 세계의 돌은 그냥 돌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담은 돌이다. 나의 선배 교수들 중에는 '돌엄마'를 섬기는 분도 있다. 아니미즘의 마음이다. 명줄이 돌처럼 길기를 바라는 생모께서 아들을 돌엄마에게 입양시켰단다. 그 마음이 전승되어, 지금도 해변과 산에서 돌탑을 쌓는 구도자들이 있지만, 돌과 사람의 관계가 일본과 한국에서 다르게 나타나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부터일까.

■마을마다 서있는 두 개의 석인상

도쿄 시내나 야마가타의 산골 모퉁이에서도 전국적으로 만나는 석인상 두 개가 나란히 있다. 사방이 뚫린 작은 지붕의 누옥에 안치된 '도조신(道祖神)'인데, 지방별로 크기는 다르지만, 위엄이나 권위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얌전하고 따뜻한 형상이다. 남녀 한쌍이라는 점을 근거로 성신앙의 원조라는 즉흥적 해석은 인간중심주의의 표현이다. 조선의 장승과 대비될 법한 인간 심성의 심원을 겨냥하는 집단무의식의 민중적 표현이리라. 옥스퍼드대학 비교종교학자 막스 뮐러의 '인류학적 종교론'(1892년)의 핵심인 '의인화' 개념에 적중된 사례다. 노수거목으로 둘러쳐진 '호코라(祠)'들은 동네의 마츠리와 함께 지역 수호신을 모시는 신사(神社)를 통한 피라미드 같은 조직의 말단이며, 궁극적으로는 이세신궁에 연결된다. 아침 등교길의 초등학생도, 저녁장을 보러 가는 중년 부인도,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잠깐의 묵도 시간을 갖는다.

신앙 기반인 돌은 '이시가미'라고 한다. 야나기타 쿠니오의 '이시가미몬도'(石神問答, 1910년)가 이 분야의 최초일 뿐 아니라 석신에 관한 대표적인 서물이다. 백년 전 일본 전역에서는 석신을 '시야쿠지'라고 읽었다. 부적으로 사용되는 것들을 총칭해서 시야쿠지라고 하는데, 그 발음이 '샤쿠지'(杓子·주걱)와 비슷해서, 귀신 쫓는 부적으로 돌 대신 출입문에 주걱을 걸어두는 습속이 지금도 강하게 전승된다.

아무도 그것이 왜 '이시가미'로 읽게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토속신앙 대상으로서 시야쿠지를, 지식 노동자들이 자기네들 편의로 훈독하지 않았을까? 민중의 토속을 연구 대상으로만 타자화한 관점을 쌓아서 이론이랍시고 만들어내는 폐습의 결과다. 학문을 권력의 시녀로 간주한 누습은 주자학이나 서학(西學)이나 마찬가지다. 입신양명을 최고 가치로 삼는 주자학의 변방과 하청제국주의의 일본을 경유한 서학의 변방이 복합된 중층식민성의 한국학계가 감당해야 할 소명이 있다.

지식 노동자들의 '마름'식 권위주의를 밑바닥부터 갈아엎는 일이다. 우리가 해야 할 쟁기의 역할이다. 그렇지 않으면, 진리 탐구를 향한 학문은 오리무중으로 헤맬 것이고, 세상을 향한 지배와 헤게모니가 개입된 제국주의적 발호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가자의 난민과 우크라이나 전쟁과 '트럼프 관세'라는 것도 이런 습성에 꼬리와 꼬리를 물고 연결된 결과들이다.

돌신앙은 기록된 역사보다 훨씬 오랜 거석문화의 유산이다. 일만년 이전부터 급속히 지구의 빙하가 녹으면서 대전환을 맞은 인류의 삶을 신석기문화라고 이해한다. 한반도 건너편 땅덩어리의 일부가 물에 잠기면서 동해와 대한해협 그리고 열도가 탄생했다. 일본 고고학에서 승문해진(繩文海進)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며, 그것은 동남아시아 도서의 해역까지 이어진다.

이 현상에 상상력을 증폭시키면, 태평양에 가라앉았다는 무(Mu) 대륙의 신화가 된다. 해빙으로 시작된 자연유산이 지금도 쿠로시오(黑潮)라는 이름으로 흐른다. 해류의 폭이 수십㎞, 시속 5해리로 달리는 난류의 대형 물 덩어리다. 해류에 실린 인류이동이 남에서 북으로 향하였다. 살림살이와 항해지식을 구비한 사람들(오스트로네시안)은 통나무 속을 파낸 배라는 지혜의 산물로 신천지를 찾았고, '마레비토'라는 이름의 내방신(來訪神) 환대를 받았던 곳이 오키나와다. 여기에 착안했던 일본학자들은 70년대에 '흑조문화회'를 조직해, 필리핀부터 대만을 경유해 일본 남부에 이르는 탐사 결과, 거석문화의 북상을 밝혔다.

보다 더 거시적 안목의 결여라는 아쉬움도 남겼다. 인도네시아와 대만을 거쳐서 유구열도와 한반도와 요동으로 전해졌던 거석문화가 일본에서는 큐슈에서만 그 흔적을 남겼다. 미크로네시아의 얍섬에 있는 거대한 돌돈(石貨)도 거석문화의 하나다. 폴리네시아 끝에 자리한 이스터섬의 '모아이'에 예술감각으로 화답하는 현대판 모아이들이 미야자키 해변에 동남향으로 도열했다. 그 옆에서 시간의 깊이를 더해주는 승문해진의 신화는 '거녀의 빨래판'이라는 이름으로 전승된다. 일만년이란 시간의 축시(縮時)와 1만㎞나 되는 공간의 축지(縮地)가 결합된 공양의 주문이 공명한다. 제주도의 설문대할망 신화와 동일 계통의 유산이며, '구약' 노아방주의 홍수신화와 동시대의 이야기다. 말하자면, 서아시아 대륙의 홍수신화와 서태평양 해양의 거녀신화는 해빙이라는 기후변화의 인간 기억을 동원(同源)으로 삼은 해빙신화의 쌍둥이다.

■거석문화·불교가 결합한 석신숭배

시베리아 대륙의 동쪽과 베링해를 건넌 알라스카에서 빙하시대를 살았던 '팔레오-아시안'의 일부가 아이누(Ainu)다. 해빙의 중개로 이루어진 팔레오-아시안과 오스트로네시안의 만남은 유전자와 언어의 교환으로 역사되었다. 일본 지명에 아이누어의 흔적이 남은 것은 구석기시대의 유산이고, 일본어의 모음체계는 오스트로네시안에서 비롯됐다. 열도에서 아이누와 오스트로네시안의 교혼으로 발생한 왜(倭)가 열도의 기층민이 되었다는 가설은 분자생물학과 역사언어학의 협업으로 논증된다. 그들이 거석문화의 유산인 돌신앙을 간직한 결과가 석신으로 이어졌다. 후일 대륙으로부터 도래인들이 전해준 불교의 보살상과 오스트로네시안 유산의 돌신앙이 습합되어 '이시지조(石地藏)'의 전통인 도조신으로 자리 잡았다.

살다보면, '생즉고(生卽苦)'라는 부처의 말씀을 학습한다.
그 과정의 응어리진 마음을 달래주는 현재진행형의 유산이 석신이며, 기복신앙과는 무관한 돌에 담은 마음이 석신문화의 정수다. 그 마음을 읽어보고 싶은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이 누적된 현상이 감성민속지(感性民俗誌)를 지향하는 인류학자의 작업이다. 인간의 마음을 읽고자 하는 심리학과 철학이 외면한 또 다른 마음은 없을진데, 아니미즘 심성이 AI시대를 헤쳐가야 할 큰 질문이 된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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