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으론 천 냥 빚 못 갚는다

파이낸셜뉴스       2026.02.10 18:30   수정 : 2026.02.10 18:30기사원문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오래된 교훈이 빛을 잃고 있다. 우리네 정치는 늘 말(言)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글로벌 경제 질서는 물론이고 국내 경제 구조가 새로이 재편되는 지금, 안타깝게도 말은 더 이상 신용이 되지 않는다.

행동과 결과만이 평가 기준이 되는 시대다.

대미투자특별법 논란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상 압박 속에서 지난해 한국은 "대미투자에 나서겠다"는 말로써 그를 설득했다. 한국은 대미투자특별법을 마련하기로 했으나, 관세협상을 마치고 두 달이 지나도록 집권 여당은 법안을 발의하는 데 그쳤고 이를 처리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돌변했다. 15%로 인하된 품목별 관세를 재차 25%로 인상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공천헌금' 등 집권 여당 내 각종 논란과 여야 간 국회 비준 동의 여부 등을 두고 다투면서 시간을 소모한 대가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가 뱉은 말의 공백을 행동으로 되받아친 것이다. 결국 국회는 지난 9일 대미투자특별법 처리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부랴부랴 구성했다.

약속은 있었지만 실행은 없었고, 그 대가는 외교·통상 리스크로 돌아왔다. 트럼프의 국제질서 재편 방향성에 대해 옳고 그름을 떠나 국제관계 속에서 상호 간 합의한 조건조차 정치가 충족시키지 못한 것을 냉정히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향한 규제 시도 역시 닮은꼴이다. 시대착오적인 규제와 혁신 의지를 억제하는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의 '강짜'는 국내 디지털자산 업계를 좀먹고 있다. '신중론'이라는 말로 디지털자산 거래소 대주주의 지분율을 제한해 사업 자율성을 침해하고, 전통 은행에만 발행을 열어주면서 핀테크 등 혁신기업의 신규 사업 진출을 막으면서다.

이에 집권 여당의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가 금융위가 내세운 방안을 거부하며 자체적인 안을 마련했음에도 결국 당 정책위원회가 이를 비토하면서 업계로부터는 '배신'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 정치가 정작 혁신을 말하면서도 책임 있는 결단은 끝내 미룬 셈이다.

국제사회와 시장은 이미 한국의 언행불일치를 냉정히 평가하고 있다.
약속한 법을 제때 못 만드는 정치, 기회를 눈앞에 두고도 결정을 회피하는 정치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말만으로 천 냥 빚을 갚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정치에 던져진 질문은 하나다. 언제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답할 것인가.

gowell@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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