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입금지' 경고판를 무시한 차에겐 권리가 없다

파이낸셜뉴스       2026.02.15 07:00   수정 : 2026.02.15 09:42기사원문
넷플릭스 시리즈 '악연'
불법사금융업자의 '품위'
선을 넘으면 후회할 수밖에
작은 불법의 후폭풍

재영 "큰돈 한번 벌어 볼래? 네가 일만 잘 끝내면 한몫 잡을 수 있어"
길룡 "얼마짜리야?"
재영 "6천"
길룡 "액수는 마음에 드는구나..말해 봐라"
재영 "사람 하나 죽여줘"
길룡 "누구 죽이면 되니"
길룡 "내 아버지"
-넷플릭스 시리즈 '악연'
강간과 노름으로 얼룩진 '막장남' 박재영(이희준)은 결심한다. 사실 결심당한다. 재영에겐 누구를 죽일 깡다구도 없다.

생명보험금 5억원을 받기 위해 아버지를 죽여하만 하는 재영. 깡패도 못 된 양아치 재영은 전직 삼합회 두목 장길용(김성균)을 찾아가, 부친 살해를 의뢰한다. 재영의 아버지를 죽이려다 엄한 경찰을 죽인 길용은 중국으로 도망간다. 얽히고설킨 악연은 꼬일대로 꼬인다.

진입금지 경고를 무시한 차에겐 권리가 없다. 간혹 너무 바쁜 날. 초행길 일방 통행, 진입금지 경고판을 봤지만, 눈 앞의 목적지에 지각하기 싫어 들어갈 때가 있다. 꽝꽝 막히는 500m를 돌아가기 보다 '위법'한 선택을 한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어쩐 보험 사기꾼들은 그런 자동차만 기다리고 있다가 들이박는다. CCTV가 즐비한 요즘 세상엔 쉽지 않은 '고전 수법'이다. 데이터는 사고가 아니라 사기임을 보인다. 우연따위 믿지 않는 보험사들은 연속해서 보험금을 타먹는 이들에게 순순히 보험료를 내주지 않는다. 비극의 시작은 어디일까.

재영도 알고 있다. 철륜을 어기면, 금도를 건너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쯤은 안다. 아버지를 죽인은 일은 지질하고 궁상맞은 자신이 보기에도 문제가 많다. 하지만 소박한 도덕의식보다 이자가, 사채꾼의 협박이 더 무섭다. 이거 한번이면 삶을 뒤집을 수 있을 것 같다. 재영인 골방 담배냄새에 절은 소파에서 소주를 마시며 시청하는 방송은 명품 시계 리뷰다. 하이엔드 소비를 빙자한 ‘투자’ 콘텐츠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메꿀 마지막 찬스라고 생각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악연' 속 사채업자와 장기 밀매업자는 잘 먹고 잘 산다. 이 시리즈는 만화 속 권선징악이 아니라 현실 속 인과응보의 세계관을 말한다. 사채업자는 재영에게 없는 돈을 내놓으라며 때리거나 욕을 하지 않는다. 정중하게 요구한다. “1달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선을 지킨다.

세상이 흉흉해지면 인륜이 땅에 떨어지는 걸까, 윤리가 사라져서 세상이 이모냥인걸까. 질긴 악연이 죽음으로 죽임으로 이어지는 동안 이 질문의 의미는 사라진다. 평범한 사람들은 비켜갈 수 있는 순간을 극단적으로 선택했을 때 ‘고어’가 남았다. 채무자의 장기를 내다 팔면서 그 어떤 동요도 느끼지 않는 사채업자. 물론 현실의 사채업자는 언제나 허구를 뛰어넘는다.

코스피 지수가 연일 역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시대, 유혹에 빠지는 이들이 많다. 마지막 한번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곳곳의 경고판을 무시한 채 지름길을 찾는다. 서민금융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저신용자 대상 설문조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제도권 금융에서 불법 사금융으로 이동한 저신용자가 약 2만9000~6만1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청년층(20~30대)이 불법사금융에 노출되는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층의 불법 사금융 이용 경험 응답률은 2022년 7.5%에서 2023년 9.8%, 2024년 10.0%로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지난 2024년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불법대부는 1만4786건으로 2023년의 1만2884건과 비교해 1902건(14.8%) 증가했다. 하루에 40.5건씩 신고가 접수된 것이다. 불법 사금융은 법정 최고이자율인 연 20%를 초과해 이자를 받거나 미등록 대부·불법 채권추심 등 법 위반으로 돈을 빌려주는 행위다.

불법사금융의 가장 큰 문제는 갚지 못한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한데 따른 징계성 협박이다. 현실의 사채업자들의 추심 방식은 매일 매순간 더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 채무자에게 얼굴이나 신체 사진을 '담보'로 삼는 건 일상이다. 지인 연락처를 요구해 합성물 제작이나 협박에 악용한다.

합법 대출로 위장한 광고 뒤에는 불법 사금융업자가 숨어있는 경우도 많다. 정상 대출을 해준 뒤 상환이 어려워지면 불법 대출을 하고 추후 단계적으로 사진 요구, 지인 협박 등 추심 강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심각한 것은 청년층 피해가 크다는 점이다. 서울시 특별상담 기간 접수된 민원의 53%는 청년층이었다. 이들 상당수는 연 60% 초과 고금리 대출이 법적으로 무효라는 사실조차 몰라 피해가 장기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mj@fnnews.com 박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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