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 뒤의 감독들 ‘작은 팀에서 큰 성과를 만드는 리더십의 조건’
파이낸셜뉴스
2026.03.01 09:00
수정 : 2026.03.01 09: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뛰어난 개인이 모여 있는데도, 왜 어떤 팀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걸까?
메달 뒤에 서 있는 감독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리더십의 구조다.
2월 12일 밤, 리비뇨 스노파크.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17세 고등학생 최가온은 1, 2차 시기를 연달아 실패했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올림픽 무대에서, 두 번의 추락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마지막 3차 시기에 다시 파이프 앞에 섰다. 그리고 90.25점을 받으며 한국 설상 종목 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어릴 때부터 우상으로 따르던 클로이 김을 넘어선 순간이었다.
경기 후 최가온은 말했다. "파이프와 나 자신, 둘만의 싸움이라고 생각했어요. 멘탈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실패 앞에서 전략을 바꿀 줄 아는 판단력,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훈련된 멘탈의 결과였다.
37세 스노보더 김상겸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은퇴할 나이’로 분류되는 선수가 이번 대회에서 생애 첫 올림픽 은메달을 따냈다. 코칭팀은 그의 체형적 약점을 숨기거나 극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대신 명확하게 선언했다. "우리는 체구가 작으니, 민첩함과 정교함으로 승부한다."
약점을 보완하려 하지 않고, 강점으로 재설계한 것이다. 갤럽(Gallup) 강점진단의 개발자이자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혁명(Now, Discover Your Strengths)』의 저자인 마르쿠스 버킹엄(Marcus Buckingham)은 리더가 구성원의 강점 극대화에 집중할 때 팀 생산성은 평균 23% 이상 향상된다고 밝혔다. 한국 대표팀 감독들은 이 원칙을 이론서가 아닌 빙판 위에서 직접 실천해 보였다.
최민정의 통산 7번째 올림픽 메달과 임종언과의 혼성 계주 금메달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이 성과들의 공통점은 감독이 전략을 일방적으로 지시한 것이 아니라, 선수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구조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조직심리학은 이를 ‘심리적 소유감(Psychological Ownership)’이라 부른다. 미네소타 대학의 존 피어스(Jon Pierce) 교수는 구성원이 '이것은 내가 선택한 일'이라 느끼는 순간, 외부 지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몰입이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시켜서 뛰는 레이스와 스스로 선택해서 뛰는 레이스, 그 결과가 같을 리 없다.
여기에 결정적인 한 가지가 더 있다. 최가온의 금메달은 기술이 아니라 멘털이 만든 결과였다. 두 번의 실패 앞에서 전략을 바꾸고 자신의 루틴으로 돌아온 것, 그것은 오랜 시간 훈련된 자기 통제의 힘이었다.
반면 김상겸이 37세에 올림픽 도전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달랐다. '실패해도 이 팀이 나를 책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즉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 교수가 정의한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 그 바탕에 있었다. 감독이 대회 전 인터뷰에서 '나이는 숫자일 뿐, 이 선수는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말한 것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었다. 실패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리더가 팀 앞에서 한 공개적인 약속이었다.
‘강점 기반의 설계, 심리적 소유감, 심리적 안전감’ 이 세가지는 스포츠에서만 유효한 개념이 아니다. 지금 우리의 조직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자. 내 팀원은 자신의 일을 '내 것'으로 느끼고 있는가? 나는 팀원의 약점을 고치려 하는가, 아니면 강점이 빛나는 자리를 찾아주고 있는가? 실패한 팀원이 내 앞에서 더 위축되어 있는지, 아니면 다시 일어서는가. 이 세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리더가, 작은 팀에서도 결국 큰 성과를 만들어낸다.
메달은 선수가 따냈다. 그러나 그 메달을 가능하게 한 것은 선수의 재능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강점을 설계하여 스스로 선택하게 하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신뢰를 심어준 감독들의 리더십이 그 바탕에 있었다. 밀라노에서 한국이 거둔 성과는 스포츠의 기적이 아니라, 조직 리더십의 기적이었다. 선수는 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를 내려왔다. 감독은 그 뒤에서 조용히 웃었다. 진짜 리더십은 언제나 그렇게, 빛나는 자리 한 발 뒤에 서 있다.
/김문경(국민대학교 겸임교수·대한리더십학회 부회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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