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독립선언서, 문화강국을 말하다

파이낸셜뉴스       2026.03.01 18:54   수정 : 2026.03.01 18:54기사원문
"결사항전 대신 문화 언급
3·1독립선언 유약한 느낌
내면에 담긴 비폭력·무저항
세계 첫 '발명'된 혁명방식
이제 세계 주도하는 K컬처
선열의 선견지명 다시 느껴"

요즘 유학생들의 국적은 아주 다양하다. 출신국을 짐작하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생각지도 못한 답이 나온다. 알제리, 푸에르토리코 등. 한국에 유학 온 계기는 하나같이 K팝에 심취한 게 먼저라고 한다.

블랙핑크, BTS는 기본이고 생소한 아이돌 그룹 이름이 줄줄 나온다. 다음은 K드라마를 보게 되고, 한글을 공부해서 유학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의 지인들은 BTS 이전과 이후로 한국(인)에 대한 현지인들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아미(ARMY)'라는 젊은 층은 물론 부모세대 팬도 많다고 한다. 청소년 사이에 유행하던 랩을 들어본 사람들은 이해가 된다. 욕설을 기본으로 장착한 가사에 질색하던 부모들부터 서정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에 반해서 아이들에게 권하는 노래가 BTS 음악이라고 한다. '다이너마이트(Dynamite)'와 존재의 철학, '불타오르네'와 해체의 철학, '봄날'과 정의의 철학, '작은 것들을 위한 시'와 아이러니의 철학 등 BTS 노래를 분석한 철학자(김광식, 'BTS와 철학하기', 김영사)를 보면 과장만은 아닌 것 같다. 바야흐로 K컬처 전성시대가 되었다.

"새롭고 날카로운 독창력으로 세계 문화의 큰 흐름에 이바지하고 보탤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 그 얼마인가?" 1919년 3월 1일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의 일부이다. 솔직히 과거 독립선언서의 내용에 불만(?)이 있었다. 외세가 강점한 식민지 국민의 독립선언치고 너무 점잖다는 의문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악행을 비판하고 독립을 요구하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야 하는 것 아닐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무장투쟁을 불사한다"는 적극적 저항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1776년 미국 독립선언서는 당시 영국 국왕 조지 3세를 '폭군'으로 규정하고 27가지 식민통치의 악행을 조목조목 비난하고 있다. "국왕은 우리의 바다에서 약탈을 자행하고, 우리의 해안을 습격하고 우리의 도시를 불사르고, 우리 인민의 생명을 빼앗았다." 1916년 아일랜드 독립선언서는 공공연히 무장투쟁을 선포하고 있다. "아일랜드 인민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지난 300년간 6차례의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우리는 다시금 세계만방 앞에서 무장투쟁을 통해 아일랜드 공화국이 독립 주권국가임을 선포한다." 1945년 베트남 독립선언은 프랑스와 일본 식민통치의 참상을 고발한다. "우리 인민들은 더 가난하고 더 비참해졌다. 결국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꽝찌성에서 북부 베트남에 걸쳐 200만명 이상의 동포들이 굶어 죽었다."

반면 기미독립선언서는 "일본의 신의 없음을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에 이어 "일본의 의리 없음을 꾸짖으려 하지 아니하노라"라고 한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하거나 탓할 겨를이 없노라"라는 내용도 약간 답답하다. 일본을 강력하게 규탄하고 처절한 응징을 다짐해도 부족한 마당에 미리 한발 물러서는 느낌이다.

하지만 기미독립선언 후 107년이 지난 오늘, 선열들의 자세가 옳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BTS는 어떻게 세계를 품었나'(노성호, 뿌브아르)의 저자는 한류를 내세운 한국 문화가 지구의 '기축문화'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첫째로 한국 문화 자체가 절대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경쟁력 있는 문화는 타 문화와 비교해서 제3자가 선택을 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한국에 대한 선한 이미지'를 두 번째로 든다.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고 식민지에서 벗어나 선진국에 오른 유일한 국가로서 다른 나라들의 롤모델이 한국이다. 세 번째는 시대가 한국에 유리하다는 점을 든다. 인터넷과 유튜브의 확산으로 지구 어디서나 세계와 교류가 가능하고 노래, 동영상 등 모든 자료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3·1 독립운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계 역사에 처음 되는 비폭력 무저항 혁명운동이 시작되었던 것이니 이것은 한국에서 처음 발명된 혁명방식입니다." '발명'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된다. 증오를 부추기고 무장투쟁을 촉구하는 것은 우리의 방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유약해 보이지만 '정의와 인도'를 내세운 평화시위가 있었기에 문화를 통해 세계에 '선한 이미지' 코리아의 이름을 떨치는 시대가 될 수 있었다. 독립선언처럼 "새롭고 날카로운 독창력으로 세계 문화의 큰 흐름에 이바지하고 보탤 기회"가 어느새 우리 앞에 온 것이다.
"우리의 고유한 자유권을 온전히 지켜 자유로운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천지에 빛나는 민족문화를 꽃피우게 할지로다." 대한민국의 빛나는 문화는 우리만의 만듦이 아니다. 선열들의 희생과 선견지명을 바탕으로 마침내 우리 시대에 꽃피우게 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dinoh7869@fnnews.com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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