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전 딸 데려간 사람, 잘 키워줬기만을 바랄뿐"

파이낸셜뉴스       2026.03.02 18:18   수정 : 2026.03.02 18:18기사원문
1978년 11월 갓 두돌 넘긴 김선영씨
부천시 소사동 집 마당서 놀다 사라져
"한 여성이 아이에 접근" 주민이 목격
"무사히 잘 있는지만이라도 확인했으면"

"누가 데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키워줬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와서 미워한들 무슨 소용이겠어요."

백명자씨는 40여년 전 실종된 딸 김선영씨(현재 49·사진)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유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백씨는 엄마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병이 들어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딸이 무사히 자라기만 했다면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백씨는 "옛날에는 아이를 낳지 못해 남의 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선영이가 사라진 뒤 금전을 요구한 연락이 없었던 점을 보면 누군가가 키우고 싶어서 데려간 게 아닐까 싶다"고 추측했다. 이어 "원망은 접었고 다 용서하니 선영이를 단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1978년 11월 26일 경기 부천시 소사동에서 갓 두 돌을 넘긴 나이에 실종됐다. 당시 김씨는 주홍색 상의에 빨간 루비꽃 바지 차림으로 집 앞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둘째를 임신해 만삭이던 백씨가 잠시 집안일을 신경 쓴 사이 아이는 자취를 감췄다.

목격자가 없던 건 아니다. 한 동네 주민은 묘령의 여성이 김씨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산달이 다 된 백씨 대신 이모가 와서 아이를 돌보는 줄 알았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한다.

백씨는 인근에 살던 한 여성이 과거 '선영이를 하루만 데려다 키우면 안 되겠느냐'고 말한 일이 떠올라 찾아갔지만, 해당 여성은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백씨는 경찰에 신고하고, 이후 실종자를 찾는 방송에도 출연해 봤으나 딸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았다.

김씨 실종 이후 백씨의 삶은 무너졌다. 둘째 아이 출산 직후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딸을 찾아 헤매다 길에서 하혈하는 건 예삿일이었다. 그는 대상포진, 구안와사, 심근경색, 백내장, 녹내장, 불면증 등을 수십년간 앓았다.

백씨는 "상담사에게 '당신은 죄인이 아니라 피해자다'라는 말을 처음으로 듣고 큰 위로를 받았다"며 "딸이 실종된 이후 '선영'이라는 말도 입 밖에 내지 못했었다. 아직도 불면증에 시달리지만 마음의 괴로움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며 울먹였다.

백씨에게 김씨는 애지중지 키운 딸이었다. 김씨는 태어날 당시 체중이 매우 낮아 의료진으로부터 오래 살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다행히 김씨는 조금씩 살이 붙어 생기 가득한 아이로 자랐다고 한다.

백씨는 "선영이가 잘 웃고 붙임성이 좋았다"며 "태어났을 땐 너무 말라서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키우면서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너무 어린 나이에 실종돼 친모의 존재를 모를 가능성이 높다. 백씨는 김씨가 경찰에 유전자 등록을 해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평생 곁에 두지 못하더라도 무사히 살고 있는지만이라도 확인하고 싶다는 것이다.

백씨는 같은 처지에 놓인 실종 가족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견디기 힘든 일이지만 끌어안고 살면 병만 깊어진다"며 "최대한 마음을 열고 좋은 소식을 기다렸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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