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선진국, 뒤처지는 국민 행복

파이낸셜뉴스       2026.03.08 19:05   수정 : 2026.03.08 19:05기사원문
우리는 1인당 GDP 26위 '선진국'
세계행복보고서로는 58위에 그쳐
정치권 자신들 유리하게 제도 바꿔
공익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앞서
개인의 선택과 자율성이 존중되는
포용적인 제도적 환경 만들어가야



매년 3월 20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행복의 날이다. 이 기념일은 2012년 유엔총회에서 제정되었으며, 물질적 성장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삶의 만족과 행복을 정책의 중요한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경제규모 확대보다 국민의 행복을 국가운영의 핵심 가치로 강조해 온 부탄의 국정철학이 이러한 국제적 논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는 매년 세계 행복의 날을 전후해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147개국 가운데 58위를 기록했다. 핀란드가 1위였고, 덴마크와 아이슬란드가 각각 2·3위를 기록했다.

이 보고서는 행복 수준을 여섯 가지 주요 변수로 설명하고 있는데, 1인당 국내총생산(GDP), 사회적 지원, 기대수명, 선택의 자유, 관대함, 부패인식 등이다. 한국과 핀란드를 비교해 보면 두 나라의 행복 수준 차이가 기대수명, 사회적 지원 그리고 선택의 자유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대수명은 한국이 3위로 매우 높은 수준을 기록했지만, 핀란드는 19위에 머물렀다.

건강과 의료 수준만 보면 한국이 오히려 더 높은 평가를 받은 셈이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나 공동체가 있는지를 묻는 사회적 지원에서는 한국은 85위에 그치지만 핀란드는 2위로 매우 높은 수준을 보였다. 개인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느끼는 정도를 의미하는 선택의 자유 역시 차이가 크다. 한국은 101위에 그치지만 핀란드는 5위로 상위권에 속한다.

종합해 보면 한국은 1인당 GDP가 26위로 이미 선진국 수준의 경제력을 가졌는데도 국민이 체감하는 행복도는 이에 미치지 못한다. 반대로 핀란드는 경제규모 20위 수준에 비해 높은 행복도를 나타낸다. 이러한 괴리는 단순히 소득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구조와 제도에서 비롯된다. 특히 다양한 선택과 자율성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는 제도적 경직성이 이러한 문제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

제도에 대해 경제학자 더글러스 노스는 이를 사회에서 작동하는 '게임의 규칙'이라고 설명했다. 즉 제도란 사람들의 행동을 제약하거나 유도하고 사회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을 구조화하는 규칙과 관행의 총체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법률이나 규정과 같은 공식적 제도뿐 아니라 관습과 사회적 규범 같은 비공식적 요소도 포함된다.

최근의 제도 연구에서는 이러한 개념을 더욱 확장해 단순한 경제 규제나 정책을 넘어 정치구조, 사회적 관계와 종교·언어 등을 포괄하는 폭넓은 제도적 환경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다론 아제모을루와 제임스 로빈슨 역시 국가의 번영과 빈곤을 설명하는 핵심 요인으로 제도의 성격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사회 구성원 다수가 경제활동과 정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보장하는 '포용적 제도'와 권력과 자원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착취적 제도'를 구분하였다. 그에 따르면 포용적 정치·경제제도가 형성될 때 국가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경제발전이 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정치·경제 차원에서 더 나아가 사회·문화제도도 포용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매일 뉴스를 접할 때마다 놀라움을 금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이어진다. 정치권에서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반복되면서 공공의 이익보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앞선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와 함께 각종 부정부패와 관련된 소식도 끊이지 않으며 사회적 불신을 키우고 있다. 또한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발언이 오히려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얻는 미디어 환경 역시 사회적 갈등의 우려를 낳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종교적 갈등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적다고 할 수 없다.

여기에 세계 기준보다 많이 발생한다는 각종 사기 사건은 사회 전반의 신뢰 기반이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들은 단순한 개별 사건을 넘어 우리 사회의 제도와 신뢰 구조가 어떤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세계 행복의 날을 맞아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경제성장이라는 물질적 성과를 넘어 사회적 신뢰를 높이고, 개인의 선택과 자율성이 존중되는 포용적인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 가는 노력이야말로 국민이 체감하는 행복을 높이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강성진 한국경제학회 회장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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