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의 일상에도 뿌리내린 전쟁 '튤립'
파이낸셜뉴스
2026.03.16 18:58
수정 : 2026.03.16 20:00기사원문
'튤립'은 일제강점기 시공간 속 어느 일본인 가정을 들여다본다. 그동안의 많은 무대는 식민지 조선을 그릴 때 관객이 동일시하기 쉬운 피해의 입장, 즉 조선인의 시선과 관점으로 접근했다. '튤립'은 여기서 비껴서 일제강점기의 가해자 관점을 풀어놓는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무대는 감정이입이 아닌 거리를 두고 바라보도록 연출돼 있다. 선 굵게 구성된 연극은 '가해자의 위치에 선 착취와 대상화는 어떠한 질문을 남길 수 있는가?'를 향해 달려간다.
무대는 시각적으로 불온하며 불길한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이곳은 인위적이며 생명이 숨 쉬지 못하는 공간이다.
배우들은 연극 '튤립'을 살아 있게 만드는 큰 동력이다. 특히 검은 페인트로 칠해진 얼굴을 한 진짜 아버지(권정훈 역)는 부드럽고 좌절해 있으며 그럼에도 견뎌 나가는 인물을 정확한 호흡과 풍부한 존재감으로 드러낸다. 아마 연극의 제목 '튤립'은 잃어버렸던 아들이 그를 향해 갖는 본능적 끌림과 애정을 '뿌리'란 이미지로 만들어 낸 것이리라.
평생 비극적 삶 속에서 이해받지 못하던 사내는 비로소 튤립이 된 듯, 그의 벗은 나신에 구근식물처럼 흙이 덮인다. 사내에게 다시 생이 허락되기를. 뿌리만 있으면 언제든 살아날 수 있는 튤립이 돼 진짜 환생하기를. '튤립'은 가해가 잔혹하고 파괴적일수록 피해의 시간, 견딤의 시간 또한 계속 이어진다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잊히는 것 대신에 증언이 된다.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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