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경제에서 준비된 경제로

파이낸셜뉴스       2026.03.16 19:14   수정 : 2026.03.16 19:14기사원문

요소수라는 제품이 있다. 디젤차량의 배출가스를 줄이는 장치에 들어가는 물질이다. 화물차와 버스 대부분이 이를 사용한다.

몇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국민에게 낯선 단어였다.

하지만 2021년 가을 이 작은 액체 하나가 나라 전체를 흔들었다. 중국의 수출제한으로 요소수 공급이 막히자 전국의 화물차가 멈춰 설 위기에 처했다. 물류가 흔들리자 산업도 함께 흔들렸다. 주유소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고, 정부는 급히 해외에서 물량을 확보해야 했다. 단기 혼란은 있었지만 위기는 넘겼다.

비슷한 장면은 그보다 앞선 2019년 여름에도 있었다. 일본이 강제징용 판결 이후 한국을 압박하며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을 제한했다. 당시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를 만들고 있었지만 몇 가지 소재에 발목이 잡혔다. 지금은 익숙한 '소부장'이라는 말이 이때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정부는 물론 기업도 공격적으로 대응에 나섰고 결국 위기는 넘겼다. 이후 주요 핵심소재의 국산화와 공급망 다변화가 진행됐다.

우리나라는 위기가 닥치면 세계가 놀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외환위기) 때는 국민들이 금을 모았고, 코로나19 초기에는 빠르게 방역체계를 구축했다. 위기가 오면 뭉쳐 방법을 찾고 결국 극복했다.

최근 또 하나의 불안요소가 등장했다. 이번에는 원유다. 이란을 둘러싼 긴장 속에 호르무즈해협이 흔들리고 있다. 이곳은 전 세계 원유의 약 20%가 지나가는 바닷길이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약 70%도 이 해협을 통과한다. 미국과 이란이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어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원재료 공급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현재 비축하고 있는 원유는 약 208일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권고하는 90일분 비축유에 비해 2배 이상 많다. 또 추가로 600만배럴의 원유도 확보했다. 208일의 수치는 든든해 보인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산술적 계산일 뿐이다. 봉쇄가 장기화되거나 도미노식 공급망 붕괴가 일어날 경우 이 숫자는 의미를 잃을 수도 있다.

최근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 구애의 손을 내밀고 있다. 미국은 우리 조선에 러브콜을 보내고, 중동은 경쟁적으로 K무기 확보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화려한 엔진을 돌릴 원료는 철저히 타국의 손에 쥐여 있다.

조달청 비축 현황을 보면 핵심광물 중 목표치를 채운 품목은 드물고, 일부 희소금속은 한달 남짓한 재고에 의존한다.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정작 그 기술을 움직일 자원 하나가 부족해 산업이 멈출 수도 있는 구조다.

흔히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을 한다. 위기는 대응만 잘하면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전환점이라는 의미다. 문제는 우리가 그 전환점을 얼마나 제대로 활용하고 있느냐다. 일본 수출규제가 터지자 소재 국산화를 이야기했고, 요소수 대란이 벌어지자 뒤늦게 공급망 점검을 시작했다. 지금도 호르무즈해협 이야기가 나오자 비축유부터 확인하고 있다.

영미권에는 '못 하나가 없어서 말 편자를 잃었고 편자가 없어서 말을 잃었으며 결국 전투에 져서 나라를 잃었다'는 격언이 있다고 한다. 과장된 내용이기는 하지만 사소해 보이는 결핍이 어떻게 거대한 파국으로 치닫는지를 보여주는 섬뜩한 경고다.

호르무즈해협의 긴장은 우리 경제체질의 결함에 보내는 세 번째 경고장이다. 우리나라의 위기극복 능력은 세계가 인정한다.
소부장도 넘어섰고, 요소수 위기도 넘어섰다.

그러나 준비하지 않으면 또 몇년 뒤 새로운 공급망 위기가 올 것이다. 이제는 버티는 경제에서 준비하는 경제로 바뀌어야 한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경제부장·정책부문장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