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유언 지켰습니다"…75년 만에 유복자 품으로 돌아온 24세 호국영웅

파이낸셜뉴스       2026.03.18 15:13   수정 : 2026.03.18 16:41기사원문
강원 홍천 금물산서 발굴, 고 하창규 일병 신원 확인
15년 전 채취한 유전자 시료가 결정적 단서 돼

[파이낸셜뉴스]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지키다 24세의 나이로 산화한 호국영웅 고 하창규 일병이 가족의 품으로 귀환했다.

18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해 4월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남면 유치리 금물산 일대에서 육군 제11기동사단과 함께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국군 제8사단 10연대 소속의 고 하창규 일병으로 확인했다.

이날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경상남도 진주시에 거주하는 고인의 아들 하종복 씨 자택에서 열렸다.

행사를 주관한 김성환 국유단장 직무대리(육군 중령)는 유가족에게 호국영웅 귀환 패와 신원확인 통지서, 발굴 유품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했다. 이어 고인의 참전 경로와 유해발굴 경과, 신원확인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하종복 씨(74세)는 “지난 2022년에 작고하신 어머니께서 ‘언젠가 아버지를 찾게 되면 꼭 합장해달라’는 유언을 남기셨다”며 “그 뜻을 받들어 어머니 묘 곁에 아버지 가묘를 만들어 두었는데, 이제야 두 분을 함께 모실 수 있게 되어 한을 풀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제가 살아생전에 아버지를 모실 수 있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라며 “아버지를 찾기 위해 애써주신 모든 분들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이번 고인의 귀환은 15년 전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 채취와 국유단, 장병들의 유해발굴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 2011년에 국유단 유가족 찾기 탐문팀이 고인의 아들과 접촉하여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다. 그러다 지난해 3월 31일부터 5월 9일까지 11사단과 협력하여 강원 홍천 지역에서 유해발굴을 전개한 결과 총 11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고인의 유해는 해당 기간 중인 4월 17일에 11사단 발굴팀장(상사 정종하)이 최초로 식별하고 국유단 전문발굴팀의 정밀발굴 과정을 거쳐 수습됐다. 이후 유해-유가족 유전자 비교 분석을 통해 가족관계를 최종 확인할 수 있었다.

고인은 지난 1926년 12월, 경상남도 사천군 곤명면에서 8남매(4남 4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1949년에 혼인하여 이듬해 첫딸을 얻었으며 1950년 11월 27일 장남인 형(고 하수규 씨)과 동반 입대했다. 유가족의 증언에 따르면, 입대 당시 고인의 아내는 둘째(아들 하종복 씨)를 임신 중이었다. 함께 입대했던 형은 질병으로 인해 귀가했으나, 그는 국군 제8사단 10연대 소속으로 참전한 횡성 전투에서 1951년 2월 9일에 전사했다.

횡성 전투(1951. 2. 5. ∼ 15.)는 중공군 제4차 공세 당시 국군 제3·5·8사단이 강원 홍천 및 횡성 일대에서 중공군 제39·40·42·66군 및 북한군 제5군단과 벌인 격전이다. 중공군의 공세로 8사단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특히 고인이 속했던 10연대는 연대장 권태순 대령을 비롯한 지휘부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실종될 만큼 처절한 사투를 치른 전투로 기록돼 있다.

고인은 올해 국유단이 세 번째로 신원을 확인한 호국영웅이다.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발굴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가족의 품으로 모신 국군 전사자는 총 271명으로 늘었다.

국유단은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호국영웅, 6·25 전사자의 신원확인을 위한 국민 여러분의 동참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전국 어디에서나 가능한 유전자 시료채취는 6·25전사자의 유가족으로서 전사자 기준으로 친·외가 8촌까지 신청 가능하다.
제공한 유전자 정보를 통해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될 경우 10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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