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활용 넘어 'AI 원어민'으로… 대학 교육부터 바꿔라"

파이낸셜뉴스       2026.03.18 18:30   수정 : 2026.03.18 19:38기사원문
AI 교육 중심에 선 염재호 태재대 총장
시대 따라 요구하는 능력 달라지기 마련
50년전처럼 전화번호 외울 필요 없어져
AI 활용이 인간의 역량 떨어뜨리지 않아
불필요한 일에 치중할 이유가 없다는 것
기계처럼 반복하던 일은 AI로 넘기면 돼
인간에게 남은 고유 가치는 창의·상상력
대학 교육도 기초역량 다지는 데 초점을

대학 교육이 큰 시험대에 섰다. 인공지능(AI)을 교육에 접목하는 혁신에 속도를 내는 대학들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일방적 강의와 중간.기말고사로 학생을 줄 세우는 곳이 수두룩하다. 단순 반복 암기식 지식이 AI로 대체되는 마당에 인재의 산실인 대학에서 고등교육은 여전히 낡은 틀 안에 갇혀 있다.

염재호 태재대 총장은 격변하는 AI 교육 혁명의 한복판에 서 있다. 국내에서 대표적으로 AI를 접목한 교육혁명을 태재대에서 실현하고 있다. 아울러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초대 부위원장 활동에서 쌓은 식견으로 국내 대학들의 AI 교육 어젠다를 주도하고 있다. 연초엔 AI 시대 교육혁명에 대한 고민을 책으로 묶어냈다. 그는 AI 혁명에 주저하는 대학들을 향해 "최소한 10%라도 변화하는 실험을 대학 안에서 시작하길 권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염 총장을 만나 AI 교육의 현재와 미래를 들었다.

―대학들이 서둘러 AI를 교육에 접목하려 시도 중이다. 그러나 AI 교육 개념이 불명확하고, 투자와 내부 혁신도 요구되기에 주저하는 모습이다. 대학 내 AI 도입이 혼선을 빚는 이유는.

▲해외 대학을 방문하면 AI를 활용한 논문 작성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1970년대 공대에서 계산기 사용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지금 관점에선 당연히 써야 된다. 요즘 스탠퍼드대학에선 AI 네이티브란 말을 쓴다. AI를 원어민처럼 쓴다는 거다. 옛날 원고지에 글을 쓴 뒤 타자기로 옮겨 적던 시절이 있었다. 원고지에 손으로 안 쓰면 생각이 안 난다는 이유에서였다. 지금은 컴퓨터 자판기로 치면서 생각을 동시에 한다. 앞으로 AI로 모든 걸 생각하고 처리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대학 교육이 여러 도전과 충격을 받고 있다. 요즘 서울 명문대 이공계 학생들은 교수보다 AI에 실험지식을 묻는다. AI에 훨씬 많은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 교육에 AI를 도입할지 말지 논쟁하는 건 마치 19세기 말에 근대교육 도입을 놓고 고민하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닌가. AI 도입은 비가역적이며, 우리 삶 전체를 바꿀 것이란 점을 부정할 수 없다.

―AI 도입은 학습 효율을 높이지만, 학생의 비판적 사고력 저하나 기억력 감퇴를 낳을 우려도 제기된다.

▲제가 1970년대에 대학생일 때 전화번호를 100개 정도 외웠다. 지금은 2개도 못 외운다. 스마트폰 탓에 기억력이 감퇴하고 지적 능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능력이 바뀌는 거다. 옛날엔 잘 외우는 게 뛰어난 능력이었다. 주산대회에서 복잡한 암산을 풀어내는 걸 요즘에 뛰어난 능력이라 생각하겠는가. 과거 기술의 역사처럼 AI도 인류 문명사를 완전히 바꿀 것이다. 옛날 관점으로 보면 굉장히 큰 문제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AI 도입이 인간 능력을 줄이는 게 아니라 쓸데없는 능력 개발에 치중하던 것을 고차원적인 능력을 찾아 바꿀 것으로 본다. 그래서 대학도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기술과 지식 태도 같은 역량이 핵심인재의 조건이었다. 앞으로 주목받게 될 인재들의 핵심역량의 조건들은.

▲시대에 따라 필요한 능력은 달라진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대학이 설립되고 근대교육이 시작됐는데, 우리는 19세기 말까지 서당에 다니고 과거시험을 봤다. 고려대가 1905년에 보성전문학교로 시작했는데, 대학이 아니라 전문학교였다. 법률과 경제 두 개 학부가 있었는데 당시엔 학문이 아닌 전문기술로 봤다. 그런데 두 학부가 지금은 최고의 학문이 됐다. 일론 머스크는 의사직이 중요하지 않게 될 것으로 본다. 시대가 바뀌면 가르치는 내용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은 상상력, 창의력 혹은 엉뚱한 생각이 훨씬 더 중요하다. 아울러 복잡한 문제를 풀어내는 문제해결 능력이 중요한 것이지 단순 반복적인 능력은 별로 의미가 없다. 그런 면에서 태재대는 기초역량을 굉장히 강조한다. 전공은 대학원에서 하든가 나중에 꼭 원할 때 하면 된다. 기초역량을 다져 논리적이고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된다. 스스로 호기심을 갖고 배울 방법이 너무 많아졌는데 학교에 등교해 4년을 배워야 한다. 이미 팔란티어 같은 기업은 고졸 출신을 뽑고, 마이크로소프트는 학벌을 안 따진다. 능력만 있으면 된다.

―하버드나 스탠퍼드 등 해외 명문대들은 AI를 학습의 가속기로 수용하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 해외 유수 대학의 AI 대응 트렌드는.

▲사실 미국 명문대도 시스템을 잘 못 바꾸고 있다. 유수 대학들도 이미 항공모함처럼 규모가 커서 기존 제도를 쉽게 못 바꾼다. 그래서 태재대는 방향을 스탠퍼드 같은 기존 명문대가 못 보는 방향을 추구한다. 가령 스탠퍼드나 하버드대 모두 강의실에서 수업을 한다. 교수가 현장에서 하는 강의는 휘발성이 있어 사라져 버린다. 그러면 학습 데이터가 안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 세계의 교수들 강의를 듣는데, 데이터와 코딩을 통해 분석까지 가능하다. 학생마다 발언 시간과 말한 내용을 모두 AI의 도움을 받아 분석하고 피드백을 주니까 학생을 개별적으로 잘 키울 수 있다. 이런 방식은 외국의 소규모 대학에서 혁신적으로 하는 곳이 일부 있다. 그러나 큰 대학들은 아직 안 바뀌었다. 여전히 연구에 집중하면서 학부에서 학생들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데는 약하다.

―현행 대학들은 교육제도와 교과 프로그램이 사실상 고착화된 게 사실이다. AI 시대를 맞아 기존 콘텐츠를 바꿔야 할 텐데 아직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미국의 대학 등록금은 한국보다 5∼10배 비싼데 그돈을 내고 꼭 학위를 따야 되느냐는 분위기다. 그러니까 팔란티어 같은 기업이 고졸을 뽑기 시작하는 거다. 지식이나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려고 꼭 대학을 4년간 다니고, 중간·기말고사를 봐야 되나. 사실 의미 없다. 어떤 건 6개월만 배워도 되고 본인이 원하는 지식을 알아서 배울 수도 있다. 코세라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보면, 스탠퍼드나 하버드대 강의를 그곳에서 다 듣거나 내가 원하는 것만 골라 배워도 된다. 그런데 왜 4년간 대학에 묶이고, 등록금을 내고 학위를 가져야만 능력을 인정받는 걸까. 이런 제도가 깨질 것이다. 미국의 대학 진학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한국도 굉장히 심각하다. 지난 20~30년 동안 교수 평가와 대학 평가가 전부 연구업적으로 이뤄졌다. 그래서 교수들이 대학에서 학부 수업에 크게 신경 안 쓴다. 대학원생들과 연구논문을 쓰는 것에만 관심 있다. 그러니까 학부에서는 교과서로 수업하고 중간·기말시험으로 얼마나 외웠나 보는 식인데, 요즘에 이런 방식이 무슨 의미가 있나. 대학 교육, 특히 학부 교육은 완전히 달라져야 된다.

―낡은 대학 교육 시스템이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 어떻게 해야 과거의 고리를 끊고 AI 혁신 인재 프로그램을 가동할 수 있나.

▲큰 조직들은 굉장히 바꾸기 어렵다. 그러나 이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최소한 10%라도 변화하는 실험을 대학 안에서 시작하길 권한다. 학부 과정에서 10%라도 개별 맞춤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AI의 도움을 받아 온라인 과정이나 글로벌 로테이션 방식을 도입해 보는 거다. 많은 투자가 필요하겠지만 10% 아니면 5%부터 시작해보면 분명 엄청난 차별화가 날 것이다. 이렇게 작게라도 혁신을 시작해야지 처음부터 전체를 다 바꾸려 들면 혁신을 일으키기 힘들다.

―현재 대학의 역할은 기업에서 바로 일할 수 있는 인력을 키우는 것이다. 앞으로 인재와 일자리의 개념이 크게 바뀌면 대학의 인재 양성 목표도 변해야 한다.

▲기존 교육은 기능적 인간을 키워내는 게 목표였다면, 앞으로 매우 다른 차원으로 바뀔 것이다. 예를 들어 1%가 나라를 먹여 살린다는 말처럼 상위 1%를 추구하는 인재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시스템이 나올 수도 있다. 기업과 대학 간 산학협력은 수렵과 농경 그리고 산업시대를 지나 마지막으로 대학과 기업 간 관계다. AI 시대엔 전통적 산학협력의 의미가 사라질 것이다. 기술을 만들어내는 산학협력 차원을 넘어설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최소한의 역할만 맡고 기업이 훨씬 더 많은 사회적 의제를 던질 가능성도 있다.

―호모사피엔스의 시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앞으로 산업과 일자리 그리고 인간의 노동력에 어떤 변화가 올 것으로 보나.

▲18세기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 19세기까지 우리는 자신과 가족을 위해 집에서 식물과 동물을 키우고 노동을 했다. 20세기 들어 분업화와 대량생산 체계가 되면서 인간은 자기 삶과 아무 관계없는 일을 해야 했다. 그렇게 인류 역사 가운데 회사에서 월급 받고 산 기간이 100년 남짓 된다. 이 기간은 인류 삶의 가장 예외적 시기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취업을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안다. AI 시대가 오면서 이런 방식에서 해방될 가능성이 있다. 세상도 달라질 수 있다. 아마도 보편 기초소득이 제공될 것이다. 그렇다면 굶어죽거나 옷이 없어 얼어 죽거나 집이 없어 걱정하는 일은 없다. 그럼 인간은 무엇을 할까. 인간이 기계 부품처럼 하던 일을 AI 혹은 피지컬 AI가 맡으니까 인간은 다른 걸 해야 한다. 스스로 창업하고 창작하는 시대로 가는 거다.

―AI 등장으로 리더십마저 위기를 맞고 있다. 미래의 리더가 갖춰야 할 역량은.

▲인간이 사회가 잘 돌아가도록 하는 부속품 역할로 기능했다면 앞으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주목받는다. 질문하는 능력이라든가 상상력에 대한 능력, 이런 걸로 바뀌어야지 남들이 다 하는 똑같은 걸 하면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변화를 주도하는 자'를 주목한다.
변화를 주도하는 글로벌 인재를 키우기 위해 대학에서 기초체력을 단단히 만드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여러 나라를 돌며 쌓은 배움과 경험은 홀로 서는 인재를 만들 것이다. 이런 새로운 인재는 AI가 인간 역할을 대체하는 세상이 오더라도 어떤 조직에서든 주목을 받을 것이다.

■염재호 총장 약력 △1955년생 △고려대 법대 학사 △미국 스탠퍼드대 정치학 박사 △고려대 제19대 총장 △SK주식회사 이사회 의장 △고려대 정경대학 명예교수(현) △국가AI위원회 부위원장 △태재대 총장(현)



jjack3@fnnews.com 조창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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