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임금님에게

파이낸셜뉴스       2026.03.19 18:59   수정 : 2026.03.19 20:11기사원문
영화 한 편으로 부활한 단종
열여덟에 낭군 잃은 정순왕후
슬프고 애달픈 역사에 '눈물'
당신의 마지막을 지킨 충신들
어소를 둘러싼 늘푸른 나무들
"이제는 마음 편안히 잠드소서"

단종 임금님! 열일곱에 생을 마치고 가신 지 600년이 가까운 분에게 여든 다 된 사람이 편지를 띄우는 건 요즘 당신을 그린 영화가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고, 나는 당신과 관련해 잊지 못할 추억이 있어서입니다.

벌써 17~18년 전 일이군요. 국회의장이었던 나는 전국 곳곳 역사의 숨결이 깃든 곳을 찾아다니다가 당신의 유배지인 청령포, 넋이 잠든 장릉, 당신만큼 기구한 삶을 산 부인 정순왕후가 묻힌 사릉을 차례로 방문했습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몸은 멀리 헤어져 앞의 두 곳은 영월, 사릉은 남양주에 있지요. 조선왕조사를 통틀어 이리도 슬프고 아름다운 역사가 또 있을까요.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두 권의 책으로 낸 답사기 말미에 이 애절한 이야기가 영화나 뮤지컬로 만들어져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기를 기대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예언이 적중한 걸까요. 조선의 뭇 백성이 연민했던 두 분은 지금 다시 온 국민의 마음속에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조선왕릉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데 임금님 당신의 얘기가 결정적 역할을 했듯, 이 가슴 뭉클한 사연의 후속편을 만든다면 '케데헌'처럼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요.

청령포는 삼면이 서강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엔 깎아지른 절벽이 솟아 나룻배 없이는 출입이 안되는 곳입니다. 사랑하는 왕비와 그리운 사람들이 생각나면 뒷산 노산대에 올라, 주변의 먹돌로 주섬주섬 쌓은 돌더미(망향탑)가 당신께서 세상에 남긴 유일한 유적이 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기억하나요? 임금님이 그 적막한 유배지에서 외부와 단절되어 살 때, 밤마다 남몰래 찾아와 문안을 드리고 간 영월 호장 엄흥도를…. 그는 세조의 엄명으로 누구 하나 손도 못 대던 당신의 시신을 서강 아래 동강에서 건져내 노루가 앉았다 간 눈 녹은 자리에 묻었고, 거기가 바로 오늘의 장릉입니다. 훗날 숙종도 "태화산이 무너지고 동강물이 마를지라도 그 이름 영원하리라"라고 엄흥도를 칭송했지요.

세조의 명을 받아 주군으로 모셨던 분에게 사약을 올린 의금부도사 왕방연의 발걸음은 또 어땠을까요.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교과서에도 나오는 시조를 지은 그는 관직을 내던진 뒤 봉화산 아래 먹골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청령포 유배길에도 호송하는 악역을 맡았던 그는 목이 탄 주군께 물 한 모금 드리지 못한 스스로를 단죄하며 단종 제삿날이면 정성껏 가꾼 배를 한가득 담아 영월을 향해 절할 때마다 이마를 세 번씩 찧는 고두배(叩頭拜)를 드렸다지요. 달고 물이 많은 '먹골배'의 유래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생모를 여의고 12세에 아버지(문종)를 잃은 당신은 재위 1년 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노산군으로 강등돼 유배지에서 17세에 세상을 하직해야 했습니다. 당신보다 한 살 위인 송씨와 14세에 혼례를 치르지만 왕과 왕비로 산 해는 고작 2년, 그마저 수양대군 그늘 밑이었으니 과연 두 분이 손잡고 웃은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요. 청계천 영도교(永渡橋)에서 생이별한 왕후는 18세 때 낭군을 잃고 동대문 밖 초막에서 평생 흰옷과 소찬으로 살았습니다. 그리움이 사무치면 천명도 모질어지나요. 조선의 비·빈 중에서 가장 오래 사신 분입니다. 언덕 위에서 동쪽 영월을 바라보며(東望峰) 82세까지 살고, 사후 177년 만에 왕후로 복위한 이가 또 있었던가요. 1999년 사릉에서 장릉으로 옮겨 심었다는 정령송(精靈松)이 이승에서 못다 한 정을 나누라는 듯 당신 곁에 서 있었습니다.

청령포 숲 소나무들은 사연이 절절합니다. 관음송은 유배생활을 생생히 지켜보고(觀), 오열하는 소리도 들었다(音)지요. 어린 임금님을 따라 슬퍼하고 아파한 흔적이 아직도 노송 줄기에 흉터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 마음을 헤아리고 다독여주는 나무로 알려져 지금도 세상살이가 고달플 때면 찾아와 위로받고 가는 이들이 많다더군요.

신하 복이 참 많았던 당신…. 모시던 궁녀들이 '하늘에 해가 둘이더냐'면서 몰래 궁궐을 빠져나와 유배지로 왔고, 숱한 의인들이 마지막까지 충절을 지켜 장릉에 있는 배식단사는 그런 충신과 관노, 궁녀들 268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그들이 죽어서는 절개의 표상 소나무로 환생했다지요. 그래선지 청령포 노송들은 하나같이 임금님 계신 어소를 향해 일제히 허리 구부려 절을 하고 있습니다.

청령포를 찾아간 날은 가랑비에 젖은 솔잎들이 머뭇머뭇 떨어져 내렸고 내 마음도 함께 젖고 있었습니다. 단종 임금님, 그리고 정순왕후님, 이제 그만 젖은 영혼을 햇살과 바람에 말리고 편히 잠드소서. 당신을 기리는 후손들이 즐겨 찾는 청령포, 장릉, 사릉의 늘푸른 소나무들과 함께 말입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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