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노동개혁이 주는 경고

파이낸셜뉴스       2026.03.19 19:02   수정 : 2026.03.19 20:14기사원문

미국과 이란의 군사충돌에 시선이 쏠린 사이, 지구 반대편에선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총성이 아니라 제도의 충돌이다. 아르헨티나의 노동개혁 얘기다.

반세기 넘게 유지돼 온 노동법 체계를 한번에 뜯어고쳤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되돌리겠다는 시도다.

개정안에 따르면 근로시간은 하루 8시간에서 최대 12시간까지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게 됐다. 통신, 병원, 항공, 관제, 교육 등 필수서비스 분야는 파업을 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인력을 유지해야 한다. 단체협약 자동연장 제도는 폐지됐고, 산업별 단위 중심의 교섭구조도 흔들렸다. 기업 단위 교섭이 가능해지면서 거대 노조의 영향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당연히 반발은 거셌다. 남미에서 가장 강한 노조를 가진 나라라는 평가를 받아온 아르헨티나다. 노동계는 이번 개혁을 '권리의 후퇴'로 규정하며 강력히 저항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한때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국이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글로벌 상위권에 속했다. 자원도 풍부했고, 산업 기반도 갖췄다. 남미의 유럽으로 불릴 정도였다. 그런 나라가 왜 무너졌을까. 복지와 노동 그리고 정치의 결합이 낳은 부작용 여파 때문이다.

노동권은 지속적으로 강화됐고, 복지지출은 빠르게 늘어났다. 문제는 이를 감당할 경제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조의 영향력이 비대해졌고, 구조개혁은 번번이 미뤄졌다. 정치권은 표를 의식해 이를 방치했다. 결국 '달콤한 정책'은 독이 됐다. 복지와 결합한 친노조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좋아 보였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었다.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줄였고, 경제는 서서히 활력을 잃었다. 성장동력은 꺼졌고, 국가재정은 흔들렸다. 그러다 보니 한쪽으로 기울어진 저울을 다시 맞추기 위해 이제는 더 큰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아르헨티나의 노동개혁은 그래서 '선택'이 아니라 '강제된 조정'이다.

한국 경제 역시 녹록지 않다. 저성장은 일상이 됐다. 10년 가까이 성장률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산업구조는 재편되는 중이고, 글로벌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정책의 방향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노동권 강화 자체를 문제로 볼 수는 없다. 노동자의 권익 보호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문제는 균형이다. 보완장치 없이 한쪽에 힘이 쏠릴 경우 그 부담은 결국 산업 전체로 확산된다. 노조에 힘이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반대로 기업의 부담도 그만큼 늘어난다. 투자결정도 보수적으로 변하고, 고용은 위축된다. 비용은 가격에 반영되고, 경쟁력은 조금씩 약화된다.

이 과정은 빠르게 드러나지 않지만, 일정 시점을 넘으면 되돌리기 어려워진다. 아르헨티나는 그 임계점을 넘은 사례다. 한국도 비슷한 갈림길에 서 있다.

노란봉투법 논란은 단순한 입법 이슈를 넘어 노동정책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현 정부의 기조는 분명하다. 노동권 강화 쪽으로 무게가 실려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균형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친노조 정책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친기업 정책도 함께 가야 한다. 그래야 산업 전체의 균형이 유지된다.

무엇보다 반도체특별법에서 빠진 주 52시간 예외 문제는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산업에서 시간 규제는 곧 경쟁력과 직결된다. 노동 보호와 산업 경쟁력 사이에서 정교한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결국 필요한 것은 '조율의 미학'이다. 노조와 기업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처럼 한쪽으로만 기울어진 정책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 아르헨티나는 이미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제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균형이다.

courage@fnnews.com 전용기 산업부장·산업부문장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