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개치는 세금 도둑…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8년간 2000억

파이낸셜뉴스       2026.03.22 18:15   수정 : 2026.03.22 19:29기사원문
국고보조금 올 125조 해마다 증가
부정수급 적발건·액수도 동시에 늘어
지방·공공기관 보조금 지급 별도 운영
정부차원 부정사용 관리 추적 어려워
‘부정수급은 관행’ 안일한 인식도 문제
李 "세금 도둑질땐 패가망신"
정부, 부정수급 제재금 최대 8배 인상
점검 대상 확대·지방 보조사업도 조사
전문가들 "재정지출 구조 조정·효율화
상습적발 땐 페널티 등 경각심 높여야"

이재명 대통령이 "세금 도둑질"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국고보조금의 부정수급 실태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8년간 엉터리로 쓰여 낭비된 국고보조금은 2000억원이 넘는다. 실제 부정수급 보조금 규모는 이보다 수십 배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 혈세로 한해 200조원 가까이 집행되는 중앙·지방정부의 국고보조금이 줄줄 새고 있는데도 관리감독은 매우 부실하다. 정부가 현장 특별점검을 확대할 때마다 역대 최대의 보조금 부정수급이 적발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200조 보조금, 잘 쓰이고 있나

22일 기획예산처 등에 따르면 올해 국고보조금(본예산 기준) 편성액은 125조7000억원이다. 여기에 지방보조금까지 합하면 실제 투입되는 보조금 재정은 200조원에 육박, 매년 역대 최대치를 경신 중이다.

국고보조금은 국가가 보조금법 등에 근거해 특정 사무·사업을 수행하는 자에게 교부하는 나랏돈이다. 보조금은 기초생활급여, 농어민·화물차 유류보조금 등과 같이 개인에게 지급되는 급여성(개인형) 보조금(1만3000여개)과 사업자에게 지급하는 사업형 보조금(22만6000여개)으로 나뉜다.

기획처 통계를 보면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부정수급 적발액은 총 2052억원(총 2910건). 이는 전체 보조금 사업 중에 5%도 안되는 부정징후 표본조사로 적발한 것으로 '빙산의 일각'이다. 지난 2018년 부정수급 적발액은 169억원(적발 18건)에 불과했다. 2019~2021년에도 25억~35억원(130~230건) 정도였다가, 감사원 감사로 코로나지원금 부정사용이 대거 적발된 2023년, 전년 대비 7배나 많은 699억원으로 급증했다. 이후 최근 2년간(2024~2025년) 적발한 부정수급액은 지난 8년간 적발액(2052억원)의 56%에 달한다. 이 역시 개인형 급여성 보조금사업은 제외한 수치여서 보조금 부정수급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잘 보여준다.

기획처가 국고보조금통합관리망(e나라도움)의 부정징후탐지시스템(SFDS)으로 점검 가능한 사업은 전체 보조금의 24%에 그친다. 이를 포함해 각 부처 또는 공공기관장이 집행·관리하는 나머지 사업들은 자체 적발 및 제재·환수 조치가 매우 부실해 사각지대에서 방치돼 있다.

■재탕 대책에 "최대 적발" 과시만

'눈먼 돈'이라 불리는 국고보조금의 관리 부실과 늑장 제재 문제는 오랫동안 반복해서 제기돼 왔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부처별 자율권 보장 등을 이유로 획기적인 제도 개선을 이뤄내지 못했다.

정부는 지난 2014년 12월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종합대책을 발표한 이후 근절 방안, 관리강화 방안 등 아홉 차례에 걸쳐 대책을 내놓았다. 2019년 정부는 보조금 부정수급 대책 실패를 인정하고 "발본색원, 일벌백계하겠다"고 했다. 그 때 내놓은 대책이 고용장려금, 농수산직불금, 화물차유류세 보조 등 10조원 규모 이상의 고위험 사업 지정, 특별사법경찰 도입과 시도별 현장책임관 지정, 전담감시팀 설치 등이다. 2023년에는 쪼개기 계약, 내부거래 등의 근절을 위한 집행 부처 장관과 공공기관장의 관리감독 의무를 신설하는 국고보조금 지침을 개정했다.

이런 대책을 비웃듯 부정수급이 줄기는커녕 늘었다.

급기야 최근에 이재명 대통령이 "눈먼 돈 국고보조금은 세금 도둑질, 걸리면 패가망신할 줄 알아야 한다"며 근본적 대책 마련을 지시하자, 당국은 다시 긴장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이달 초 제재 부가금을 부정수급 총액의 최대 8배로, 신고포상금을 국고환수액의 30%로 높이는 내용의 부정수급 근절 방안을 다시 발표했다. 또한 점검 대상(6500건)을 전년보다 10배 늘리고, 관리 사각지대였던 지방정부 보조사업 6700건(10억원 이상 사업)까지 처음 조사하겠다고 했다.

강대현 기획처 국고보조금부정수급관리단장(내정)은 "행정비용이 더 들더라도 부정수급을 대거 적발함으로써 국민적 경각심을 높이겠다"고 했다.

■부정수급 왜 안 줄어드나

담당공무원의 감독 한계, 플랫폼으로도 포착하기 어려운 지능적 수법, 지역내 온정주의 등으로 엄정한 관리감독 체계가 사실상 무너졌다. 정부의 재탕삼탕 계속되는 대책들은 현장에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근절 대책은 사실상 실패라고 봐야 한다. 정부는 매년 부정수급 대책을 내놓으며 국민을 눈속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보조금 부정수급은 왜 줄어들지 않는 것일까.

첫째, 부정수급을 범죄가 아니라 잘못된 관행 정도로 여기는 안일한 인식 때문이다. 보조금 범죄는 특성상 직접 피해자가 없는 '숨은 범죄'여서 행정·수사기관이 공조하지 않으면 적발하기 어렵다.

둘째, 중앙·지방정부, 공공기관의 느슨하고 온정적 관행이다. 각 부처와 집행 기관은 제재 처분에 따른 민원 발생 등을 우려해 큰 처벌 없이 단순 환수조치로 종결해 버리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실제 기획처가 감독이 부실하고 자체 적발 실적이 낮은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을 지난해 특별 점검한 결과, 점검 대상 106건 중에 97건(251억원)을 적발했다. 기관장들이 '제 식구 감싸기'식으로 묵인했거나 처벌하더라도 솜방망이에 그쳤음을 의미한다. 이런데도 "적발률 91.5%"라고 정책을 홍보하는 기획처 등 총괄당국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셋째, 보조금을 떼먹는 수법이 지능화하고 대담해지는데 관리시스템은 낙후돼 있다. 특히 지방정부와 공공기관이 집행하는 보조금은 별도 시스템으로 운영돼 감시망에서 벗어나 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부정사용 관리 추적이 안될 뿐만 아니라 보조금 잔액 정산과 확인조차 파악할 수 없는 구조다. 정부 관계자는 "중앙에서 지방보조금까지 통합해 감독하려 했는데 관련 부처의 반대에 부딪혔고, 그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장관과 공공기관장 책임 물어야

'다종·소액'의 현금을 지급하는 보조금의 특성상 현실적으로 부정사용을 원천 차단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부정 수급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경각심을 높여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다.

전문가들의 제언을 종합하면, 우선 재정지출 구조조정과 효율화, 상습 적발 보조금에 대한 페널티 부과 및 사업 통폐합 등 강도 높은 개혁이 필요하다.

뿌리 깊게 만연해 있는 '눈먼 돈' 인식에 대한 근본적 쇄신이 시급하다. 보조급 부정이 적발된 사업자에 대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 끝까지 환수해 수십 배의 제재금을 실제 부과하는 등 강력한 후속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조금의 특성상 내부거래나 '짬짜미'가 많아 내부 고발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관계자들조차 잘 모르는 보조금 내부고발 창구를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온정주의적 처분 관행을 끊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보조금 집행과 관리 책임자인 부처 장관과 기관장이 부정수급에 대해 책임을 지고 평가받는 명시적인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부처별로 보조금 부정수급 적발 규모와 액수, 회수금액을 구체적으로 공시하고, 총 보조금 지급사업 중 부정수급 비중까지 국민에게 소상하게 알리는 제도가 필요하다.


손원익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나눠준 뒤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다는 '눈먼 돈'이라는 인식 때문에 부정 사용은 늘고, 사후 현장조사에 따른 행정·인력비용은 추가로 발생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탈세와 마찬가지로 제재 추징금 부과와 무작위 조사 등으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나눠주면 그만'이라는 관행적 행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국고보조금 부정수급은 줄지 않을 것이다. 이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못한다면 납세자의 조세저항이 심화되고 국가 재정의 투명한 집행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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