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무 한 스푼의 마법, '골칫덩이' 폐천막을 황금 자원으로
파이낸셜뉴스
2026.03.26 05:56
수정 : 2026.03.26 05:56기사원문
<20> 고려대 김경헌 교수팀, 경북대·LG화학과 공동연구
산업용 타포린의 PVC와 PET 동시 회수 성공
1kg당 1.46달러로 되살리는 폐플라스틱 기술
쓰레기 처리비 줄이고 고부가 원료 얻어 내
택배 상자를 열 때의 설렘, 기억하시나요? 대학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바꿀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이라는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있을 뿐이죠. '언박싱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 대신, 여러분이 알고 싶은 알맹이만 쏙 골라 담겠습니다. 자, 그럼 상자를 열어볼까요? 오늘 언박싱할 주인공은 바로 이 연구입니다.
■소각·매립뿐이던 폐천막, 친환경 자원 순환 길 열어
이 기술은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는 것을 넘어 우리 생활 곳곳에서 버려지는 '복합 플라스틱'을 자원으로 바꾸는 핵심 열쇠가 된다. 비바람에 강한 산업용 천막이나 트럭 덮개는 PVC라는 플라스틱 필름 내부에 PET 섬유가 촘촘하고 강하게 결합해 있어 기존 기술로는 두 물질을 분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매년 엄청난 양의 천막이 소각되거나 매립되며 환경을 오염시켜 왔다.
■사탕무 성분과 190도 온도가 찾아낸 '황금 분리법'
연구팀은 성질이 다른 두 플라스틱을 깨끗하게 갈라놓기 위해 '베타인'이라는 물질에 주목했다. 베타인은 사탕무에서 설탕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에서 추출한 친환경 성분이다. 연구팀은 이 베타인을 촉매로 넣고 190도 온도에서 딱 2시간 동안 반응을 유도했다.
이 공정의 묘미는 '온도와 시간의 미학'에 있다. 190도는 PET 성분을 녹여 액체 상태의 원료로 분해하기에는 충분하지만, 함께 섞여 있는 PVC 성분이 타거나 성질이 변하지 않고 고체 상태를 유지하는 최적의 지점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복잡한 분리 장치 없이도 한쪽은 녹여내고 한쪽은 그대로 걸러내는 정교한 작업이 가능해졌다.
■77% 회수율에 경제성까지 확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폐천막 속 PET 성분의 약 77%를 분해해 새로운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는 핵심 원료로 회수했다. 반면 고체로 남은 PVC는 화학적 손상이 전혀 없어 이를 활용해 다시 튼튼한 플라스틱 판을 제작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경제성 측면에서도 놀라운 발견이 있었다. PVC 속에 들어있던 탄산칼슘 같은 첨가제들이 오히려 화학 반응을 도와주는 보조 촉매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진 것이다. 덕분에 별도의 정제 과정 없이도 재활용 공정을 최대 3회까지 반복할 수 있다. 이렇게 생산된 재생 PVC의 비용은 1kg당 약 1.46달러로 추정된다. 새 플라스틱 가격인 1.01달러보다는 조금 비싸지만, 쓰레기 처리 비용 절감과 원료 생산이라는 부가가치를 생각하면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
김경헌 교수는 "그동안 복합 구조 플라스틱은 재활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대부분 폐기되어 왔다"며 "이번 연구는 분리 공정 없이도 복합 폐플라스틱을 동시에 자원화할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번 성과는 촉매 분야의 세계적 학술지인 '차이니즈 저널 오브 카탈리시스' 온라인판에 게재되며 학술적 가치도 인정받았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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