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로 말하는 한국, 힘으로 말하는 미국
파이낸셜뉴스
2026.03.26 18:41
수정 : 2026.03.26 19:19기사원문
상대와 대화의 창 막힌 한국 정치인
자신 극적으로 드러내려 '삭발투쟁'
미국은 불법체류자 마구잡이 단속
외국 국가원수 무력으로 체포·구금
명분상 문제 있는 이란과 전쟁 강행
미국 정치인도 삭발·단식 나설수도
삭발은 자신의 의지를 극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단식과는 달리 시각적으로 매우 '효과적인 정치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단식의 경우에는 당사자의 건강을 크게 해친다. 과거 드루킹 특검을 주장하며 단식했던 김성태 전 원내대표의 말을 빌리면, 단식 이후에는 여름에도 히터를 켜야 할 정도로 몸 상태가 나빠졌다고 한다. 그만큼 단식은 신체적 대가가 극히 큰 행위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이 시각적으로 충격을 줄 수 있는 삭발을 강행하거나, 최후의 수단이라 할 수 있는 단식을 감행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정치가 아직도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정치인들이 항의 차원에서 삭발하거나 단식하는 경우를 필자는 아직까지 접하지 못했다. 유럽이나 미국의 정치인들이 삭발이나 단식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 정도의 극단적 행위를 통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제도적 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상대를 설득할 가능성이 열려 있고, 공천을 비롯한 모든 정치적 과정과 메커니즘이 합리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충격적인 방식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외국 정치인들이 단식이나 삭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특히 지금의 미국을 보면 그렇다.
과거의 미국과 현재의 미국은 확실히 다르다. 과거 미국은 '인권'과 '자유'의 수호와 같은 가치를 내세워 행동함으로써 동맹국이 미국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다. 국제 관계에서 이러한 '필요성'은 상대방에 대한 최소 수준의 신뢰를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지금 미국의 모습은 그러한 신뢰를 상대방에게 주지 못하고 있다. 신뢰가 사라진 자리에는 '협박'과 '두려움'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협박이나 두려움은 그 생명력이 길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힘에 의한 국제질서 창출'은 조만간 한계에 부딪힐 확률이 높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살아 있던 미국, 인권과 자유의 가치를 가장 우선시했던 과거의 미국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아마도 미국 정치인도 단식하거나 삭발을 강행할지 모른다. 민주적 절차가 사라지면 자신들의 정당한 외침이 묻힐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극단적 의사표현 방식만이 유일한 정치적 소통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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