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와 대화의 창 막힌 한국 정치인
자신 극적으로 드러내려 '삭발투쟁'
미국은 불법체류자 마구잡이 단속
외국 국가원수 무력으로 체포·구금
명분상 문제 있는 이란과 전쟁 강행
미국 정치인도 삭발·단식 나설수도
자신 극적으로 드러내려 '삭발투쟁'
미국은 불법체류자 마구잡이 단속
외국 국가원수 무력으로 체포·구금
명분상 문제 있는 이란과 전쟁 강행
미국 정치인도 삭발·단식 나설수도
유럽이나 미국의 정치인들이 항의 차원에서 삭발하거나 단식하는 경우를 필자는 아직까지 접하지 못했다. 유럽이나 미국의 정치인들이 삭발이나 단식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 정도의 극단적 행위를 통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제도적 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상대를 설득할 가능성이 열려 있고, 공천을 비롯한 모든 정치적 과정과 메커니즘이 합리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충격적인 방식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외국 정치인들이 단식이나 삭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특히 지금의 미국을 보면 그렇다.
트럼프 치하의 미국을 보면, 과거 우리가 생각했던 미국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불법체류자 단속 과정에서 항의하는 시민들이 목숨을 잃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무력 사용을 통해 외국 국가원수를 체포해 자국에 구금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란과의 전쟁도 명분상 문제가 있다. 명분상 문제가 있다는 말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임박한 핵 위협'을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다. 그런데 '위협'이 '임박'했다는 것은 위협이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상태로 해석할 수 있고, 그렇다면 위협의 현실화를 막기 위한 '예방 전쟁'이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런데 국제법상 '예방 전쟁'은 대체로 인정되지 않는다. 또한 설령 '예방 전쟁'을 이번 전쟁의 명분으로 인정하더라도, 이러한 논리가 미국 정보기관 고위직들에 의해 부정되고 있다는 점이 더욱 큰 문제다. 털시 개버드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의회에 사전 제출한 준비 원고에서 "미드나이트 해머 작전의 결과 이란의 핵농축 프로그램은 파괴됐고, 그 이후 재건 시도는 없었다"고 언급했다. 물론 의회에 출석해서는 해당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준비 원고에서는 그렇게 기술한 것이다. 국가대테러센터(NCTC) 국장이었던 조 켄트는 공개서한에서 "이란은 미국에 임박한 위협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며 사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직들이 잇달아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명분을 허물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여론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지난 22일 공개된 미국 CBS 방송의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대이란 군사행동 목표를 분명히 설명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아직 하지 않았다'고 답한 응답자가 68%에 달했다. 또한 대이란 군사행동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자 비율 역시 60%에 달했다. 이 여론조사는 미국 국민들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행위에 동의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의 미국과 현재의 미국은 확실히 다르다. 과거 미국은 '인권'과 '자유'의 수호와 같은 가치를 내세워 행동함으로써 동맹국이 미국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다. 국제 관계에서 이러한 '필요성'은 상대방에 대한 최소 수준의 신뢰를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지금 미국의 모습은 그러한 신뢰를 상대방에게 주지 못하고 있다. 신뢰가 사라진 자리에는 '협박'과 '두려움'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협박이나 두려움은 그 생명력이 길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힘에 의한 국제질서 창출'은 조만간 한계에 부딪힐 확률이 높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살아 있던 미국, 인권과 자유의 가치를 가장 우선시했던 과거의 미국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아마도 미국 정치인도 단식하거나 삭발을 강행할지 모른다. 민주적 절차가 사라지면 자신들의 정당한 외침이 묻힐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극단적 의사표현 방식만이 유일한 정치적 소통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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