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빅 마더', 한편의 미국드라마처럼…알고리즘 시대의 경고
파이낸셜뉴스
2026.03.31 18:31
수정 : 2026.03.31 18:31기사원문
데이터와 계산 규칙(알고리즘)이 정보·선택·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
라이브 뉴스처럼 펼쳐지는 무대
‘빅 마더’는 2022년 프랑스에서 초연된 멜로디 무레의 동명 연극이 원작이다. 광고, 소비, 심지어 정치 콘텐츠까지 데이터 기반으로 추천·노출되는 시대, 이 연극은 거대 권력의 음모를 폭로하려는 뉴욕탐사 기자들의 사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뉴욕탐사 편집국장 오웬 그린(유성주·조한철)과 정치보다 기후 문제에 더 관심이 큰 케이트(최나라), 몇 년 전 연인을 잃고 일에 더 몰두하는 줄리아(신윤지) 그리고 뉴욕탐사 사장의 아들로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알렉스(이강욱·김세환)는 영상의 진위를 추적하던 중 사건의 배후에 보이지 않는 조작 시스템이 존재함을 발견한다.
세종문화회관 중극장 M씨어터에 오른 이 작품은 뉴스의 ‘라이브’성을 최대한 살린 실험적인 무대로 눈길을 끈다. 무대 중앙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실시간 뉴스가 송출되고, 무대 안팎 배우들의 얼굴이 라이브로 연결돼 극의 전개를 돕는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 세트와 여러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연기는 무대에 생동감을 더한다. 특히 기존 연극보다 많은 약 60개의 짧은 장면으로 구성돼, 숨 돌릴 틈 없이 빠른 호흡으로 전개된다.
뉴스와 정보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나?
이 작품은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와 정보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지를 들여다본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뉴스를 장악했던 실제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대선 전후로 성추문 논란에 휩싸였던 도널드 트럼프, 미성년자 성착취 및 인신매매 사건으로 파문을 일으킨 제프리 앱스타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SNS 기반 폭로나 허위정보의 확산은 이제 우리 사회의 일상과 다름없다. 극 중 뉴욕탐사 기자들의 말처럼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가려내기조차 쉽지 않다. 오웬 그린의 딸이자 PR전문기업 ‘헌드레드 몽키스’의 직원인 로즈의 문제 제기처럼,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매력적으로 포장된 거짓이 때로는 진실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헌드레드 몽키스’ 실세의 주장은 섬뜩하다.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생각만으로 기기를 조작하는 미래는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의 기술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기술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대중 전체로 확장될 경우 우리의 사고마저 통제되는 사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공포를 자아낸다.
다양한 시대적 담론을 던지는 이 작품은 네 명의 기자를 전면에 내세우며, 결국 언론의 정론직필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환기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된다. 이러한 선택은 작품의 주제를 축소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도 주지만, 언론의 가치를 강조하는 동시에 개인의 윤리와 선택의 중요성을 환기하며 관객에게 보다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네 주인공의 개인사가 거대 권력이나 음모와 연결돼 있는 서사 구조 역시 이러한 주제를 한층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준우 연출은 “관객 각자가 스스로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질문을 가져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가 노골적인 감시와 통제의 권력이라면, ‘빅 마더’는 보호와 설득의 얼굴로 여론과 사고를 은밀하게 유도하는 권력을 의미한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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