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사회
파이낸셜뉴스
2026.03.31 18:47
수정 : 2026.03.31 18:47기사원문
양탄자들은 특정 시기의 인사들이지만 이들이 보여준 태도는 한국 보수 전반의 사고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시장 자율'과 '속도조절'을 중시한다. 시장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변화의 속도가 지나치면 사회적 갈등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다만 시장과 자율을 너무 믿다가 편견에 빠질 때도 있었다.
진보 인사들은 이런 보수의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도의 목표와 속도를 정해두고 직진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의 개입이 있어야만 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앞만 보며 과속하다가 다른 위험을 보지 않는다면 이 역시 편견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민감한 제도들을 빠르게 채택하는 '과속 정책'에 제동을 걸 사람들이 모두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3차 상법 개정안의 핵심인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주주환원이라는 취지에 부합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할지, 보유할지는 기업 성장 단계와 산업구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기업의 대리인인 재계단체도 마찬가지다. 대한상의는 지난달 대통령으로부터 가짜뉴스를 보도자료로 발표했다는 질타를 받은 뒤 상당히 위축됐다. 직간접적 책임이 있는 임원이 대거 경질되면서 핵심 현안에 대해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공무원들이 대통령의 지시에 압도되고 순치된 지도 오래다. 경제부총리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조치와 관련한 보고를 하면서 다소 모호한 표현을 썼다가 대통령으로부터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지적을 받았다. 부총리는 추경 논의가 나오자 '재정의 파수꾼'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역대 최단인 19일 만에 정부안을 내놓기도 했다.
언론 역시 정책 기조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한 언론은 집권 세력의 국정운영 능력과 나라의 비전, 정치적 안정성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주가 상승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비판을 위한 비판'은 지양돼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언론이 '편견 없는 논평'이라는 본업을 다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세상을 한쪽 눈으로만 보는 '편견사회'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자신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데 이데올로기에 눈이 먼 사람들이 문제라고 본다. 자기 경험이 전부인 양 조직이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향도 있다. 사회심리학자 리 로스가 말한 '순진한 현실인식(Naive Realism)'에 우리 사회가 갇혀 있는 것은 아닌가.
누구나 편견을 가질 수 있고 순진한 인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편견이 주류가 되고 사회 전체의 갈등이 심해진 상황에서 건강한 정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편견사회에서는 자유로운 기업가정신도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정부에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 기업인은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라고 답했다. 정부는 기업을 지원하고 그 대가로 무언가를 주문하고 싶겠지만 기업의 생각은 다르다. 기업가정신은 주문 생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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