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CEO가 살아남는다. (9)

파이낸셜뉴스       2026.04.12 09:00   수정 : 2026.04.12 09: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CEO에게 질문이 들어온다. "이 프로젝트, 성공할까요?"

어제까지의 CEO는 이렇게 답했다. "내 경험상…" 수십 년의 노하우와 직감을 근거로 자신 있게 방향을 제시했다.

그 경험은 조직의 나침반이었고, 그 직감은 신뢰의 토대였다. 그런데 2026년, 상황이 달라졌다.

CEO의 경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PwC가 95개국 CEO 4,4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년 글로벌 CEO 서베이'는 충격적인 진단을 내놓는다. CEO에 대한 신뢰가 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AI 시대의 도래'가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CEO 스스로 '내 경험이 과연 지금도 유효한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한 CEO의 고백은 이 현실을 집약한다. "AI를 쓰기 시작하고 나니, 내가 20년간 쌓은 노하우가 여전히 통하는지 확신할 수 없게 됐다."

과거, Pre-AI 시대에는 CEO의 경험이 곧 조직의 나침반이었다. "내가 이 사업을 해봤으니까"라는 말이 설득력 있는 근거였고, 의사결정의 기준은 '비슷한 과거 사례'였다. CEO의 직감 자체가 경쟁 우위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과거 데이터 분석은 AI가 더 잘한다. 대규모 패턴 분석, 유사 사례 탐색은 사람보다 빠르고 폭이 넓다. 그렇다면 미래 예측은? 여기서 역설이 드러난다. AI도, CEO의 직감도 모두 틀릴 수 있다.



PwC 조사는 이 간극을 냉정한 수치로 보여준다. 전 세계 CEO의 56%가 "AI 도입 이후 지난 1년간 매출 증대도, 비용 절감도 경험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반면 두 가지 효과를 모두 봤다는 CEO는 겨우 12%에 불과하다. AI가 '마법의 해법'이라는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이보다 더 선명하게 드러날 수는 없다. 한 CEO의 표현은 씁쓸하다. "AI가 답이라고들 말하지만, 정작 우리는 질문이 뭔지도 모른다."

AI 성과, 업종마다 왜 다른가?


AI의 효과가 업종별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도 시사적이다. 금융권에서는 고객 응대, 사기 탐지, 신용 심사 영역에 AI를 빠르게 도입했지만, 규제와 설명 가능성 요구라는 벽 앞에서 '전면 자동화'까지는 가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PwC가 지적하듯, 책임 있는 AI 거버넌스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체계를 갖춘 금융기관일수록 수익성 개선에서 앞서 나간다. 같은 기술을 쓰더라도, '어디에 어떤 원칙으로 쓸지'를 고민한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의 격차는 이미 벌어지고 있다.

제조업에서는 또 다른 양상이 보인다. 선도 기업들은 설비에 센서를 달고 AI 기반 예지보전을 도입해 설비 고장과 다운타임을 30~50% 줄이고, 유지보수 비용을 최대 40%까지 절감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데이터가 축적되고 공정이 표준화된 환경에서는 AI가 빠르게 '돈이 되는 도구'로 작동한다. 반대로 생산 데이터가 파편화되어 있거나 라인별 시스템이 제각각인 기업에서는 AI 프로젝트가 수년째 파일럿 수준에서 맴돈다.

금융과 제조의 공통점은 하나다. 기술 자체가 아니라, 데이터·거버넌스·조직 설계라는 기초 체력이 AI 성과를 가르는 진짜 기준이라는 사실이다.

전략을 생각할 시간이 없다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특징은 '시간의 제약'이다. 글로벌 CEO들은 자신의 시간 중 47%를 1년 미만의 단기 과제에 쓰고, 5년 이후를 보는 장기 의사결정에는 겨우 16%만을 할애한다고 답했다. 아시아·태평양 CEO들 역시 장기 변혁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실제 일정의 79%는 단기 과제에 집중돼 있다.

한국 CEO들도 예외가 아니다. 매출 전망에 대한 자신감은 줄어드는 반면, AI를 따라잡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 재창조의 필요성은 절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분기 실적 압박, 규제 대응, 환율·금리 변동성, 일일 운영 관리가 CEO의 시간을 잠식한다.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들은 뒤로 밀린다. "우리는 10년 뒤 어디에 있을 것인가?" "AI가 우리 사업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 "우리 조직이 진짜 잘하는 것은 무엇이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는 '전략적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CEO는,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AI 시대의 리더가 버려야 할 3가지


이제 분명해진다. AI 시대의 리더는 '모든 걸 안다'는 환상부터 버려야 한다.

첫째, '정확한 예측'의 환상이다. 2022년, 반도체 공급 부족 장기화 전망은 몇 분기 만에 과잉 논쟁으로 뒤집혔다. 2023년, 생성형 AI 상용화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던 예측은 거대 언어모델의 폭발적 확산 앞에 무너졌다. 예측이 틀린 것은 CEO가 무능해서가 아니다. 시대 자체가 구조적으로 예측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미래를 정확히 맞추는 능력보다, 틀릴 수 있다는 전제를 인정하고 여러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리더가 더 강하다.

둘째, '개인 영웅주의'다. 한 명의 탁월한 리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서사는 AI 시대에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AI로 매출과 비용 양쪽에서 성과를 낸 '선도 그룹' 기업들의 공통점은 CEO 한 명의 천재성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의 집단 지성이 작동하는 구조에 있다. 데이터 과학자, 엔지니어, 현장 영업, 고객 지원, 규제 전문가까지 서로 다른 시각이 모일 때 비로소 AI는 '쓸모 있는 도구'가 된다.

셋째, '답을 아는 리더'의 이미지다. 회의실에서 CEO가 먼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입을 여는 순간, 대부분의 조직에서 회의는 사실상 끝난다. 반대 의견은 사라지고, 대안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그 침묵은 조직의 학습이 멈췄다는 신호다.

여기서 하나의 역설이 드러난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리더의 '모름'이 오히려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술·규제·지정학·소비자 행동이 동시에 요동치는 지금, 누구도 혼자 답을 가질 수 없다.

그렇다면 리더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여러 시나리오를 준비하되, 그것을 '위에서만' 만들지 않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가 빠르게 회복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경쟁사가 새로운 AI 기반 제품을 내놓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규제가 강화돼 데이터 활용이 제한될 때 우리는 어디로 전환할 것인가? 이 질문들을 경영진 워크숍 테이블에만 올려놓을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에 던져야 한다. 각 사업부, 각 직무, 각 지역이 자신의 관점에서 답을 그려볼 때, 침묵은 깨지고 아이디어가 살아난다. 이것이 불확실성을 기회로 바꾸는 리더십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CEO들에게 한 가지 장면을 떠올려보길 권한다. 지난주 당신이 주재한 회의에서,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먼저 말했는지 아니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먼저 물었는지 말이다. 전자를 선택한 리더는 AI 시대에 점점 더 위험해진다. 조직은 침묵할 것이고, 당신이 모르는 문제가 조용히 쌓여갈 것이다. 데이터는 누군가 질문을 던질 때에만 의미를 가진다.

PwC 2026 CEO 서베이에서 AI로 성과를 낸 소수의 CEO들에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나는 다 안다"고 말하기보다, "나는 모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그 순간, 조직의 침묵은 깨진다.
그리고 AI가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일이 시작된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 함께 질문하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일이다. AI 시대의 리더십은 더 강한 확신이 아니라, 더 깊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김문경(국민대학교 겸임교수·대한리더십학회 부회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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