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헬기로 중증환자 신속 대응… 세브란스와 실시간 협진"
파이낸셜뉴스
2026.04.05 18:24
수정 : 2026.04.05 18:24기사원문
상급종합병원 도전 김성수 제주한라병원장·한라의료재단 이사장
권역응급의료·외상센터 구축
병원·호텔 묶은 헬스리조트 운영
진단·수술·사후관리까지 책임
로봇수술로 의료 경쟁력 강화
500병상 실시간 환자 모니터링
치매 신약 '레컴비' 처방 시작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제주 의료의 가장 오래된 불안은 분명했다. 큰 병이 생기면 치료 계획보다 비행기표부터 챙겨야 했다. 5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제주도민의 타지역 원정 진료 인원은 14만5054명, 진료비는 2448억4732만원에 달했다.
최근에도 연간 14만명 안팎의 도민이 타지역 진료를 이용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김성수 제주한라병원장 겸 한라의료재단 이사장이 붙든 과제도 그 지점에 놓여 있다. 상급종합병원 간판이 없더라도 제주 안에서 상급병원급 진료를 실제로 해내는 체계를 만들 수 있느냐다. 그는 원정진료 부담을 줄이고 제주에서도 최고 수준 의료서비스를 받게 하는 것이 지금 제주 의료가 가야 할 길이라고 보고 있다.
제주에서는 상급종합병원 필요성이 오래전부터 반복됐다. 하지만 김 이사장이 먼저 꺼내는 말은 지정이 아니라 역량이다. 이름을 다는 문제보다 실제로 중증환자를 제주에서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시선이다.
제주한라병원은 상급종합병원 평균사망률보다 낮은 종합병원군에 포함됐다. 전국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 가운데 이런 평가를 받은 병원은 18곳이었다. 지방 종합병원은 5곳뿐이었다. 제주에서는 제주한라병원이 유일했다. 중증환자가 많이 몰리는 병원이면서도 이런 평가를 받았다는 점은 의미가 작지 않다.
김 이사장은 "간판보다 결과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제주에서 살릴 환자를 제주에서 살리고 제주에서 치료를 시작한 환자가 제주에서 회복까지 이어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의 메시지는 공동진료센터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제주한라-세브란스 공동진료센터 개소와 관련 "공동진료센터는 원정진료로 인한 도민들의 시간적·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제주에서도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협력 모델"이라고 밝혔다.
제주도민이 서울 대형병원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상급종합병원 명패 때문만은 아니다. 진료 수준에 대한 신뢰, 지역 안에서 끝내기 어려운 치료 구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그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고 보고 있다. 상급병원 지정 논쟁만 되풀이할 게 아니라 최고 수준 의료를 제주 진료망 안으로 실제로 연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응급과 외상에서 먼저 증명했다
김 이사장이 제주한라병원의 강점으로 가장 중심에 두는 축은 중증응급의료다. 제주한라병원은 권역응급의료센터, 권역외상센터, 닥터헬기를 결합한 응급의료 3축을 운영하고 있다. 제주처럼 사면이 바다인 섬에서는 이 체계가 곧 생존율과 직결된다.
권역응급의료센터는 2024년 전국 응급의료기관 평가에서 최우수 A등급을 받았다. 적정시간 내 전문의 직접 진료율 등 7개 항목에서 전국 1위를 기록했다. 권역외상센터도 2020년부터 2025년 6월까지 중증외상 환자 2338명을 진료하는 동안 다른 병원으로 전원한 환자가 12명뿐이었다. 중증환자 1000명당 전원 인원은 5.0명으로 전국 평균 44.4명보다 크게 낮다. 국립중앙의료원 비상진료체계 기여도 평가에서도 최고 등급인 S등급을 받았다.
김 이사장은 "제주 의료가 신뢰를 얻으려면 가장 위급한 순간에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며 "응급과 외상에서 버티지 못하면 어떤 비전도 힘을 얻기 어렵다"고 밝혔다.
공동진료센터는 김 이사장이 꺼낸 두 번째 카드다. 제주한라-세브란스 공동진료센터는 제주 지역 의료기관과 수도권 빅5 병원이 협력한 전국 첫 모델로 소개됐다. 폐암, 간암, 위암, 유방암 같은 주요 암 질환과 심뇌혈관 질환, 희귀·난치 질환, 소아 중증질환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양측 의료진은 실시간 원격 협진과 다학제 진료를 하고 연세의료원 전문 의료진은 제주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진료한다. 서울 치료가 필요하면 패스트트랙으로 예약과 전원 절차도 지원한다.
김 이사장은 이 모델을 단순 제휴로 보지 않는다. 그는 "중증환자가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시간과 비용을 쏟는 구조를 줄이고 진단과 치료, 사후관리까지 제주 안에서 이어가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공동진료센터는 지역 완결형 필수의료체계의 디딤돌"이라고 설명했다. 3차병원은 희귀·중증질환과 고난도 수술을 맡고 2차병원은 지역 내 필수의료를 강화하는 구조다.
■수도권 환자가 제주로 오는 장면
변화의 징후는 로봇수술에서 먼저 드러난다. 제주한라병원은 휴고 로봇수술 시스템을 도입해 대장암과 전립선암 수술을 시작했다. 수도권 비뇨기암 환자가 서울 대형병원 대신 제주한라병원에서 수술받은 사례도 나왔다. 병원이 환자를 보내는 곳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신호다.
김 이사장이 그리는 판은 병원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라의료재단은 제주한라병원과 함께 WE병원·WE호텔을 묶은 헬스리조트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수술과 응급치료가 제주한라병원의 역할이라면 회복과 건강관리는 WE가 받치는 구조다. 진단부터 수술, 회복과 사후관리까지 제주 안에서 이어가겠다는 김 이사장의 구상이 이 지점에서 완성된다.
김 이사장의 구상은 중증응급의료와 협진에서 멈추지 않는다. 제주한라병원은 500병상 이상 규모 전 병상에 실시간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 이른바 스마트 병상을 도입했다. 김 이사장은 이를 전국 최초 사례로 설명했다. 중앙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병동 전체 환자 상태를 실시간으로 보고 이상 징후가 생기면 곧바로 대응하는 구조다.
치매 진료도 넓혔다. 제주한라병원은 초기 알츠하이머병 신약 레켐비 처방을 도내 최초로 시작했고 아밀로이드 PET-CT도 제주에서 유일하게 시행할 수 있다. 김 이사장은 "응급실뿐만 아니라 진단과 병상, 수술, 추적관리까지 전반의 기반이 함께 올라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의 도전은 아직 진행형이다. 제주한라병원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과 별개로 지역 안에서 여러 기관이 역할을 어떻게 나눌지,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확보할지도 함께 풀어야 한다. "제주에서 큰 병 걸리면 결국 서울 가야 한다"는 말을 조금씩 밀어내는 일, 그것이 김 이사장이 가리키는 방향이다.
jyb@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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