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국가기록원, 19세기 의료선교 기행편지 복원 공개
파이낸셜뉴스
2026.04.06 12:00
수정 : 2026.04.06 12:00기사원문
19세기 말 조선 의료 환경과 생활상 담긴 희귀 기록물 주목
복원 작업 18개월 걸쳐 오염 제거 및 보존성 강화 완료
복원본 디지털화해 국민 누구나 양화진기록관서 열람 가능
[파이낸셜뉴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7일 제54주년 보건의 날을 맞아 양화진기록관이 소장한 '로제타 셔우드 홀의 두루마리 기행편지'를 전면 복원해 최초로 공개했다고 6일 밝혔다. 이 기록물은 19세기 말 조선의 의료 환경과 생활상을 담은 희귀 자료다.
편지는 94장의 낱장을 이어 붙인 두루마리 형태로, 가로 16.4cm, 세로 길이 31.8m에 달한다. 1890년 9월 4일 샌프란시스코항에서 증기선을 타고 호놀룰루와 일본을 거쳐 10월 14일 조선에 도착하기까지 40일간의 태평양 횡단 여정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조선 도착 이후 1891년 1월 초까지 3개월간의 기록은 당시 척박했던 조선의 의료 환경과 주민들의 일상을 외국인 선교사의 시선으로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는 한국 근대 의료의 시작과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특히 전통 한옥 진료소인 ‘보구녀관(普救女館)’의 모습, 가마와 전통 혼례, 고종이 청나라 사절단을 맞이하는 행렬 등 로제타가 직접 촬영한 희귀 사진 59점이 함께 부착돼 당시 시대상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기행편지는 아이언 겔 잉크(Iron Gall Ink)를 사용해 작성됐으며, 이 잉크는 시간이 지나면서 산화돼 글자 부분이 부식 및 갈변하고 종이가 떨어져 나가는 특성을 지닌다. 실제로 편지는 부착된 비닐테이프의 변색과 접착제 경화, 잉크 부식으로 글자가 갈색으로 변하고 종이가 바스러지는 등 훼손이 심했다. 또한 지름 0.3cm의 작은 나무축에 32m 길이로 말려 있어 꺾임과 접힘으로 활용이 어려운 상태였다.
국가기록원은 약 18개월에 걸쳐 오염물질 제거와 탈락된 글씨의 결실부를 복원용 한지로 보강해 안정성과 보존성을 높였다. 두루마리 형태의 물리적 손상을 막고 보존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원본 크기에 맞는 ‘굵게말이축’을 사용해 말림 횟수를 최소화했다. 복원된 편지는 오동나무 상자에 보관해 안전하게 관리한다. 복원 완료 후에는 고해상도 스캐너로 디지털화해 열람과 연구, 전시에 활용할 복제본을 제작했다.
복원된 원문은 양화진기록관과 국가기록원 누리집을 통해 국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국가기록원은 2008년부터 ‘맞춤형 복원·복제 지원 서비스’를 운영하며 81개 민간·공공기관의 기록물 9272매를 복원했다.
로제타 셔우드 홀은 1865년 미국 뉴욕 리버티에서 태어나 1889년 펜실베니아여자의과대학을 졸업했다. 1890년 8월 21일 조선 의료선교를 위해 출발해 10월 14일 서울에 도착했고, 10월 15일부터 보구녀관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이후 평양 기홀병원, 광혜여원, 맹아 학교, 어린이 병원, 농아학교, 동대문부인병원, 제물포부인병원, 조선여자의학강습소 등을 설립하며 한국 근대 의료와 교육의 초석을 놓았다. 1933년 선교사 은퇴 후 귀국했으며, 1951년 미국에서 소천해 유언에 따라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됐다.
기행편지에는 고종의 통치 상황과 조선이 미국, 일본, 일부 유럽 국가들과 체결한 조약, 기독교 신앙의 자유 상황도 담겼다. 고종은 1873년에 왕위에 올라 당시 약 40세였으며, 기독교 교육을 금지하는 옛 법은 폐지되지 않았으나 병인박해 이후 기독교 신앙의 자유는 크게 방해받지 않았다. 편지에는 1890년 11월 8일 신정왕후 국장과 관련해 청나라 조문 칙사 행렬을 목격한 기록도 포함됐다. 당시 고종은 성벽 밖에서 중국 대사를 맞이했으며, 군인과 깃발, 천막, 악기, 다양한 의상들이 어우러진 장면이 서울의 큰 구경거리가 됐다.
이용철 국가기록원장은 “복원된 두루마리 기행편지가 보건의 날에 공개돼 보건 의료 종사자를 기리는 의미가 크다”라며 “앞으로도 국가기록원의 우수한 복원 기술로 소중한 기록유산을 안전하게 영구 보존하겠다”고 밝혔다.
ktitk@fnnews.com 김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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