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유전' 도그마로 농업 못 살린다
파이낸셜뉴스
2026.04.06 18:31
수정 : 2026.04.06 19:25기사원문
전체 농지 중 임차농지가 절반
경자유전 원칙 이미 시효 끝나
농가 고령화 현실과도 안 맞아
AI 시대 농촌 소멸 막으려면
강제매각보다 임대 활성화 등
'경자용전'으로 발상 전환 절실
설상가상으로 어렵사리 지방으로 이주·정착한 청년층조차 최근 수도권으로 회귀하고 있다. 지난달 말 산업연구원이 낸 분석자료를 보라. 비수도권으로 이동한 청년 3명 중 1명은 2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수도권으로 '유턴'했단다.
며칠 전 오랜만에 찾은 고향 마을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실감했다. 40~50대는 고사하고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인 필자 또래 지인도 만나기 어려웠다. 산업화와 '이촌향도(離村向都)'의 물결을 타고 대거 도시로 떠난 탓이다. 촌수가 가까운 어르신 댁에 들렀다. 90대와 80대인 내외분이 텃밭에서 힘겹게 기른 유채나물을 한 소쿠리 담아 주셨다. 집에서 먼 논밭은 이제 힘에 부쳐 돌보기 어렵다는 말씀에 가슴이 짠했다.
하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농지 관리 문제에 관한 휘발성 높은 발언으로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국무회의에서 농지가 투기 대상이 돼 가격이 크게 올라 귀농·귀촌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다. 특히 경작하지 않는 농지를 전수조사해 위법행위 발견 시 강제매각 명령 방침까지 밝혔다. 현장 민심이 심상찮게 흐르자 고령농민 소유나 상속 농지는 강제매각 대상이 아니라고 한발 물러섰지만….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 농지 관리가 너무 엉망이 돼 투기 대상이 됐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수도권, 그중에서도 개발 호재가 많은 신도시 주변의 농지에 투기 수요가 몰린 건 맞다. 지난 2021년 문재인 정부 때 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를 보면 그렇다. LH 직원들이 허위로 농지를 취득해 대규모 부동산 투기를 해 온 사실이 적발된 사건이니 말이다.
그러나 비수도권 다수 지역의 현실은 다르다. 전국 지가 상승률에 비해 지역 농지의 평균 상승률이 극히 낮은 데다 잘 팔리지도 않는다. 심지어 농업인구 고령화로 임대료 없이 거저 경작할 임차인조차 찾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 대통령의 투기성 농지 강제매각 발언에 일선 농가에서 냉소적 반응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대통령은 농지 투기 근절 의지와 함께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소환했다. 이는 현행 1987년 헌법 121조 1항에 명시돼 있다. 다만 1948년 제헌헌법부터 그 정신을 담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농지는 농사짓는 사람만이 소유한다'는 이 원칙에 따라 '유상몰수·유상분배' 기조로 농지개혁을 실시했다. 좌우 이념갈등이 극심했던 해방정국에서 경자유전 원칙은 '신의 한 수'였다. 그 덕분에 농업 이외에 이렇다 할 산업이 없던 당시 다수 소작농들이 소규모지만 자작농으로 변신하게 됐으니….
하지만 경자유전 원칙은 이미 사실상 사문화된 형국이다. 2024년 기준으로 총인구 중 농가인구 비율은 3.8%에 불과했다. 그나마 인구 고령화 등 갖가지 사유로 자기 땅에서 농사짓는 농민은 절반도 채 안되고, 농지의 절반가량을 비농업인이 소유하고 있다. 지주·소작제라는 봉건적 잔재를 떨어낸 경자유전 원칙이 현시점에선 낡은 도그마가 된 느낌이다. 농촌 공동화를 막는 지렛대 구실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보다 먼저 농촌인구 고령화를 겪은 일본의 대응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경자유전을 고집하지 않고 기업농에도 문을 여는 농지 임대 활성화 정책으로 경작면적과 청년 농업인을 같이 늘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니 말이다.
이제 경자유전이란 흘러간 물로 농촌을 살리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면? 농지를 누가 소유하든 간에 실제로 농업에 활용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경자용전(耕者用田)'으로 발상의 전환이 긴요하다는 뜻이다. 정부가 예산으로 감당할 요량이 아니라면 팔리지 않은 벽지 농지까지 강제매각하도록 등 떠미는 건 황당하다. 그보다는 임차인에게 직불금 확대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줘 농지 임대를 활성화할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 더욱이 바야흐로 인공지능(AI) 시대다. 소규모 자작농이 아니라 기업형 스마트농업을 키울 때임을 깨닫기 바란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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