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의 생존 키워드

파이낸셜뉴스       2026.04.07 18:10   수정 : 2026.04.07 18:35기사원문

가업상속공제가 돌연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기가 차다"라는 일갈로 편법 가업상속의 폐해를 들춰내면서다. 그렇다고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마녀사냥식으로 매도할 순 없다.

이 제도가 도입된 그럴 만한 사정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된 1997년 당시 취지는 중소기업의 기술을 보호하자는 차원이었다. 창업주의 장인정신과 기술을 2세에게 전수, 백년기업으로 키우자는 취지는 큰 공감대를 얻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이 제도는 '고용유지'라는 목적에 맞게 더욱 혜택 수위를 높인다. 중소기업이 계속 유지돼야 고용에 도움이 된다는 명분이었다.

문제는 가업상속제의 취지를 편법으로 이용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가업상속제의 편법 사례는 이미 SNS 영상을 통해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제빵 시설도 없는 화려한 베이커리를 열고 텅 빈 넓은 땅에 주차장을 열어 가업승계랍시고 세제혜택을 받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참에 가업상속제를 아예 없애버리거나 제도개선을 하면 중소기업의 경쟁력에 도움이 될까.

사실 가업승계 지원제는 이미 근본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 당장 창업주의 사업을 물려받으려는 2세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MZ세대는 부모의 피땀 어린 가업이어도 자신의 적성과 가치관에 맞지 않으면 과감히 거부한다. 이러니 주차장이나 베이커리 같은 변칙승계가 벌어진 것이다. 전문경영인 영입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유능한 외부 경영자를 유인할 보상체계나 지배구조를 갖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업승계를 바라보는 사회 여론도 따갑다. 상속이 곧 특권의 대물림으로 읽히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가업승계 세제지원은 갈수록 설득력을 잃고 있다.

게다가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피할 수 없는 결정적 변수가 등장했다. 인공지능(AI)이다. 가업승계의 핵심 명분은 장인정신과 숙련된 기술 전수다. 창업주에 체화된 기술 노하우와 거래 및 신뢰 네트워크를 가족에게 물려준다는 논리는 가업승계 공제 지원에 큰 명분이 되었다. 그런데 AI가 창업주만 쥐고 있던 암묵지를 누구나 활용 가능한 형식지로 바꿔놓기 시작했다. 숙련공의 노하우가 데이터로, 반복 작업이 알고리즘으로, 영업 관계가 플랫폼으로 대체되는 추세다. AI의 자동화와 알고리즘이 산업에 접목되면서 기술을 전수한다는 가업승계의 존재 이유가 뿌리째 흔들린다.

더 냉혹한 현실도 눈앞에 닥쳤다. 2세에게 가업승계를 하기 위해 세금 혜택을 받으며 10년 고용유지 의무를 이행하는 동안 그 업종 자체가 전환되거나 소멸할 수 있다. 전통 제조분야는 AI 영향력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된 곳이다. 세금은 면제해 줬는데 기업도, 일자리도, 기술도 남지 않는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결정적으로 이 제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이 있다. AI 시대에 중소기업의 생존 키워드는 빠른 피벗, 즉 과감한 전환이다. 그런데 가업승계 제도는 현상유지가 원칙이다. 업종변경 제한, 지분유지 의무, 고용유지와 같은 요건들은 변신을 가로막는 족쇄다. 기업을 돕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오히려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고 세금만 축내는 셈이다.

물론 가업승계에 필요한 비용 때문에 기업 존속이 어려운 문제를 정책으로 풀어줘야 한다. 제도의 순기능은 살리고 부작용은 개선하는 게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거대한 산업 전환기 앞에 서 있다. 작은 기업일수록 큰 변화 앞에 더욱 위태롭다.
경영환경 변화에 맞게 정책을 바라보는 눈도 크게 떠야 한다. 그렇다면 '가업(家業)' 승계의 관점도 '기업(企業)' 승계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게 시대적 흐름에 맞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누가 경영권을 쥐느냐보다 그 기업이 품은 일자리와 기술이라는 사회적 자산이 살아남느냐가 본질이기 때문이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