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 고르랬더니 '등급' 골랐다… 겉도는 고교학점제 1년
파이낸셜뉴스
2026.04.09 15:17
수정 : 2026.04.09 15:17기사원문
KEDI 브리프 분석
대입 유불리에 갇힌 선택권
교육과정·입시 불일치 심각
[파이낸셜뉴스]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된 지 1년이 지났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자신의 흥미와 적성 대신 대입에 유리한 과목을 골라야 하는 현실에 갇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과정, 학생평가, 대입제도, 고교체제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 제도의 실질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종합적인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연구진은 제도 전면 적용 1년 차를 맞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교사와 학생, 대입 관계자 등 핵심 이해당사자 36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담을 진행했다.
그결과, 학생들은 과목 선택 시 흥미나 적성보다 수강 인원, 대학 권장과목, 수능 과목 여부 등 대입 유불리를 우선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학생 선택과목 비율은 51.7%까지 확대됐지만, 실질적인 선택권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지역 간 격차도 심각한 수준이다. 소규모 농어촌 학교 학생들에게 공동교육과정과 온라인학교는 사실상 '필수 생존' 영역이지만, 개설 기준 미충족 등으로 수강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본수학·기본영어를 개설한 학교는 전국 2378개 고교 중 81개교(3.4%)에 불과했다.
학생평가 측면에서도 문제가 드러났다. 내신 등급이 9등급에서 5등급으로 완화됐지만, 상위권 중심의 치열한 내신 경쟁은 그대로다. 상대평가 병기 과목이 확대되면서 학생들은 진로 적합성보다 등급 확보가 쉬운 '안전한 과목 조합'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 학생부 기재 항목 축소로 외부 스펙 경쟁은 줄었지만,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 경쟁이 과열되는 풍선효과도 나타났다.
대입제도와의 불일치도 핵심 쟁점이다. 수능 위주 정시 모집 40% 비율이 유지되는 가운데, 학생들은 수능과 학교 내신이라는 이중 부담을 호소했다. 교사와 대입 관계자들은 수능 비중 축소와 학생부종합전형 확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연구진이 제시한 정책 개선 방향은 네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교육과정 측면에서는 온라인 공동교육과정 확대를 통한 지역 격차 완화가 우선 과제로 꼽혔다. 시·도 간 과목 공유를 통해 지리적으로 불리한 학생들에게 더 많은 수강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이 자신의 수준과 진로에 맞게 기본과목이나 융합선택과목을 실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고 졸업생의 17.3%가 전문대 진학 또는 취업을 선택하는 현실을 고려해, 직업위탁과정 연계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생평가 측면에서는 절대평가의 점진적 확대가 필요하다고 봤다. 다만 대입 변별력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고교가 절대평가 결과의 산출 근거, 분할점수, 수행평가 비율 등 상세 정보를 대학에 제공해 고교-대학 간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서술형으로 운영되는 세특 기재 방식도 성취기준 기반의 체크리스트 형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입제도 측면에서는 수능의 절대평가 전환과 자격고사화를 통해 수능 영향력을 줄이고, 학생부종합전형을 확대·내실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분리 운영 중인 학생부 교과전형과 종합전형을 통합하고, 수시·정시도 일원화해 학생의 3년간 학교생활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정성평가 비중이 커지는 만큼 이를 뒷받침할 입학사정관의 전문성 확보와 안정적인 근무 여건 마련도 과제로 제시됐다.
고교체제 측면에서는 수월성과 형평성 논쟁을 넘어 미래 사회 변화에 대응한 고교체제 재구조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기술 발전과 온라인학교 확장, 형식·비형식 교육의 경계 해체 등 학습 생태계의 근본적 변화에 대비한 청사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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