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기록 욕심? 그럼 개인 종목 해야죠"… 이범호 감독이 이태양을 그토록 원했던 진짜 이유

파이낸셜뉴스       2026.04.09 19:50   수정 : 2026.04.09 20:27기사원문
선발 조기 강판 위기 속 등판, 3이닝 무실점 퍼펙트 피칭으로 불펜 구했다
"투수 한 명 더 아껴야죠" 3이닝 홀드 뒤에 숨겨진 베테랑의 헌신과 품격
출국장 인터뷰의 약속 지켰다… "벼랑 끝 베테랑, 2차 드래프트 1순위 증명할 것"
젊은 호랑이 군단 마운드 든든하게 받치는 '4억 원의 기적', 2차 드래프트 대성공 예감





[파이낸셜뉴스] "보직이요? 시키는 대로 해야죠. 개인 보직에 욕심을 낸다면 단체 종목이 아니라 개인 스포츠를 해야 합니다."

지난 1월, 따뜻한 호주로 스프링캠프를 떠나기 위해 모였던 김포공항 출국장. 새롭게 호랑이 군단의 유니폼을 입은 베테랑 투수 이태양은 기자의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답했다. 자신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심정이며, KIA 타이거즈가 2차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자신을 지명한 이유를 올 시즌 반드시 증명해 내겠다는 독기 품은 눈빛이었다.

그리고 정규시즌이 개막한 지금, 그 묵직했던 약속은 그라운드 위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로 증명되고 있다.

지난 8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 경기. KIA는 경기 중반 15-5라는 큰 점수 차로 앞서고 있었지만, 더그아웃의 공기는 결코 여유롭지 않았다. 선발 등판했던 김태형이 4회를 채우지 못하고 조기 강판당하면서 최지민과 조상우 등 핵심 불펜들이 일찌감치 투입됐기 때문이다. 자칫하다가는 큰 점수 차에도 불구하고 필승조를 모두 쏟아부어야 하는 최악의 '불펜 소모전'이 벌어질 위기였다.





이범호 감독의 시름이 깊어지던 6회초, 마운드에 오른 이태양은 그야말로 '구세주'였다. 그는 6회부터 8회까지 무려 3이닝을 홀로 책임지며 아웃카운트 9개를 삭제해 버렸다. 피안타는 단 1개, 사사구는 단 하나도 내주지 않는 완벽한 쾌투였다. 삼성 타선이 추격의 불씨를 당기려던 찰나, 이태양의 관록 넘치는 피칭은 상대의 기를 완전히 꺾어놓았다.

이날 이태양이 기록한 '3이닝 홀드'의 뒷이야기는 그의 품격을 더욱 빛나게 한다. 2이닝을 던지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왔을 때, 이동걸 투수코치는 이태양에게 "한 이닝을 더 던지면 3이닝 홀드를 챙길 수 있다. 여기서 끊어가도 좋다"고 선택권을 주었다. 하지만 이태양은 주저 없이 마운드로 다시 향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개인의 기록보다 '팀의 불펜 운용'이 먼저였다. 자신이 1이닝을 더 버텨준다면, 뒤에 대기하는 불펜 투수 한 명의 어깨를 완벽하게 아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긴 페넌트레이스를 치러야 하는 팀 입장에서, 선발이 무너진 날 3이닝을 무실점으로 먹어 치워주는 롱릴리프의 존재는 그 어떤 필승조보다 가치 있고 고맙다.

이범호 감독이 지난겨울 2차 드래프트에서 4억 원의 양도금을 흔쾌히 지불하며 이태양을 1순위로 데려온 진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시즌 KIA는 불펜의 과부하로 승부처에서 여러 차례 눈물을 삼켜야 했다.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마무리 투수도 중요하지만, 궂은일을 도맡아 묵묵히 허리를 지탱해 줄 베테랑 '스윙맨'이 절실했다. 선발과 불펜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이태양은 그 퍼즐의 가장 완벽한 조각이었다.



인터뷰 당시 "베테랑은 항상 절벽 위에 서 있다. 올해 잘해야 내년이 있다는 생각뿐이다.
기아가 나를 정말 잘 데려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던 이태양. 그는 낯선 팀에 합류해 겉돌 수 있었던 FA 이적생 김범수를 살뜰히 챙겼고, 젊은 투수들이 즐비한 KIA 마운드에서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가며 투수조의 든든한 가교 역할까지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다.

"저는 꼰대가 아닙니다"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짓던 베테랑 투수. 하지만 마운드 위에서 그가 보여주는 투구는 그 어떤 젊은 투수보다 뜨겁고 절박하다. 이태양이 던지는 묵직한 공 하나하나에 호랑이 군단 불펜의 안정감이 피어나고 있다. KIA의 올 시즌 2차 드래프트는 이미 '대성공'의 향기를 짙게 풍기고 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