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68%까지 낮췄는데…日, 중동산 원유 의존도 96%

파이낸셜뉴스       2026.04.12 19:06   수정 : 2026.04.12 19:06기사원문
1970~1980년대 오일쇼크 트라우마
비축制 도입하고 中·인니산 원유 수입
1987년 중동산 의존도 68%로 감소
다시 수입 늘어난 중동산 원유
中·인니 자국 수요 늘며 對日수출 줄여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도 중동산 우위
정유 인프라도 중동 맞춤형으로 구축
중동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테일 리스크 직면… 日 대응책은
단기적으로 비축유·석탄화력 재가동
근본적 해결책은 대체항로·환적 운송
공급망 다변화는 꼭 풀어야 할 숙제
러시아산 원유 수입 재검토 가능성도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후 형성된 중동 긴장은 2주간의 휴전에 들어갔지만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불안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흐름이 아직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하면서 해상 물류 전반이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특정 해상 병목에 의존하는 글로벌 에너지 구조의 취약성을 다시 드러낸 사례다.

특히 일본처럼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단기 수급 대응을 넘어 구조적 재편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번을 반세기 만에 에너지 대책을 다시 세울 기회로 보고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호르무즈 봉쇄 '테일 리스크'

일본 에너지 구조를 보면 취약성이 드러난다. 2023~2024년 기준 1차 에너지 소비에서 화석연료 비중은 약 67%다. 원유가 35~38%, 석탄 25~28%, 액화천연가스(LNG)는 20~23%를 차지한다. 재생에너지는 약 10% 내외, 원자력은 5~7% 수준이다.

수입 의존도는 더 높다. 원유는 약 97%, 천연가스의 경우 사실상 100% 수입하고 있다.

일본의 원유 수입에서 중동 비중은 2024년도 기준 95.9%로 1960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 때문에 봉쇄 영향이 특히 크다. 이에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발생 확률은 낮지만 영향이 큰 '테일 리스크(tail risk)'로 오랫동안 지적돼 왔다.

일본이 그동안 공급망 다각화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70~80년대 오일쇼크를 계기로 비축 제도를 도입했고 중국·인도네시아 등에서의 수입도 늘렸다. 그 결과 중동 비중은 1987년 67.9%까지 낮아졌다.

하지만 이같은 흐름은 지속되지 않았다.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경제 성장으로 자국 수요가 증가하면서 일본으로 돌아오는 물량이 줄었다.

가격 측면에서도 아시아산 조달에 역풍이 불었다. 아시아산 가격은 점차 상승한 반면 중동산 두바이 원유의 스팟 가격은 1980~1990년대 배럴당 10달러대를 유지했다. 종합상사나 정유사에 있어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조달 가능한 중동산의 우위는 흔들리지 않았다.

호소카와 마사히코 메이세이대 교수는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정부가 기업에 조달 다변화를 강제할 제도가 부족했고 결국 저렴한 중동 쪽으로 (수요가) 쏠렸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에 중동 의존 회귀

중동 의존도를 더욱 높인 건 지정학 변화였다. 2000년대 이후 수입을 늘려 왔던 러시아산 원유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축소됐다. 결과적으로 다시 중동 의존 구조로 회귀했다.

일본 정유 인프라가 중동산에 맞춰 구축된 것도 문제였다.

중동산은 황 함량이 높고 무거운 원유이며 일본 정유소는 이에 맞춰 설계돼 있다. 반면 미국산은 가벼워 기존 설비로는 효율적 정제가 어렵다. 설비 변경에는 막대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지만 탈탄소 흐름 속에서 수요는 감소 중이라 투자가 쉽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원유 조달이 민간 주도로 이뤄졌다는 점이 문제였다. 국가 차원의 포트폴리오 관리가 약했다는 지적이다. 민간은 수익성을 무시하기 어렵다. 위기 대비 투자에 국가 개입이 필요했지만 부족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일본 상선미쓰이의 다무라 조타로 사장은 지난 10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 인터뷰에서 "자원·에너지 분야에서도 산업, 기업, 국가 모두 공급망을 바꿔야 한다"며 "지금까지는 경제성을 추구해 싸게 조달했지만, 앞으로는 다소 비싸더라도 분산 조달과 재고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기·장기 대응 나선 일본 정부

이번 중동 위기에 일본의 대응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전개되고 있다.

먼저 단기적으로 비축유 활용이다. 일본은 석유 기준 약 250일 수준의 비축 능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국가비축·민간비축·산유국 공동비축으로 구성된다. 액화천연가스(LNG) 역시 약 400만t 규모의 재고를 기반으로 수급 충격을 완충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번 위기에서도 일본 정부는 민간 비축 15일분과 국가 비축 약 30일분을 우선 방출하고 산유국 공동비축까지 포함해 약 50일 규모를 시장에 공급했다. 최근에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지시에 따라 5월 초 이후 국가 비축유 약 20일분을 추가 방출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단순한 시장 안정 조치가 아니라 공급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가능성에 대비한 선제적 완충 확대 조치다. 정부는 이를 통해 가격 급등 압력을 낮추고 물리적 공급 부족 가능성을 억제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비축유로는 대처하기 어렵다. 비축유 물량은 정부·민간을 합쳐 약 250일분 수준으로 8개월 가량만 버틸 수 있다. 이에 시장에서는 공급 차질에 대비해 가격 전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제조업체는 연료 부족으로 공장 가동을 중단하거나 축소했고 식품업체의 생산 중단, 온천시설 휴업, 여객선 감편 등 생활 밀착 영역까지 영향이 확산되고 있다. 페트병, 식품 트레이, 화장품, 의류 등 다양한 제품의 원료가 되는 석유화학 제품에서도 가격 인상과 공급 제한이 잇따르고 있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원유 가격이 배럴당 87달러 수준에서 유지될 경우 1년 동안 가정용 세제 가격은 9.6%, 샴푸는 6.8%, 식품용 랩은 3.6% 상승할 것으로 추산했다.

■대체 항로 개척·석탄화력 확대

두번째로 대체 에너지원 확대다. 일본 정부는 최근 비효율 석탄화력 발전소 재가동을 결정했다. 탄소 배출 감축 정책에 따라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던 노후 설비의 가동 제한을 풀고 1년 한시적으로 운영을 확대하는 방안이다.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산업상은 지난 7일 "에너지 확보는 국가의 생명선"이라며 "당장은 전력의 안정적 공급에 지장이 없지만 LNG 절약을 위해 비효율적인 석탄화력 가동억제를 완화함으로써 석탄화력 활용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경제산업성은 규제 완화로 LNG 약 50만t 분량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했다.

캐논글로벌전략연구소의 스기야마 다이시 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이달 시행 예정인 의무적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폐지해야 한다며 "이는 석탄발전소에 대한 사형선고"라고 주장했다. 미국 로펌인 노튼로즈풀브라이트는 "LNG 수급 위기에서 새로운 LNG 공급처를 찾는 것보다 석탄에 의존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석탄은 상대적으로 규격이 단순하고 현물 시장이 활성화돼 있어 단기적으로 에너지 공급 위기를 넘기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공급망 다변화 속도

마지막으로 일본 정부는 근본적인 방안으로 대체 항로 개척과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물량은 홍해 등 우회 항로를 통해 일본에 도착했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일본 유조선은 지난 1일 사우디아라비아 서부의 얀부 항에서 약 10만kL 원유를 적재한 뒤 홍해를 통과해 온 다른 유조선에서 동남아시아 말레이시아에서 환적해 운송했다.

일본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비중동 지역 조달처 역시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남미, 중앙아시아로부터의 원유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산 원유는 단기간에 약 4배 수준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시에 올해 4~5월 기준 전체 원유 조달에서 비중동 비중을 20% 이상에서 절반 이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LNG에서도 유사한 전략이 진행 중이다. 일본은 세계 최대 LNG 수입국으로서 기존 장기계약 구조(70~80%)를 유지하면서도 호주 중심 공급(약 40%대), 미국 비중 확대(10% 이상), 러시아 및 중동 비중 조정 등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고 있다. 카타르 의존은 유지되지만 점진적 분산 구조가 강화되는 흐름이다.


최근에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7일 러시아산 원유 수입 문제에 대해 "주요 7개국(G7) 및 국제사회와 연대해 우크라이나 평화 실현과 일본의 국익에 어떤 게 효과적인가에 따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또한 이르면 내달 중 주요 종합상사와 해운사 등이 참여하는 경제사절단을 러시아에 파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이를 계기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sjmary@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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