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세자의 동궁에 죽은 쥐를 매달아 저주했다

파이낸셜뉴스       2026.04.18 11:52   수정 : 2026.04.18 14:16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중종 22년(1527년) 음력 2월 25일. 그날은 세자 이호(李峼)의 생일이었다. 세자는 을해년(1515년)생으로 이날이 13번째 생일이었다.

낮 동안에는 세자의 생일을 축하하는 연회가 있었고, 밤이 되자 고요했다.

자정 무렵이 되자 어둠 속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복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민첩했다. 그는 동궁 침실 창문 쪽의 뒤뜰에 숨어들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바로 삼끈에 묶인 죽은 쥐였다. 쥐의 주둥이와 귀, 네 발의 털은 모두 불에 그을려 타 있었다. 심지어 사지는 꺾여 있었고, 꼬리는 반쯤 끊겨 있었다.

그는 동궁의 뒤뜰에서 북쪽을 바라보더니 당향목 가지를 휘어 쥐를 거꾸로 매달았다. 그리고 쥐와 함께 진어(眞魚, 준치)의 머리와 수청목(水靑木, 물푸레나무)을 함께 묶어 두었다.

다음날 오후. 안빈의 계집종 내은덕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총총걸음으로 동궁 서북쪽 담장 밖 동산으로 서둘러 갔다. 소변을 보기 위해서였다. 담장 밖 동산 깊숙한 곳은 궁녀들이 은밀하게 소변을 누는 공간이 있었다.

내은덕은 고개를 들어 본 순간, 숨이 멎었다. "……!" 당향목 가지 끝에 뭐가 검은 것이 매달려 있었다. 급히 볼일을 마치고 가까이 가서 살펴보았다. 바로 쥐였다. 그을린 귀와 주둥이, 반쯤 잘린 꼬리. 은덕은 놀라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내 서둘러 자리를 떴다.

다음 날 궁녀 은금, 현비, 중월이 동궁 뜰로 몰려왔다. 은덕은 전날 쥐를 본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마도 다른 궁녀가 역시 소변을 보러 갔다가 보고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던 것 같다. 중월은 은금에게 가지를 붙들게 하고 손수 매듭을 풀어 쥐를 살폈다.

그녀들 중 누군가 낮게 속삭였다. "이는 방양(防禳)일 것이다." 그러자 누군가는 "아니지, 이것은 압승(壓勝)이지."라고 했다. 방양은 현재의 불행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주술 행위고, 압승은 상대의 복이나 기운을 꺾기 위한 주술 행위를 말한다.

동궁 뒤뜰에 매달린 쥐 이야기는 궁녀들의 입을 통해 상궁과 자전에 흘러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전(紫殿)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자전에서는 그 사실을 왕에게도 전하지 않았다.

쥐 사건은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다. 세자의 외숙인 윤여필이 먼저 이 사건을 전해 들었다. 윤여필은 놀란 나머지 이 사건을 곧바로 우의정 심정에게 전했다. 심정은 다시 이를 좌의정 이유청에게 알렸다. 사건을 전해 들은 이유청은 "근거 없는 일로 궁중을 소란케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라고 하면서 망설였다.

결국 3월 22일, 좌의정 이유청, 우의정 심정, 우찬성 이항, 좌참찬 안윤덕 등이 함께 사정전에서 중종에게 면대를 청했다.

이유청은 중종 앞에서 "근래 재변이 잇달아 발생하고, 일훈(日暈)에 양이(兩珥)까지 생긴 상황에서 동궁에 요괴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만일 사실이라면 심히 놀라운 일이옵니다."라고 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심정은 구체적으로 "세자의 생신일에 죽은 쥐의 사지를 찢고 불에 지진 뒤, 동궁 침실 창밖에 매달았다 하옵니다. 이는 필시 세자에게 저주를 내리고자 하는 것으로 국본(國本)을 흔들려는 간모(奸謀)가 분명하옵니다."라고 했다.

중종은 크게 놀랐다. "동궁의 쥐라 하였는가? 과연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심정은 신중히 덧붙였다. "궁궐 안에 간사한 자가 있는 듯하옵니다. 조금이라도 의심 가는 자가 있으면 찾아내어 엄히 다스려야 하옵니다."라고 했다.

중종이 "자전에서는 뭐라고 하시느냐?"하고 묻자, "자전은 이미 이 일을 들었으되, 옥사를 크게 벌이는 것을 꺼렸다고 하십니다. 근거 없는 일로 궁중에 큰 옥사를 일으킬 수 없으므로 사실을 따지지 않았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왜 하필이면 쥐를 매달았을까? 시강원의 보덕(輔德) 직책을 맡고 있던 황사우의 상소문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었다. "죽은 쥐와 함께 물고기 머리, 물푸레 나무의 조합은 단순한 장난이라기보다는 오행과 방위 상징을 섞은 압승적 장치입니다. 세자의 출생년은 을해(乙亥)였기 때문에 해(亥)의 방향(북쪽)을 잡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쥐는 수기(水氣)가 강하고, 해(亥)의 방위는 수(水) 기운이었고, 물고기[魚] 역시 수(水), 수청목 이름에도 수(水)가 들어갑니다. 이를 보면 수기(水氣)로 세자저하의 화기(火氣)를 꺾고자 했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신하들은 의심스러운 자를 가려서 추문하기를 청했다. 안빈의 계빈종 은덕, 세자궁의 시녀 은금, 세자궁의 무수리 현비, 세자궁 시녀 중월 등을 모두 불러 본 사실을 그대로 말할 것을 추궁했다. 모두들 상세한 내용은 약간 달랐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동일했고, 추궁 과정에서 이들이 관여했다는 정황은 발견하지 못했다. 궁녀들은 모두 단지 목격자인 셈이었다.

그런데 중월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덧붙였다. "얼마 전 초하룻날 대전의 침실 난간 주변 아래에서 발견된 쥐 또한 네 발과 꼬리가 끊기고 불에 지져진 상태였습니다."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중종은 "아니, 그 쥐는 내가 발견해서 쥐가 있으니 내가 버리라고 했던 것 아니냐"하면서 깜짝 놀랐다.

지난 2월 초하루, 강녕전에서는 점심 수라가 끝나고 중종은 중궁과 함께 대학연의를 강론하고 있었다. 나인들은 분합문을 닫고 퇴선을 나누어 먹고 있었고, 경빈은 대청에 있다가 동침실로 들어갔다.

잠시 뒤 중종이 동침실로 옮겼고, 그때 남고란 아래에서 쥐 한 마리가 발견되었다. "저것은 쥐 아니냐?"라고 했던 것이다. 겉보기에는 작은 쥐였으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살아는 있었지만 움직이지 못했고, 네 발이 끊겨 있었으며 꼬리는 잘리고 주둥이는 지져져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훼손한 흔적이었다. 그러나 중종은 자세한 모양은 알지 못했다.

중종이 쥐를 버리라고 하기에 시녀 김씨가 쥐를 치마로 덮어 집어 들고, 종이에 싸서 수모(水母) 종가이(從加伊)에게 넘겼다. 종가이는 이를 남쪽 하수구에 버렸다.

그러나 소주방 앞에 있던 무수리들이 이를 수상히 여겨 다시 가져오게 했고, 쥐의 기괴한 상태가 확인되면서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분위기가 퍼졌다. 향이와 안씨가 이를 확인한 뒤 중궁전에 보고했고, 다시 대비전으로 전달되었다. 겉으로는 조용했지만, 궁 안에서는 이미 심상치 않은 기운이 돌고 있었다.

대전에서 발견된 쥐 또한 세자 동궁에서 발견된 쥐와 동일한 상태였다는 것을 알고 중종은 내심 놀라움과 두려움을 금치 못했다.

신하들은 끝까지 범인을 색출해서 엄벌해야 한다고 아뢰었다. 그러나 중종은 조심스럽게 "이는 익명서와 같은 일이니, 단서 없이 어찌 지목하겠는가? 단서 없이 옥사를 크게 벌일 수 없다."고 거듭 말하였다. 중종은 그 배후를 끝까지 캐내는 일을 두려워하는 듯했다. 궁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지만, 범인은 결국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중종은 이후로 며칠동안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그러나 신하들이나 의관들에게 자신의 불안지심을 내 보이지 않았다. 곁으로는 평온한 듯했으나 항상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도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다행스럽게도 세자는 동궁 뒤뜰의 쥐 사건 이후에도 세자의 지위를 무사히 유지했고 폐위 논의는 없다. 중종 또한 이후 17년을 더 통치했고, 당시 세자는 이호(李峼)는 훗날의 인종이 되었다.

주술은 결국 인간의 불안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하지 못하는 상황을 모면하고자 행여나 있을 수도 있는 귀신의 절대적인 힘을 빌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저주(咀呪)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모두 요행(僥倖)에 불과할 뿐이다.

한의학에서는 이와 같은 불안과 두려움을 심(心)과 담(膽)의 문제로 본다. 심은 신(神)을 주관하여 정신을 안정시키고, 담은 결단을 주관하여 두려움을 다스린다. 심담이 허약하면 사소한 일에도 쉽게 놀라고, 보이지 않는 것에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결국 심담(心膽)을 굳건히 하고 정기(正氣)를 기르면 저주에 기대지도 않을 것이고, 저주를 받더라도 마음이 흔들림은 없을 것이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중종실록>중종 22년 3월 22일. 沈貞曰: "幾微之事, 若少有之, 則速爲明決, 使外人快知可也。 事若至於逼, 則臣等啓之亦難, 故預爲之啓矣. 前於世子生辰, 將死鼠, 斷其四肢, 以火灼之, 懸於世子寢窓外, 今月初一日, 又爲之云。虛實之間, 臣子聞之, 所關重大, 故啓之。 且臣等反覆思之, 宮禁中, 必有邪人, 構此謀矣。 雖未能的知, 若小有可疑之人, 則勿爲掩覆, 而痛治可也。" 上大驚曰: 東宮之事, 如是妖耶? 卽當問之。" 惟情曰: "東宮侍衛人甚多, 必有聞見者, 下問則可知也。" 貞曰: "此事, 非祝福世子也, 必是壓禳, 而使國本搖動也。" 上曰: "此事, 外間則傳播, 而予則全不知之。 若問世子左右人, 則可知也。" 下慈旨于賓廳曰: "大臣所啓之事, 予曾聞之, 欲啓上而推之。 但事涉無據, 不可起宮人大獄之端, 故不取實, 不啓也, 此意知悉。" 傳曰: "以卿等所啓之事, 推世子宮內人, 則其供辭如是矣。 此事果是妖術, 所當推之, 然事同匿名書, 亦不知其術之如何, 將何以處之?" (심정이 아뢰기를, "기미에 관한 일은 그것이 조금만 비쳐도 속히 명쾌하게 결단해서 외인으로 하여금 속시원히 알게 해야 합니다. 일이 만약 긴급하게 된 경우에는 신 등도 아뢰기가 또한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 아뢰는 것입니다. 전일 세자의 생신일에 죽은 쥐를 가져다 사지를 찢어 불에다 지진 다음, 이를 세자의 침실 창문 밖에다 매달아 놨었다 합니다. 그런데 이달 초하룻날 또 그랬다고 합니다.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신하의 입장에서 듣기에 관계되는 바가 중대하기 때문에 아뢰는 것입니다. 신 등이 되풀이 생각해봐도 궁금에 틀림없이 간사한 사람이 있어 이런 모의를 얽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그가 누군지 분명히는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으면 숨기지 말고 통렬히 치죄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깜짝 놀라면서 이르기를, "동궁에 이런 요괴스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즉시 추문해야겠다." 하매, 이유청이 아뢰기를, "동궁에는 시위하는 사람이 매우 많으니 반드시 보고 들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문해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심정은 아뢰기를, "이 일은 세자의 복을 빌기 위한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동티내어 국본을 동요시키려는 것일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일이 외간에는 전파되었는데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세자의 측근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겠다." 하였다. 빈청에 자전의 뜻을 내리기를, "대신이 아뢴 일은 나도 일찍이 들었었다. 그래서 상께 아뢰어 추문하려 했었지만, 증거가 없는 일로 궁내에서 큰 옥사의 단서를 일으킬 수는 없으므로 사실을 따지지 않았고 아뢰지도 않았다. 이 뜻을 알아주기 바란다.
" 하였고, 전교하기를, "경 등이 아뢴 일로 세자궁 안에 있는 사람을 추문했더니 그의 공사가 이러했다. 이 일은 과연 요괴로운 술법이므로 의당 추문해야 한다. 그러나 일이 익명서의 경우와 같고 또 술법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니 어떻게 조처했으면 좋겠는가?" 하였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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