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경기 최악이여, 오늘도 공쳤어" 새벽 인력시장 '무거운 귀갓길'
파이낸셜뉴스
2026.04.18 06:00
수정 : 2026.04.18 13:48기사원문
[새벽 4시, 구로 인력시장 어둠보다 무거운 얼굴들]
"봉고차 못타면 허탕"...하루 공치면 하루 생활비 날아가
건설불황 최전선에서 맞는 사람들... "여기가 바로 경기"
남구로역 인력시장에는 첫차가 다니기 전부터 일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현장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들은 건설 현장이 줄면서 새벽에 나와도 빈손으로 돌아가는 날이 늘었다고 말했습니다. 건설경기 부진이 하루 벌이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닿고 있는지, 서늘한 새벽이었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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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일 좀 했으면 좋겠는데, 오늘도 그냥 가나봐."
첫차가 다니기 전 골목에는 이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24시간 편의점 불빛과 인력사무소 간판 아래로 안전화와 작업복, 낡은 배낭이 보였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었고, 휴대전화를 들고 다른 사무소에 전화를 거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말없이 사무소 문과 도로 쪽을 번갈아 봤다.
경기 부천에서 온 김씨는 새벽 3시를 조금 넘겨 집을 나섰다. 그는 건설 현장 마감 일을 주로 해왔지만 지난해부터 일 나가는 날이 줄었다고 했다. 김씨는 "나오면 뭐라도 있을 줄 알고 오는데, 요즘은 기다리다 가는 날이 많다"고 토로했다.
남구로역 인근은 서울의 대표적인 새벽 인력시장으로 꼽힌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당일 현장 배정을 기다린다. 일을 받으면 승합차를 타고 서울과 수도권 공사 현장으로 이동하고, 받지 못하면 다른 인력사무소를 돌거나 집으로 돌아간다. 출근 여부는 새벽 한두 시간 사이에 정해진다.
승합차가 와도 줄지 않은 대기줄
오전 4시30분이 지나자 사무소 앞 사람은 더 늘었다. 한 남성은 종이컵 커피를 들고 서 있었고, 승합차가 멈추면 주변 시선은 도로 쪽으로 향했다. 형틀 일을 해왔다는 40대 중반 박모씨도 사무소 앞에서 배정을 기다렸다.
박씨는 "예전에는 일주일에 닷새는 나갔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사흘도 쉽지 않다고 했다.그는 "일당이 얼마냐보다 며칠 나가느냐가 문제"라고 했다. 하루 일당이 올라 보여도 한 달 일한 날이 줄면 생활비는 줄어든다.
대기하던 사람들 사이에는 내국인과 중국 동포가 섞여 있었다. 서로 아는 얼굴끼리 짧게 안부를 묻기도 했고, 휴대전화를 붙잡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차가 올 때마다 바로 움직일 수 있어야 했다.
사무소 앞 승합차 한 대가 출발하자 남은 사람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차에 타지 못한 이들은 사무소 안쪽을 바라봤다. 50대 초반 이모씨는 "이 시간이 제일 애매하다"고 했다. 더 기다릴지, 다른 곳으로 갈지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감 줄자 먼저 줄어든 노동일수
오전 6시가 가까워지자 몇몇은 다른 골목으로 향했다. 남구로역 주변에는 인력사무소가 여러 곳 있다. 한 곳에서 일이 없으면 다른 곳을 찾는다. 다만 새벽 시간이 지날수록 일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현장 차량은 보통 이른 시간에 인원을 채운다.
철거 현장과 정리 일을 해왔다는 50대 초반 이씨는 "반나절이라도 있으면 간다"고 했다. 오전 작업만 해도 빈손으로 가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교통비와 식비를 빼면 남는 돈은 줄지만, 하루를 통째로 비우는 것보다는 낫다고 했다.
일용직 노동자에게 하루 일감은 곧 생활비다. 고정 월급이 없다. 비가 오거나 현장이 쉬면 수입도 멈춘다. 몸이 아파 하루 쉬어도 다음 날 일이 보장되지 않는다. 새벽 인력시장에 나온 사람들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날씨보다 현장 배정이다.
다른 노동자는 최근 한 달에 절반 정도밖에 일을 못 했다고 했다. 그는 "일을 못 나가면 하루가 그냥 빈다"고 말했다. 집에 돌아가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했다. 이미 새벽에 나와 시간을 썼고, 다음 날 다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전체 고용 늘 때 건설업은 감소
현장의 기다림은 건설경기 지표와도 맞물려 있다.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가 15일 발표한 '2026년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취업자는 전년 동월보다 20만6000명 늘었다. 그러나 건설업 취업자는 1만6000명 줄었다. 전체 고용이 늘어난 가운데 건설업은 감소세를 이어간 것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13일 발표한 '월간 건설시장동향' 3월호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연구원에 따르면 2월 건설업 취업자 수는 186만9000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2.1% 감소했다.
건설업 고용은 현장 물량에 민감하다. 수주와 착공이 줄면 일정 기간 뒤 일감도 줄어든다. 특히 공정별로 사람을 부르는 일용직은 물량 감소를 더 빨리 체감할 수 있다.
남구로역 인력시장에 나온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거시 지표보다 당일 배정 여부였다. 지표가 회복돼도 부르는 현장이 없으면 그날 소득은 없다. 이곳에서 경기 침체는 "오늘 나가느냐, 못 나가느냐"의 문제로 좁혀진다.
차에 오른 사람, 남겨진 사람
시간이 더 지나자 일부는 편의점 앞에 서서 담배를 피웠고, 일부는 역 입구 쪽으로 걸었다. 다른 사무소를 찾는 사람도 있었다. 형틀 일을 해왔다는 박씨는 이날 현장에 가지 못했다. 그는 "조금 더 보고 안 되면 들어가야지"라고 했다. 집에 돌아가면 다시 잘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웃으며 답했다. "잠이 오겠나. 내일 또 나와야지."그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인력사무소 번호를 확인했다.
남구로역 인력시장의 새벽은 짧다. 이른 아침 현장 배정이 끝나면 차에 오른 사람은 공사장으로 향하고, 남은 사람은 다른 사무소를 찾거나 집으로 돌아간다. 출근길 직장인들이 역으로 나오기 전, 이들의 하루는 이미 한 번 갈린다.
빈손으로 돌아가도 다시 오는 새벽
부천에서 온 김씨는 끝내 차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장갑을 다시 가방에 넣고 역 쪽으로 걸었다. "오늘은 아닌가 보다." 아침을 먹고 들어갈지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 돈도 아껴야 한다"고 했다.
일감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몇 명은 다른 사무소가 있는 골목으로 갔고, 몇 명은 역 입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새벽에 나와 기다렸지만, 차에 오르지 못하면 그날 수입은 없다.
남구로역 인력사무소 앞에서 건설경기 부진은 대기줄과 빈손 귀가로 나타났다.오전 4시부터 6시 사이 사람들은 계속 모였고, 일부만 승합차를 타고 현장으로 떠났다. 남은 사람들은 다음 날 새벽 다시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한 골목에서 김씨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내일 다시 나와야지. 안 나올 수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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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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