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무슨 차예요?"...세울 때마다 터지는 탄성,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파이낸셜뉴스       2026.04.18 05:59   수정 : 2026.04.18 05:59기사원문
정차·주차마다 사람들 몰려…압도적 존재감
BMW 엔진 품은 3t 육중함에도 승차감은 예상 밖
항공기 콕핏 닮은 실내…아날로그 향수 짙어
코너링·주차는 관문…도심선 '마음의 준비' 필요

[파이낸셜뉴스] 신호 대기 중이었다. 옆 차선에 서 있던 운전자가 잠시 창문을 내리더니 스마트폰을 들었다. 몇 번 셔터를 누르고는 손을 흔들고 갔다.

휴게소에 잠시 세웠을 때는 지나가던 가족이 아이와 함께 와서 차 앞에 서서 기념 촬영을 했다. 대형 카페 주차장에서는 두 팀이 연달아 사진을 찍었다. 2박 3일, 약 400km를 함께 달린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시승 내내 반복된 풍경이었다.

이네오스 그레나디어는 영국 화학기업 이네오스가 세운 이네오스 오토모티브의 첫 차다. 클래식 랜드로버 디펜더가 단종된다는 소식을 접한 짐 래트클리프 이네오스 그룹 회장이 '타협 없이 기본에 충실한 4X4를 직접 만들겠다'는 각오로 2017년 개발을 시작해 세상에 내놓은 차다. 이름은 래트클리프 회장과 동료들이 차 개발의 꿈을 처음 이야기한 런던 벨그라비아의 단골 펍 이름에서 따왔다.

차 앞에 서면 왜 사람들이 몰리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전장 4895mm, 전폭 1930mm, 전고 2035mm. 직선과 직각으로만 이뤄진 박스형 차체가 도심 한복판에서 이질적인 존재감을 내뿜는다. 곡선 하나 없이 각진 실루엣, 앞뒤로 자리 잡은 원형 LED 램프, 후면 왼쪽에 달린 알루미늄 사다리까지. 유행을 좇지 않는, 오히려 유행 따위는 모른 척하는 디자인이다.

실내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대시보드 전면을 가득 채운 굵고 두툼한 물리 버튼들이 눈에 들어온다. 공조, 구동계, 각종 보조 기능이 모두 스위치와 다이얼로 배치돼 있다. 장갑을 낀 채로도 작동할 수 있도록 버튼 하나하나가 넉넉한 간격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요즘 차들이 앞다퉈 화면 안으로 숨기고 있는 것들을 그레나디어는 오히려 더 크게, 더 도드라지게 꺼내놓았다.

시선을 천장으로 올리면 또 한 겹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른바 '오버헤드 컨트롤 패널'이다. 항공기 조종석에서 영감을 받은 이 공간에는 웨이딩 모드, 센터·프론트·리어 디퍼렌셜 록, 다운힐 어시스트 등 오프로드 주행에 필요한 기능이 모여 있다. 계기판 자리엔 경고등 표시창만 남겨두고 속도·연료·타이어 공기압·조향 각도 같은 정보는 모두 중앙 12.3인치 터치스크린 왼편에 모아뒀다.

공차중량 2700kg. 3톤에 육박하는 차체를 이끄는 건 BMW 3.0리터 직렬 6기통 터보차저 가솔린 엔진(B58)이다. ZF 8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최고출력 286마력, 최대토크 45.9kg·m를 낸다. 같은 B58 엔진이지만 이네오스 오토모티브 엔지니어링 팀이 저속에서 최대 토크가 빨리 올라오도록 캘리브레이션을 다시 했다.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페달을 밟으면, 이 무거운 차가 예상 밖의 기세로 속도를 끌어올린다. 파워풀하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가장 뜻밖이었던 건 승차감이었다. 바디온프레임 구조에, 솔리드 빔 액슬에, 공차중량만 2.7톤이다. 승차감이 좋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달려보면 아이박(Eibach) 프로그레시브 코일 스프링과 정교하게 조율된 5-링크 서스펜션이 생각보다 노면 충격을 말끔하게 처리한다. 방지턱을 넘을 때 차체가 한 번에 자세를 잡고, 잡소리가 없다. 차체와 프레임 사이 8개의 섀시 마운트가 진동을 걸러주는 덕이다. 정통 오프로더 중에서도 손꼽힐 만한 온로드 승차감이다.

서울에서 여주, 여주에서 인천을 오가는 동안 고속도로 직진 구간에서는 한 가지 습관이 생겼다. 수시로 스티어링 휠을 가볍게 보정해줘야 한다는 것. 리서큘레이팅 볼 타입 유압식 파워스티어링은 락투락 3.85회전, 회전직경 13.5m의 구조적 특성상 차선 중앙을 자동으로 잡아주지 않는다. 처음엔 낯설지만 이 역시 그레나디어의 성격임을 이해하고 나면 오히려 익숙한 감각이 된다. 오프로드에서 이 스티어링이 얼마나 정교하게 작동하는지를 알면 납득이 간다.

한계도 분명했다. 서울 도심 주차장에서 몇 차례 진땀을 뺐다. 회전직경 13.5m. 직각으로 꺾이는 지하 주차장 통로를 빠져나오는 데 두세 번 수정이 필요한 순간이 반복됐다. 코너를 돌 때도 차의 큰 몸집과 무게 중심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이 차를 도심에서 타겠다면 그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이 먼저다.

연비는 솔직하다. 공인 복합 연비 5.5km/L. 고속도로 위주 주행에서도 계기판 실연비는 이 수치를 크게 웃돌기 어려웠다. 오프로드 기동성을 위해 기어비를 조율한 결과이고, 90리터 연료 탱크가 달려 있어 주유 빈도는 많지 않지만, 주유할 때마다 들어가는 금액은 각오해야 한다.

차봇모터스가 국내 독점 판매하는 이네오스 그레나디어의 가격은 필드마스터·트라이얼마스터 에디션 모두 1억3990만원이다. 두 트림은 가격이 같고, 트라이얼마스터 에디션에는 프론트·리어 디퍼렌셜 록과 BF굿리치 올-터레인 T/A KO2 타이어가 기본으로 더해진다. 5년 워런티가 적용되며 차량 구매부터 시승 신청까지 앱 하나로 처리할 수 있는 디지털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키를 반납하는 순간까지 한 가지 생각이 남았다.
다시 타고 싶다는 것이다. 불편한 게 분명한데 자꾸 생각나는 차가 있다. 이네오스 그레나디어가 그렇다.

eastcold@fnnews.com 김동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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