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문인데 당기라 밀라, 황당한 규제 수두룩
파이낸셜뉴스
2026.04.30 18:07
수정 : 2026.04.30 19:05기사원문
빈 공장 창고 못 써 외부에 시설 이용
대한상의, 개선과제 139건 정부 제출
안전관리 규정을 지키자면 저장소 출입문은 가스 누출 시 확산을 막기 위해 당기는 문이어야 한다.
산업안전 관리규정에 따르면 그 반대다. 비상시 직원들의 신속한 탈출을 돕기 위해 미는 문을 설치해야 하는 것이다. 고압가스 규정을 준수해 당기는 문을 도입한 기업은 산업안전 점검에 지적을 받아 문 수십개를 교체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한다. 법을 지켜도 법을 지킨 것이 아니게 되는 이런 행정을 정부는 구경만 하고 있을 것인가. 현장의 황당한 규제는 이것 말고도 수두룩하다.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도 곳곳에 있다. 상법상 주주총회 소집 통지는 우편 등 서면이 원칙이고, 주주 사전 동의가 있어야만 전자고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주주 개개인에게 동의를 받기 쉽지 않아 대부분 우편으로 발송된다. 이로 인해 국내 상장사가 매년 보내야 하는 주총 종이우편만 1억장이라고 한다. 주주명부에 이메일을 기재하도록 하고 전자통지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면 산업 생산성은 떨어지고 경제활력도, 국가 전체 효율도 비상이 걸리게 된다. 후진국형 낡은 규제에 대한 개선 요구는 수도 없이 나왔다. 당국은 시대에 안 맞는 규제와 전쟁을 치르듯 속도를 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큰 기업이 되면 더 많은 규제 족쇄를 채우는 구조까지 만들어져 성장 의욕까지 끌어내렸다. 지난 20년간 미국의 간판기업은 10곳 중 9곳이 바뀌었다. 한국의 기업은 20년간 제자리다. 규모별 차등, 누진 규제로 기업 역동성이 떨어진 탓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재명 대통령은 네거티브 규제로 방향을 바꾸고 규제개혁 체계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규제합리화위원회도 발족해 정책 대전환을 선언했다. 핵심은 속도와 실천이다. 상의가 이번에 제기한 139건도 면밀하게 검토해 속히 처리해야 한다. 충돌하는 규정은 부처별 칸막이를 없애고 서둘러 통합 기준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무사안일한 행정이 불필요한 규제를 낳고 기업의 비용과 부담을 키운다. 행정 일선의 변화도 시급하다.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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