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정한가
파이낸셜뉴스
2026.04.30 18:07
수정 : 2026.04.30 18:07기사원문
시간이 지나도 같은 논쟁이 반복된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단순한 정책을 넘어 우리 사회가 무엇을 공정하다고 여기는지에 대한 인식과 기준에 깊이 닿아있음을 보여준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현재의 자리에 도달했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그런 이들에게 협력업체 직원들이 다른 경로를 통해 같은 지위에 오르는 것은 자신의 성취가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되는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 감정은 단순한 이기심으로 치부할 수 없으며, 공정에 대한 감각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저자인 경제학자 로버트 H 프랭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능력주의'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자신의 성취를 스스로의 노력 덕분이라고 믿기 쉽지만 실제로는 출발선의 차이, 교육환경, 가정 배경, 사회적 조건 그리고 때로는 우연한 기회 역시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같은 능력을 갖고 있더라도 누구는 더 많은 기회를 접하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개인이 통제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개인의 노력만으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비정규직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질 수 있다. 현재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이들 가운데에는 실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해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도 있을 것이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제약, 채용기회의 편중, 정보 접근성의 차이 등은 개인의 선택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과연 불공정한 일인지, 우리는 다시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누군가의 노력을 부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충분히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았던 기회를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동일하거나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고용 형태에 따라 임금과 복지, 고용안정성이 크게 달라지는 현실은 오랫동안 지적돼 온 구조적 문제다. 더 나아가 위험한 업무가 외주화되고 책임이 분산되는 관행 역시 함께 돌아봐야 할 지점이다.
물론 모든 정규직 전환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절차의 공정성과 기존 구성원과의 형평성을 확보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 전환 기준이 불명확하거나, 충분한 설명과 협의 없이 정책이 추진될 경우 갈등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 따라서 단계적 전환, 명확한 기준 설정, 이해관계자 간의 충분한 소통과 같은 장치들이 함께 마련될 필요가 있다.
결국 이 논쟁의 핵심은 '누가 더 노력했는가'를 가리는 데 있기보다 우리가 어떤 기준을 공정하다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있다. 이미 기회를 통과한 사람들의 성취를 존중하는 것과, 그 기회에 충분히 접근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새로운 통로를 여는 것이 반드시 서로 배치되는 가치인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공정은 단일한 기준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조정되고 재정의되어야 하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쟁은 단순한 이해관계의 충돌을 넘어 우리 사회가 '공정'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노력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기회의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방향은 없는지 그리고 그 균형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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