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의 세계가 바뀌면 내 마음도...김대립 토종벌 명인
파이낸셜뉴스
2026.05.02 06:00
수정 : 2026.05.02 06: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벌 키우는 양봉인은 안다. 꿀벌은 미래를 위해 살아간다는 것을. 일벌들이 봄철 꿀을 모아 저장하는 것은 겨울을 나기 위해서다. 일벌의 고된 노동 한가운데는 여왕벌이 있다.
여왕벌이 하루에 1000여개 알을 낳는 것은 계속해서 벌 무리를 이루기 위해서다. 벌집에 벌이 많아지면 여왕벌은 새 무리를 이끌고 떠나간다. 빈 벌집에는 새 여왕벌이 남아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한다. 알을 낳고 알에서 태어난 벌들이 일을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있다.
─여기 벌통이 얼마나 있나요?
△800군(한 통에는 한 마리의 여왕벌과 한 무리의 벌만 있다) 정도 있어요. 평생 여기서 벌을 길렀어요. 7살부터 아버지께서 벌통을 만드시고 남은 소나무 조각을 갖고 놀았어요. 9살에는 아버지께서 생일선물로 벌통 3개를 줬어요. 그때부터 하루 종일 벌통을 들여다본 것 같아요.
김 대표가 본격적으로 아버지로부터 양봉교육을 전수받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교통사고로 다친 아버지가 목발로 벌통을 가리키며 벌에 대해 일러주던 모습이 눈에 훤하다. 학교를 끝마치면 집에 돌아와 해질 때까지 벌통 속을 들여다봤다. 수많은 벌떼를 하나하나 눈에 담던 시절이 이어졌다. 아버지는 벌 150군을 키우셨다. 김 대표에 이르러 5배가 늘었다.
─대표님께선 토종벌에 대해 잘 아시니 벌통 늘리는 게 쉬우실 것 같아요. 꿀벌은 분봉(分蜂·벌무리가 나뉨)을 하는 습성이 있잖아요. 분봉을 이용해 벌통을 늘리는 기쁨이 클 것 같아요.
△중학교 1학년 때 '여왕벌 날리기'라는 인공분봉 기술을 터득했어요. 여왕벌을 인위적으로 새 벌통에 나누어 둬도 자꾸만 집을 버리고 떠나갔어요.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새 벌통을 들고 가다 넘어졌는데 벌통이 열리면서 벌들이 하늘에 솟구쳤다가 떨어졌어요. 그 뒤로는 희한하게 벌들이 안 달아나더라고요. 그때 알게 됐어요. 여왕벌이 공중에서 날았다가 집을 찾아야 자신의 집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을요.
토종벌 분봉이란 기존 벌통에서 살던 여왕벌이 일벌의 절반 정도를 이끌고 나와 새로운 살림을 차리는 일종의 '가족 분가' 현상이다. 토종벌이 개체 수를 늘리는 가장 자연스럽고 중요한 번식 과정이다. 보통 4월 말에서 6월 초 사이, 꽃이 많이 피고 밀원이 풍부한 봄철에 집중된다. 기존 여왕벌이 알을 낳아 새로운 여왕벌(신왕)이 태어날 준비를 한다. 새로운 여왕벌이 태어나기 직전, 기존의 여왕벌(구왕)이 벌 무리 절반을 데리고 먼저 벌통을 나가 날아간다. 벌통을 나온 무리는 멀리 가기 전, 근처 나무나 바위 등에 공 모양(봉구)으로 뭉쳐 잠시 머문다. 이 때 양봉인들은 구왕을 다시 새 벌통으로 유도해 받아내는 식으로 벌통을 늘린다.
김 대표는 자신만의 영농기술을 개발했다. 2003년엔 분봉(벌통 나누기)작업 효율성을 극대화한 획기적 기술인 '토종벌 인공 분봉법'으로 특허를 등록했다. 개발한 인공분봉 기술은 30년간 현장 교육과 기술 전수를 통해 약 7000여 농가에 보급했다. 이후에도 벌꿀 절단면이 층층이 다른 색을 내도록 하는 '무지개 꿀 채취법', 기온이 떨어지면 벌통 입구가 저절로 닫히게 하는 '보온 자동개폐장치' 등을 개발해 현재까지 등록한 특허가 7건, 실용신안 2건에 이른다.
─토종벌 키우시면서 가장 큰 위기는 언제였어요?
△토종벌이 제2종 법정 가축전염병인 낭충봉아부패병으로 90% 이상 죽던 2009년이 위기였어요. 꿀벌 유충에 바이러스가 감염돼 번데기가 되지 못하고 마르거나 썩어서 죽는 질병이에요. 당시 제가 기르던 토종벌 1000통 중 800통이 죽었어요. 그 때부터 벌들이 사라지면서 꿀벌을 알리는 활동을 했어요. 최근에는 다행히 이전의 70% 정도로 벌들이 회복한 것 같아요.
김 대표는 한국한봉협회 한봉복원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2019년 꿀벌의 공익적 가치 보호를 위한 '양봉산업육성법'이 제정되는데 힘썼다. 당시 국회 토론회를 통해 꿀벌이 수분매개 등을 통해 식량안보와 연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2019년부터는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바이러스 저항성 품종 '한라벌'의 증식을 위해 3년간 전남 완도군의 소안도·보길도에 머물렀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농촌진흥청으로부터 축산분야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 명인'으로 선정됐다.
─토종벌과 서양벌은 습성이 달라요. 토종벌 꿀은 뭐가 다를까요?
△서양벌 꿀이 배추라면 토종벌 꿀은 김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서양벌은 주로 하나의 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꿀을 따요. 아까시꿀처럼 서양벌꿀은 단일 꽃꿀을 만들 수 있어요. 반면에 토종벌은 1년에 1번 꿀을 채밀(양봉인이 꿀을 채취하는 것)해요. 벌들이 여럿 꽃들에게서 꿀을 따와요. 그러다 보니 꽃이 섞여 독특한 맛이 나요. 또 시간에 따라 숙성되는 맛이 있죠.
─한라벌 육종에 참여하면서 새벽에 일어나 새벽에 잠들었다고 들었어요. 그만큼 토종벌에 푹 빠져 계셨던 것 같아요. 지금도 마찬가지처럼 보이고요. 40여년간 벌을 보셨을 텐데 아직도 토종벌에 대한 감정이 어떠실까요?
△왜 벌이 좋은지 물으신다면……. 벌은 항상 바뀌어요. 벌의 세계도 바뀌고……. 그걸 보다 보면 내 마음도 바뀌어요.
[벌통을 열다]는 '벌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자가 직접 양봉(養蜂)을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기후위기 시대 농업과 먹거리는 인간이 겪어보지 못한 방향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국내 농업 총생산량의 35%는 화분매개 곤충이 필요한 만큼 인간은 벌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벌통 속 작은 세계를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벌 관련 정책과 연구자, 양봉농가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벌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벌통을 열면서.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