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공지능(AI) 바둑 혁명 이끈 대만인 황쓰제 ④
파이낸셜뉴스
2026.05.06 10:50
수정 : 2026.05.06 14: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바둑에서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인공지능을 구현한 알파고(AlphaGo)의 창시자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와 함께 이번 한국을 찾은 인물 가운데,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존재가 있다. 바로 '아자황'으로 불리는 황쓰제(黃士傑)다.
가족과 함께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AI 시대의 기반을 만든 젠슨 황(Jensen Huang)이 '설계자'라면, 대만의 토양에서 자란 아자황은 그 기반 위에서 인간과 AI를 연결하는 '번역가'라 할 수 있다.
그는 2016년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이세돌과 알파고의 역사적 대국에서 인공지능을 대신해 직접 돌을 놓았던 인물이다. 그 장면은 전 세계로 중계되었지만, 대중의 시선은 대부분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 순간, 인공지능과 현실 세계를 연결해 준 사람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흔히 '은막 뒤의 주연'이라는 표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자황은 달랐다. 그는 무대 위에 서 있었지만 주연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완전히 보이지 않는 존재도 아니었다. 그는 말 그대로 '은막 앞에 선 조연'이었다. 그의 별명은 알파고의 손이다.
아자황은 1978년생으로, 한국 바둑계로 치면 목진석 9단과 같은 세대다. 대학 시절 바둑대회에서 우승할 만큼 실력을 갖춘 그는 온라인 바둑을 즐기며 바둑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바둑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그는 바둑을 하나의 '문제'로 보았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컴퓨터라는 도구를 선택했다. 이 선택이 그의 삶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국립대만사범대학교에서 정보공학을 전공한 그는 바둑의 복잡한 구조, 특히 '패(劫)'와 같은 상황에 주목했다. 패의 곳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서 두 번을 양보하는 선택이 필요하기도 하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바둑의 변화는 더욱 증폭된다. 이처럼 패는 대국자 사이에 보이지 않는 '딜'을 만들어내며, 바둑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전략의 흐름 속에서 전개된다.
그는 이러한 구조를 컴퓨터로 풀어내기 위해, 모든 경우를 완전히 계산하려는 접근이 아니라 경험과 확률에 기반한 방법을 선택했다. 박사 과정에서 연구한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에 관한 새로운 경험적 학습 방법(A New Empirical Study of Monte Carlo Tree Search)'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는 가능성이 높은 경로를 중심으로 탐색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직관과 유사한 판단 구조를 컴퓨터에 구현하려는 시도였다.
그 시기 국립대만사범대학교 바둑 동아리는 한국 명지대학교에서 바둑 관련 박사학위를 받은 장샤오인(張曉茵)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고 있었으며, 아자황은 동아리의 최고참 선배였다. 동아리 구성원들은 당시 그로부터 바둑 AI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문제의식을 배울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박사 학위를 마친 그는 캐나다 앨버타 대학(University of Alberta)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한 뒤, 2012년 딥마인드(DeepMind)에 합류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인류가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문제에 다시 도전하게 된다. 바둑이라는, 가장 복잡한 전략 게임을 인공지능으로 해결하는 일이었다.
알파고의 원리는 단순한 계산 능력에 있지 않다. 유망한 수를 선택하는 정책 네트워크, 현재 판세를 평가하는 가치 네트워크,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가상 대국을 반복하는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이 결합되어 최적의 수를 찾아가는 구조다. 인간의 직관과 경험을 데이터와 확률로 재구성한 이 방식은 기존의 인공지능 접근법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이 연구는 철저한 비밀 속에서 진행되었다. 아자황은 대만의 동료들에게조차 연구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고, 그 결과는 2016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되었다. 10여 명의 연구자가 이름을 올린 이 논문은 단순한 기술 성과를 넘어 인공지능 연구의 방향을 전환시킨 사건이었다.
아자황은 바둑이라는 오래된 지적 체계에 대한 호기심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그 집요한 탐구는 결국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바둑을 연구했지만, 그 결과는 바둑을 넘어 인간의 사고 방식 자체를 다시 묻는 질문으로 확장되었다.
최근 조선일보의 아시아 리더십 포럼(Asian Leadership Conference)에 조훈현 국수와 이창호 9단이 인공지능을 활용한 특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바둑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깊은 사고의 체계 중 하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바둑은 인공지능 혁명의 씨앗을 키워낸 토양이 되었다. 인간의 직관을 상징하던 영역에서, 기계가 인간을 넘어서는 순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가 이번 하사비스의 방한단 일원으로 조용히 한국을 찾았다. 세계 최강의 바둑 실력을 배출해 온 한국에서도, 바둑을 통해 또 다른 융합형 인재가 탄생하기를 희망한다. 바둑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한편 한국기원은 울산 지역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바둑을 정규 교육과정의 일부로 확장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울산에서 인천으로 확대하기 위해 금주 인천에서 교육청 등 관계자를 만나는 일정이 잡혀 있다. 초등학교에서 바둑을 접한 학생들이 중독성 게임에 빠지지 않고, 바둑을 통해 사고력과 집중력을 기르는 동시에 융합형 인재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최채우 한국기원 이사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