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조수미 "장하다 조수미, 내 음악 인생은 여전히 컨티뉴엄"

파이낸셜뉴스       2026.05.11 10:39   수정 : 2026.05.11 14:07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장하다 조수미"

조수미는 1983년 스무 살의 나이에 오직 음악을 향한 열정으로 이탈리아로 향하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음악만을 의지하며 버텨야 했던 고독하고 치열했던 시간들. 그리고 3년 뒤인 1986년, 이탈리아 주세페 베르디 극장에서 오페라 '리골레토' 주연으로 무대에 섰다. 동양인 성악가로서는 아직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이었다.

소프라노 조수미가 데뷔 40주년 앨범 '컨티뉴엄(Continuum)'을 발매했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발매 기념 기자회견에서 그는 40년간 이어온 음악 인생을 회고하며 향후 비전을 공유했다. 조수미는 40년 전 데뷔 무대를 마친 자신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로 "장하다, 대견하다"를 꼽았다.

■음악 인생은 계속된다, '컨티뉴엄'

40주년 프로젝트의 핵심인 새 앨범 타이틀은 라틴어로 '계속되다'를 뜻하는 '컨티뉴엄'이다. SM엔터테인먼트의 클래식&재즈 레이블 'SM 클래식스' 소속이 돼 선보이는 첫 앨범이다. 조수미는 예술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강조하며, 개인적인 삶의 궤적을 새로운 음악 언어로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이번 앨범에는 부르기 까다롭기로 유명한 레인홀트 글리에르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를 위한 협주곡'을 첫 트랙에 배치해 여전한 기량을 과시했다. 여기에 한국 창작 가곡 '아름다워라(How Beautiful)'를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삼으며 조국에 대한 사랑과 동시대 작곡가들의 협업 의지를 드러냈다. 총 11곡이 수록됐는데, 대다수의 곡이 이루마, 대니구 등 국내외 유명 작곡가와 협업한 창작곡이다. '로망스'는 엑소 수호와 함께 불렀다.

데뷔 40주년 기념 콘서트는 지난 3월 영국 런던 카도간 홀과 미국 뉴욕 카네기 홀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데 이어, 지난 9일 경남 창원을 시작으로 전국 20개 도시 투어를 이어간다. 첫 공연지로 창원을 선택한 이유는 그곳이 돌아가신 부모님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조수미는 이날 자신의 인생 멘토가 돌아가신 부모님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는 본인이 이루지 못한 성악가의 꿈을 딸을 통해 이루고자 하셨던 분"이라며 "지금의 나는 어머니의 열정과 고집 덕분에 존재한다"고 밝혔다. 어머니가 네다섯 살 딸에게 하루 8시간씩 피아노를 치게 했던 일화는 이미 음악계에서 유명하다.

아버지의 열정 또한 어머니 못지않았다. 그는 "17세 되던 해, 아버지가 영국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를 무작정 찾아가 극장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며 "결국 만남이 성사됐고, 어떻게 하면 내 딸이 이 무대에 설 수 있느냐고 물으셨는데, 극장장은 아버지의 열정에 감동해 여러 조언을 건넸다고 한다"고 전했다.

조수미는 "실제로 서른 살이 되기 전 그 무대에 섰다"며 "그런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딸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을 회상했다.

■ 조수미 이름 딴 콩쿠르로 인재 양성

조수미는 멘토로서의 역할도 본격화하고 있다. 오는 7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제2회 조수미 국제 성악 콩쿠르'에는 전 세계 55개국에서 5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려 화제를 모았다. 그는 콩쿠르가 단발성 시상에 그치지 않고, 수상자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직접 무대에 함께 서는 등 지속적인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조수미는 "자국에 대한 자부심과 실력은 물론, 인성까지 갖춘 '평화 메신저'로서의 아티스트를 키우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또 문화사절로서 클래식의 대중화에 앞장설 계획이다. 그는 "가족, 연인, 친구들이 부담 없이 찾아 즐길 수 있는 파크 콘서트나 '1000원의 행복' 같은 무대를 꾸준히 만들고 싶다"며 "40년 커리어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라고 전했다.

조수미는 이날 자신의 커리어를 바꾼 결정적 순간들을 회상하며 성악가로서 늘 정진했음을 드러냈다. 그는 "콩쿠르를 휩쓸던 시절 '1등 없는 2등'을 해보고서야 타인의 시선이 아닌 스스로 만족하는 음악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또 완벽한 발음보다 그 언어에 담긴 문화를 아는 것이 본질임을 절감하고 치열하게 공부했던 시절도 떠올렸다. 북한 성악가와의 협연 당시 기억도 회상했다. 앙코르곡 하나조차 자유롭게 정하지 못하는 검열의 현실을 목도하며 "인간과 예술가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바로 '자유'라는 신념을 굳히게 됐다"고 강조했다.

현재 카이스트 초빙 교수로 활동 중인 그는 인공지능(AI)과의 협연, 홀로그램 공연 등 과학기술과 예술의 결합에도 열린 태도를 보였다.

그는 "예술가로서의 변질은 경계해야 하지만, 기술을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클래식을 알리는 출구를 찾는 과정"이라며 도전 정신을 내비쳤다. 이어 "앞으로도 심도 있는 음악을 탐구하는 성악가이자, 후배들의 길을 밝히는 멘토, 클래식을 대중에게 선물하는 메신저로 살아가겠다"며 "익숙한 길에 안주하기보다 끊임없는 도전을 이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데뷔 40주년, 또 다른 챕터가 시작됐다. 그는 어머니의 바람처럼 한 개인의 삶을 넘어 만인의 연인이자 후배들의 멘토로서, 주어진 소명을 기쁘게 향유하는 예술가로 빛나고 있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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