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커뮤니티에 단 댓글 한줄…'범죄 먹잇감' 고통 시작
파이낸셜뉴스
2026.05.12 18:20
수정 : 2026.05.12 18:19기사원문
외모 거론한 성적 게시글에 호응
친분 쌓아가다 보안 채팅방 유도
인증 명목으로 개인정보 알아내
"돈 안 보내면 사진 유포" 협박
전문가 "위장수사 법적 허용을"
익명 커뮤니티가 로맨스 스캠·몸캠피싱 등 범죄 '유입 창구'로 사용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겉으로는 사적 만남을 가장하지만, 텔레그램 등 보안메신저로 이동한 뒤 피해자로부터 받아낸 사진이나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거나 금전 대가 만남을 제안하는 구조다.
12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대학생·직장인 대상 익명 커뮤니티들에서는 성적 만남을 암시하는 게시물이 다수 확인됐다. "키 180 이상", "마른 체형" 등 원하는 상대의 조건을 적거나, 자신의 나이와 신체 조건을 밝히며 연락을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일부 게시글 작성자는 커뮤니티 안에서 간단한 대화를 나눈 뒤 "편하게 얘기하자"며 텔레그램·시그널 등 외부 보안메신저 링크를 건넸다. 이후 보안메신저에서 신원 확인을 명목으로 사진과 연락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 소속 학과나 회사 정보 등을 요구했으며, 이를 확보한 뒤 수백만원을 송금하라고 협박하는 방식의 범죄 정황이 포착됐다.
커뮤니티에서 보안메신저로 유도해 성매매를 제안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서울 강남구로 출퇴근하는 30대 직장인 B씨는 "유명 직장인 커뮤니티이기도 하고, 상대방이 사원 인증도 해 의심 없이 안내받은 텔레그램 채팅방에 들어갔는데, 구체적인 만남 조건과 금액이 적힌 장문의 안내문이 등장해 당황스러웠다"며 "여러 여성의 사진과 특이사항을 나열한 중개업체였다"고 전했다.
텔레그램에서 운영되는 폐쇄형 '구인방'과 '사진·영상 공유방' 역시 확인됐다. 1만3000여명의 이용자가 모였으며, 성적 게시물이 짧은 시간 내 끊임없이 올라오는 모습이었다. 공유방에서는 '도용 사진이나 미성년자 게시물, 상대방의 동의가 없는 게시물은 금지된다'는 관리자의 안내가 이뤄졌지만, 불법 유포물을 걸러내는 장치나 당사자를 인증하는 절차는 존재하지 않았다.
실제 피해지원 현장에서도 익명·일회성 접촉이 피해로 이어지는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2025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지원 피해자 1만637명 중 '가해자 특정 불가'는 3088명(29.0%)으로 가장 많았다. 채팅 상대·일회성 만남 등 '일시적 관계'가 3022명(28.4%)으로 뒤를 이었다. 지속 지원 피해자도 4797명으로 전년 대비 26.3% 늘었다. 센터 측은 "불특정 다수에 의한 재가공·재유포가 쉬운 디지털성범죄의 구조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며 "단기간 조치만으로는 피해 상황이 종결되지 않아 장기적인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디지털성범죄물 유통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6일 성평등가족부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경찰청이 참여하는 '디지털성범죄 피해 통합지원단'을 출범하고 불법촬영물 유통 경로와 사이트 운영 방식, 수익 구조 분석에 나섰다. 우회 접속 통로 등을 분석해 삭제·차단 조치의 실효성을 높이고, 반복적으로 불법촬영물을 유포하거나 삭제 요청에 불응하는 사이트에 대해서는 신속 차단과 수사 의뢰, 과징금 부과, 국제 공조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익명 커뮤니티에서 보안메신저로 이어지는 유인 단계까지 포착하는 예방형 대응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텔레그램 등 일부 보안메신저가 수사기관에 협조하고 있긴 하지만, 범죄자들이 다른 메신저나 비공개 초대방, 대피소 등으로 옮겨갈 수 있다"며 "사회적 공감대가 마련된다면 경찰이 위장 신분으로 해당 유통망 전체를 사전 모니터링하고 추적할 수 있도록 법적 기반과 인력·예산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psh@fnnews.com 박성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