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곶자왈 기온 주춤했지만… 제주 산림은 여전히 뜨거워지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2026.05.17 09:46
수정 : 2026.05.17 09:46기사원문
2025년 한라산 8.2도·곶자왈 14.2도 기록
곶자왈 기온 최근 5년 중 두 번째 높은 수준
제주 연평균기온 17.3도, 역대 두 번째 고온
구상나무·제주고사리삼 등 기후 취약종 관리 과제
숲속 미기상 자료로 산림 보전전략 재설계 필요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한라산과 곶자왈의 기온이 지난해보다 낮아졌지만 제주 산림의 온난화 흐름은 멈추지 않았다. 2024년 기록적 고온 뒤 상승세가 한 차례 주춤했을 뿐 장기 관측 기준으로는 여전히 높은 온도대가 이어지고 있다. 숲속 온도와 습도, 땅속 온도까지 살피는 미기상 자료를 산림 보전과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근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에 따르면 한라산국립공원과 곶자왈 지역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5년 산림지역 미기상 모니터링' 결과 한라산과 곶자왈의 연평균 기온은 전년보다 각각 0.7도와 0.6도 낮아졌다.
2025년 한라산국립공원의 연평균 기온은 8.2도로 측정됐다. 기상청 관측 기준 1973년 이후 가장 더웠던 2024년의 8.9도보다 0.7도 낮았다. 지점별로는 돈내코가 8.7도로 가장 높았고 어리목 8.2도, 성판악과 관음사 각각 8.0도 순이었다.
연평균 습도는 80.5%로 전년 82.3%보다 1.8%포인트 낮아졌다. 다만 여전히 80%를 넘는 높은 습도를 보이며 한라산 산림 내부의 습윤한 환경은 유지됐다.
곶자왈도 전년보다는 낮아졌지만 높은 온도대에 머물렀다. 2025년 곶자왈의 연평균 기온은 14.2도로 2024년 14.8도보다 0.6도 낮았다. 그러나 최근 5년 관측치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곶자왈의 2025년 습도는 86.9%, 지온은 13.5도로 최근 5년 중 가장 낮았다.
한 해 수치만 보면 기온 상승세가 꺾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제주 전체 기후 자료는 다른 흐름을 보여준다. 제주지방기상청의 '2025년 제주도 연 기후특성'에 따르면 2025년 제주도 연평균기온은 17.3도로 2024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았다. 최근 5년간 연평균기온도 역대 1~6위 안에 들어 지속적인 기온 상승 흐름을 보였다.
폭염과 열대야도 일상화되고 있다. 2025년 제주도 연간 폭염일수는 17.8일로 역대 두 번째였고 열대야일수는 63일로 역시 역대 두 번째였다. 여름철 평균기온은 역대 1위, 가을철 평균기온은 역대 2위를 기록했다. 9월에도 평균기온 26.9도, 폭염일수 3.3일, 열대야일수 13.3일로 모두 2024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수준이었다.
바다의 고온 흐름도 산림 기후와 따로 볼 수 없다. 제주지방기상청 2025년 9월 기후특성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9월 해수면 온도는 26.0도로 최근 10년 중 두 번째로 높았고, 제주도 인근이 포함된 남해는 28.1도로 나타났다. 숲과 바다의 고온 신호가 동시에 이어지고 있다.
한라산은 제주 기후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드러내는 산림 생태계다. 고산식물과 아고산대 침엽수는 기온 상승에 취약하다. 서식 범위가 위로 밀려나면 더 이상 이동할 공간이 줄어든다. 국립산림과학원은 한라산 구상나무 숲 쇠퇴 원인을 분석한 결과 잦아진 태풍에 의한 강한 바람과 기후변화, 숲의 연령 구조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힌 바 있다.
구상나무는 제주 산림 기후변화의 대표 지표종이다. 국립산림과학원 분석에 따르면 한라산 구상나무 숲은 고산지역의 강한 바람과 얕은 토양층에 적응해 왔지만 최근 급격한 기후변화 속에서 쇠퇴가 보고됐다. 고산 식물의 변화는 제주 산림 생태계가 겪는 압력을 보여주는 현장 신호로 볼 수 있다.
곶자왈은 지하수와 생물다양성을 함께 품은 제주 특유의 숲이다.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지형의 틈으로 빗물이 스며들고 숲 내부에는 습윤한 미기상이 형성된다. 작은 온도와 습도 변화도 희귀식물, 양치식물, 이끼류, 곤충 서식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제주고사리삼 보전 문제도 같은 흐름과 맞닿아 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제주고사리삼의 서식지 환경 변화와 교란이 심화되면서 개체군 감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체계적인 관리 전략과 기반 구축 필요성을 제기했다. 제주고사리삼은 전 세계에서 제주도에만 자생하는 희귀·특산식물로, 곶자왈 중에서도 해발 200m 이하 일부 습지에 제한적으로 분포한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오는 21일 제주특별자치도 김만덕기념관에서 '멸종위기종 제주고사리삼 보전 심포지엄'을 열어 개체군 동태와 유전다양성, 시민과학 기반 모니터링 등 연구 현황을 공유하고 지속가능한 보전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제주고사리삼은 한 번 사라지면 지구상에서 다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곶자왈 미기상 변화와 서식지 관리가 함께 다뤄져야 할 과제다.
이번 조사 결과가 말하는 핵심은 분명하다. 기온이 한 해 낮아졌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제주 산림이 이미 높은 온도대에 적응을 요구받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기온과 습도, 지온이 달라지면 식물의 개화 시기와 생육 속도, 병해충 발생, 고산식물 서식 범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정책 과제도 더 구체화해야 한다. 제주도는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보다 15년 앞선 2035년 탄소중립을 추진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제주도가 2024년 '에너지 대전환을 통한 제주 2035 탄소중립 비전'을 선포했고, 전체 전력 생산의 약 2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고 전기차 보급률 전국 1위를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탄소중립은 에너지 정책에만 머물 수 없다. 산림과 곶자왈의 장기 미기상 관측망을 늘리고, 고산식물과 희귀식물의 생육 변화를 정기적으로 추적해야 한다. 제주 전역에서 벌어지는 개발사업의 환경영향 검토에도 숲속 미기상 자료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도 2024~2033년 계획으로 공개돼 있어 산림·생태계 적응 정책과의 연계가 과제로 남아 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산림 내부의 미기상 자료를 지속적으로 축적해 식생 변화와 생태계 변화 예측 시스템을 강화할 방침이다. 단기 변동과 장기 추세를 함께 분석해야 기후변화 대응형 보전 전략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형은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장은 "2025년은 기록적 고온을 보였던 전년보다 기온과 습도가 다소 주춤한 양상을 보였다"며 "지속적인 온습도 모니터링으로 숲속 미기상 자료를 구축하고 식생과 생태계 변화 예측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한라산과 곶자왈은 제주 자연의 상징이면서 기후위기의 관측 현장이다. 2025년의 기온 하락은 안심 신호가 아니라 장기 고온 흐름 속의 일시적 등락에 가깝다. 이제 필요한 것은 한 해 수치에 대한 해석보다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보전전략이다. 제주 산림의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그 속도를 읽어내는 일이 기후위기 시대 제주 보전정책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jyb@fnnews.com 정용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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