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체 쇼크' 페라리…왜 스포츠카 EV는 어려운가
파이낸셜뉴스
2026.05.27 10:40
수정 : 2026.05.27 10:38기사원문
이번 루체 논란은 고성능 스포츠카 브랜드가 정체성과 전동화 사이에서 얼마나 어려운 선택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첫 EV 승부수 루체…시장 반응은 냉담
2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들은 페라리의 순수 전기차 '루체'의 시장 반응을 집중 조명했다. 페라리는 지난 주말 루체를 공개했다. 루체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60마일(약 96㎞)까지 2.5초 이내에 도달하고 최고 속도는 시속 190마일(약 306㎞)을 넘는 성능을 갖췄다. 존 엘칸 페라리 회장은 "우리는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고 싶었다"며 "차를 더 빠르게 만들고, 더 중요한 것은 운전자가 정말 운전하고 싶어하는 차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FT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루체를 두고 "페라리라는 브랜드에 대한 모욕이자 끔찍하게 실망스러운 차"라고 혹평했다. 대중적인 전기차인 닛산 리프를 비롯한 훨씬 저렴한 차량과 디자인이 비슷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WSJ에 따르면 페라리를 보유한 몬트리올의 한 부동산 사업가는 "이 차 가격을 40만~50만유로로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나.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심지어 공개 전 페라리가 제작한 홍보 영상 속 직원들조차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는 해석이 나왔다. 한 직원은 "예상 밖"이라고 했고 다른 직원은 "놀랍다"고 말했다.
"페라리답지 않다"…이탈리아 안팎서 혹평
이탈리아 안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탈리아 우파 성향의 마테오 살비니 교통부 장관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루체를 정면 비판했다. 그는 "전기차에 엄청난 가격(55만유로)인데 디자인은 말할 것도 없다"며 "무엇보다 페라리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혁신인가. 엔초 페라리가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다"고 비꼬았다.
20년 넘게 페라리를 이끈 루카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 전 회장도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우리는 전설을 파괴할 위험에 처해 있다"며 루체가 페라리 상징인 '프랜싱 호스(도약하는 말)' 엠블럼을 달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적어도 중국이 이 차를 모방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조롱 섞인 농담도 던졌다.
특히 애플 최고디자인책임자(CDO) 출신 조니 아이브가 공동 디자인에 참여한 점도 논란을 키웠다. 일부 소비자들은 밝은 하늘색 계열 외관과 차체 비율이 애플 제품을 연상시킨다며 "애플카 같다"거나 "패밀리 전기차 같다"는 반응을 내놨다. 시장도 냉담했다. 루체 공개 직후 페라리 주가는 하루 만에 8% 이상 하락했다.
스포츠카의 딜레마…왜 전기차가 어려운가
전기차(EV) 전환이 자동차 업계 전반의 흐름이 됐지만 초고가 스포츠카 브랜드들은 속도를 내지 못하거나 오히려 계획을 늦추고 있다.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꿈'과 감성을 파는 브랜드 특성상 내연기관 엔진이 주는 경험을 대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주요 럭셔리 스포츠카 업체들은 최근 전동화 전략을 재조정하고 있다. 고성능 차량은 일반 승용차와 달리 엔진음과 진동, 가속감, 차체 밸런스 자체가 브랜드 정체성과 직결되는데 배터리를 얹은 전기차는 구조적으로 이런 감성을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무거운 배터리는 차량 중량을 늘려 코너링과 핸들링 특성을 바꾸고, 엔진 소음이 사라지면서 스포츠카 특유의 '감성적 경험'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여러 브랜드들은 속도 조절에 나선 상태다. 포르쉐는 공격적인 전기차 전환 이후 투자 일부를 다시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모델로 돌렸고, 람보르기니는 첫 순수 전기차 출시 시점을 늦추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전략에 무게를 싣고 있다. 애스턴마틴 역시 첫 전기차 출시를 2030년대 초반으로 미뤘으며 맥라렌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인업에서 하이브리드 중심 접근을 택했다. 로터스도 전기차 확대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비중 강화 쪽으로 방향을 조정하고 있다.
반면 일부 업체는 제한적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롤스로이스는 초부유층 고객을 겨냥한 맞춤형 전기차 개발에 나섰고, 벤틀리는 첫 전기차 출시를 준비하면서도 장기간 하이브리드 판매를 병행할 계획이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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