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나무호 타격 주체로 사실상 이란 지목…공세적 대응 예고
연합뉴스
2026.05.27 19:53
수정 : 2026.05.27 20:28기사원문
'이란산 미사일' 증거 확보 뒤 기조 전환…이란대사 초치해 사과 요구 정부 "공격주체 지목해 비판한 경우 드물어"…주한이란대사는 관련성 부인 호르무즈 항행 기여는 국제사회 논의 지켜보며 단계적 검토한다는 입장 유지
정부, 나무호 타격 주체로 사실상 이란 지목…공세적 대응 예고
'이란산 미사일' 증거 확보 뒤 기조 전환…이란대사 초치해 사과 요구
정부 "공격주체 지목해 비판한 경우 드물어"…주한이란대사는 관련성 부인
(서울=연합뉴스) 김동현 기자 =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선박을 공격한 주체로 이란을 사실상 지목하면서 향후 이란을 상대로 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전망이다.
그간 정부는 여러 정황상 이란의 소행일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도 공격 주체를 섣불리 단정하지 않았는데 추가 조사를 통해 이란이 관여됐다는 증거를 확보한 상황에서 대응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한국 화물선 나무호를 지난 4일 타격한 미상 발사체 2기가 이란에서 개발하고, 생산한 누르 계열의 대함미사일이라는 조사 결과를 27일 발표했다.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은 이날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런 조사 결과를 설명하고서는 "여러 가지 증거가 이란 쪽을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10일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만 해도 공격 주체를 특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후 외교부 고위당국자가 지난 14일 이란 이외의 다른 어떤 주체가 나무호를 공격했을 가능성이 "상식적으로 크지 않다"고 말했지만, 이때도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면서 우회적으로 이란 가능성을 시사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나무호 피격 23일 만에 이뤄진 이날 조사 결과 브리핑에서 정부는 이란에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더욱 분명히 밝혔다.
정부가 이란을 더 직접적으로 지목하게 된 배경에는 나무호에서 수거한 비행체 잔해 정밀 감식과 현장 조사 등을 통해 이란이 쉽게 반박하지 못할 증거를 확보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비행체가 이란산 대함미사일이라고 결론 내린 근거로 비행체 엔진 잔해가 이란산 터보제트 엔진과 유사하고, 부품에서 이란의 제조사 각인으로 추정되는 글자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또 미사일 한 기가 불발한 덕분에 다소 온전한 상태인 탄두를 확보했는데 탄두의 형상이 이란 대함미사일의 탄두와 유사했으며, 잔해물의 하늘색 도색과 전자기판의 생산 연도를 고려하면 누르 계열의 대함미사일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간 정부는 나무호 피격에 대한 책임을 부인해온 이란이 전향적으로 공격을 시인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 만큼 이란이 반박하지 못할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려고 노력해왔다.
섣불리 이란을 공격 주체로 지목할 경우 이란이 반발하면서 양국 관계 및 아직 호르무즈 해협 안쪽에 갇힌 25척의 한국 선박의 안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타결이 임박해 보이며 호르무즈 해협 통행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커진 상황에서 이란을 자극해 얻을 실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런 신중 기조 때문에 국내 일각에서는 정부가 한국 선박과 국민이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도 너무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나무호에 대한 미사일 발사가 우발적인 행동의 결과라기보다는 의도적인 공격에 가깝다는 징후가 추가 조사를 통해 확인된 점도 정부의 기조 전환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나무호를 같은 지점에 1분 간격으로 타격한 미사일 두 발의 탄두에 고폭 화약이 탑재됐다는 사실이 정밀 감식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이를 두고 류윤상 국방부 국제차장(해군 준장)은 해군 지휘관을 해본 입장에서 볼 때 "피해를 주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쏜 것으로 판단된다"고 브리핑에서 말했다.
다만 정부는 이란의 의도 자체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 나무호를 겨냥한 고의적인 공격 여부에 대해서는 평가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또 이란산 미사일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이지만, 어디서 발사했는지는 이번 조사를 통해 확인하지 못했다.
누르 대함미사일은 주로 이란 해군과 혁명수비대, 친이란 세력이 사용하는데 시리아 등지에 있는 친이란 세력에도 수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향후 이란에 대해 더 공세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란이 나무호 피격에 책임이 없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는 한 큰 소득을 얻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 차관은 이날 조사 결과 발표 직후 사이드 쿠제치 주한이란대사를 청사로 초치해 선박 피격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포함한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했다.
박 차관은 브리핑에서 "(이란 측에) 강력한 규탄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고 관련 부분에 있어서 사과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쿠제치 대사가 박 차관과 면담 후 취재진과 만나 "이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다 부인한다"면서 "절대 개입한 게 없다"며 나무호 피격 관련성을 부인했다.
외교가에서는 정부가 향후 손해배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외교부는 비슷하게 공격당한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이 같은 대응이 현재로서는 적절한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나무호는 이번 전쟁 발발 후 호르무즈 해협에서 공격당한 각국 선박 중 33번째였는데 그간 사례를 보면 피해국들은 주로 공격 주체를 지목하지 않으면서 자국 선박에 대한 공격 행위만 규탄했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박 차관은 "많은 국가의 선박이 피격됐지만 공격 주체를 확정해서 정부가 이렇게 비판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며 "저희가 그나마 가장 투명한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언론과 국민 여러분께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아직 호르무즈 해협 안쪽에 갇힌 선박 25척(나무호 포함)의 안전한 통행을 위해 이란과의 소통 등 외교적 노력도 계속할 방침이다.
이들 선박은 나무호 피격 이후 정부 권고에 따라 아주 위험한 지역에서는 벗어났으며 현재 안전한 상태로 대기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나무호 피격과 관련 외교적 대응에 초점을 맞추면서 '호르무즈 해협 항행 자유 기여'와 관련해서는 국제사회의 논의를 지켜보면서 단계적인 기여 방안을 검토한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국방부는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통항 보장을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 논의에 적극 참여 중으로, 관련 정세와 동향을 파악하는 등 유관 국가들과 긴밀히 소통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국제법 및 국제 해상로의 안전, 한미동맹 및 한반도 안보 상황, 국내법 절차 등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가운데 관계부처와 현실적 기여방안을 면밀하게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blueke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저작권자 ⓒ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