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누가 한 번만 더 물어봐 줬더라면
파이낸셜뉴스
2026.06.01 09:00
수정 : 2026.06.01 09: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2016년 그리고 그 이후 몇 년 동안 소년부 판사로 일하며 수많은 소년들을 만났습니다. 법정에 선 소년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뒤에는 늘 하나의 공통된 질문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을까?"
어떤 아이는 충동적으로, 어떤 아이는 반복된 방치 속에서, 또 어떤 아이는 도움을 요청할 곳조차 몰라 결국 그 자리에 서게 됩니다.
판사로서 나는 그들의 '행동'을 판단해야 했지만, 동시에 그 행동 뒤에 있는 '이유'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어느 해 소년보호협의회(가정법원, 소년원, 아동복지시설, 보호관찰소, 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등 소년재판과 관련된 다양한 기관의 관계자들이 1년에 한 번씩 모여 현장의 목소리를 공유하고, 각 기관이 겪는 어려움과 제도적 한계를 솔직하게 나누는 자리임)에서 들은 이야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일부 청소년들이 더 가벼운 처분을 받기 위해 '임신'을 선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곧 그것이 단순한 소문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년들은 SNS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판사가 엄한지, 어떤 경우에 처분이 약해지는지, 마치 시험 대비 요령을 나누듯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비행 청소년들 사이에서 소년원 처분을 자주 내리는 판사를 '10호 천사'라고 부른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임신하면 처분이 가벼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그것을 그대로 믿고 행동으로 옮긴 소년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충격과 함께 깊은 슬픔을 느꼈습니다. 새로운 생명을 품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처벌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물론 소년원이나 아동복지시설은 집단생활을 전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임산부가 생활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더 마음이 아팠던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 선택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거운 일인지 그 소년들은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소년의 선택을 함께 책임져 줄 어른이 없었습니다.
법정에서 울며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고 말하던 비행소년들 중 상당수는 사회 내 처분을 받은 이후 임신을 중단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이 소년들의 문제가 결코 그 소년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관심, 가정의 안정, 그리고 소년을 붙잡아 줄 누군가의 존재. 그 중 하나라도 무너질 때 소년은 생각보다 훨씬 쉽게 잘못된 선택 앞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원칙을 더 엄격히 세우기로 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임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처분이 달라지지 않도록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자 그런 선택을 하는 소년들은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이 경험은 제도의 작은 틈이 어떻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통해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년들이 보내온 편지
소년재판이 끝난 뒤에도 소년들과의 인연은 완전히 끝나지 않습니다. 소년부 판사는 소년에 대한 처분 이후에도 집행 감독의 차원에서 일정 기간 동안 그 소년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지켜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종종 소년들로부터 편지를 받습니다.
어떤 편지는 짧았습니다. 하루 일과를 적어 내려간 일기 같은 글도 있었고, 어떤 편지에는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 담겨 있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소년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길게 풀어놓으며 자신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편지는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내용이 담긴 편지들이었습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요.""다시 시작해 보고 싶어요."
시설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소년들은 처음으로 멈춰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제야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누군가는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지만, 누군가는 그 시간 속에서 처음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그 변화의 시작을 담은 편지는 길지 않아도 묵직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집행 감독을 하는 모든 소년들에게 공평해야 했고 판사로서 비행소년들과의 거리도 필요했기 때문에 그 편지들에 답장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편지를 보낸 소년들을 만날 때마다 꼭 한마디는 전했습니다. "네 편지, 잘 읽고 있다."
부모에게 드리고 싶은 이야기
이 글을 읽고 계신 부모님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쉽게 흔들립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대화를 미루는 하루, 아이의 변화를 지나치는 한 번의 순간, "괜찮겠지"라고 넘긴 작은 신호들. 그런 것들이 쌓여 아이를 점점 혼자 서게 만듭니다.
물론 모든 상황을 부모가 막아줄 수는 없습니다. 아이는 결국 스스로 선택을 하며 자라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 곁에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법정에서 수많은 비행소년들을 만나는 동안 소년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던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때 누가 한 번만 더 물어봐 줬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아이를 지키는 일이 생각보다 거창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저 한 번 더 묻고, 한 번 더 듣고, 한 번 더 기다려주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한 번이 아이의 인생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l 김태형 변호사는 가사∙상속 분야 전문가이다. 2007년 법관 임용후 2024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17년간의 법관생활을 끝내고 법무법인 바른에 합류했다. 김태형 변호사는 법관시절 2012년부터 총 8년간 가사∙상속 및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법관 퇴직 전 5년(2019~2024)간 수원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수많은 가사∙상속 관련 케이스를 처리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했다. 베스트셀러인 "부장판사가 알려주는 상속, 이혼, 소년심판 그리고 법원"(박영사, 2023)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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