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13번, 조규성이 3번?"… 멕시코도 속아 넘어간 홍명보의 '역대급 연막작전'
파이낸셜뉴스
2026.05.31 21:00
수정 : 2026.05.31 21:00기사원문
에이스 상징 7번 지운 손흥민, 수비수 번호 3번 단 조규성… 치밀한 '정보 교란'
"유명한 얼굴이라도 순간의 혼선 노린다"… 1%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는 벤치의 지략
6월 1일 진짜 등번호 26인 확정 예고… 5-0 대승으로 심리전도 실전 모의고사도 완승
[파이낸셜뉴스] 전쟁터에 나서는 장수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병법은 '기만'이다. 사상 첫 원정 8강을 향해 진격하는 홍명보호가 결전을 앞두고 등번호를 모조리 뒤섞는 파격적인 '연막작전'을 펼치며 상대국 전력 분석관들의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31일(한국시간)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트리니다드토바고(T&T)와의 첫 번째 평가전에서 5-0의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날 그라운드에 나선 한국 선수들의 등번호는 그야말로 대혼돈 자체였다. 대한민국 축구의 상징이자 부동의 에이스인 손흥민(LAFC)의 등에는 10년 넘게 그를 지켜온 '7번' 대신 낯선 '13번'이 박혀 있었다. 주인을 잃은 7번 유니폼은 측면 수비수 이태석(아우스트리아 빈)이 꿰찼다.
파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보통 팀의 핵심 골잡이들이 차지하는 '9번'의 주인공은 최전방 공격수가 아닌, 이번 명단에 깜짝 승선한 수비수 이기혁(강원)이었다. 후반전에 교체 투입되어 멀티골을 폭발시킨 간판 스트라이커 조규성(미트윌란)은 정통 센터백들이 주로 애용하는 '3번'을 달고 상대 진영을 맹폭했다. 포지션과 등번호의 상식을 완전히 파괴해버린 셈이다.
현대 축구에서 상대 팀의 에이스 얼굴을 모르는 전력 분석관은 없다. 손흥민이나 조규성처럼 유럽 무대를 누비는 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은 이미 전 세계에 100%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홍 감독이 이런 번거로운 연막작전을 지시한 이유는 단 하나, '찰나의 혼선'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템포가 극도로 빠른 실전 그라운드 위에서는 무의식적으로 등번호에 의존해 시야를 확보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 수비수들이 순간적으로 '7번'이나 '9번'을 쫓다가 마크맨을 놓치는 단 1초의 틈을 노리겠다는 벤치의 처절하고 치열한 심리전이다. 조별리그에서 맞붙을 체코,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본선 상대국들의 분석망에 작은 모래알이라도 뿌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성공적인 연막작전과 더불어 5-0이라는 완벽한 결과물까지 챙긴 홍명보호. 상대의 눈을 가리고 우리의 발톱을 날카롭게 다듬은 대표팀은 오는 6월 4일 엘살바도르를 상대로 마지막 예열을 마친 뒤 결전지인 멕시코 과달라하라로 입성한다. 한편, 상대국들을 혼란에 빠뜨렸던 진짜 26인의 본선 등번호는 6월 1일 공식 발표될 예정이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