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병을 치료할 때는 증상이 아닌 맥(脈)을 따라야 한다

파이낸셜뉴스       2026.06.06 06:00   수정 : 2026.06.06 06: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옛날 이생(李生)의 아들이 나이 18세에 장가를 갔다. 아들은 혼인한 지 수십 일이 지나 10월경 상한병(傷寒病)으로 감기에 걸렸는데, 머리가 아프고 몸에 열이 났다.

병이 난 지 3일 뒤에는 코피가 났으며, 대변이 처음부터 막혀 있었는데 이미 6일째 배변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생은 여러 의원들에게 패독산(敗毒散), 시갈탕(柴葛湯), 무가산(無價散)을 처방받아 복용하였고, 병 5~6일째에는 월경수(月經水)와 야인건(野人乾, 마른 대변) 등의 약까지 사용하였다. 그러나 열은 더욱 심해졌다.

사실 당시에는 따로 명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침 가벼운 병으로 몸이 불편해 누워 있어서 감히 치료를 요청할 수 없었다.

이생은 무례함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 명의에게 아들을 진료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명의는 이생이 간곡히 청하기를 반복하자, 부득이하게 왕진을 갔다.

명의가 아들을 진찰해 보니 육맥(六脈)이 모두 허약하고 미세하였으며, 손톱 색은 약간 푸르스름했다. 아들은 이불을 두껍게 덮기를 좋아했고, 몹시 번조(煩躁)하여 편안히 있지 못했다.

명의는 진찰을 마치고 깜짝 놀라며 말하기를 "이것은 양증(陽證)의 실열(實熱)이 아닙니다. 만약 한량(寒凉)한 약을 지나치게 쓰면 반드시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상한문(傷寒門)의 맥문동탕(麥門冬湯)에 인삼 2돈을 더하여 여러 첩 연달아 복용시키면 살릴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맥문동탕은 병후 허탈, 진액 고갈, 기가 끊어질 듯한 상태에 사용하는데, 익기생진(益氣生津) 하는 효능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 인삼을 더해서 쓰면 크게 온보(溫補)하게 된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가족 중 명망 있는 한 사람이 평소 의서를 좀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는 "나는 비록 의술은 모르지만 짐작으로 말하자면, 이 젊은이는 신혼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상한에 걸렸으니 필시 방노과다(房勞過多, 과도한 성관계)로 인해 열이 생긴 상한일 것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심하게 번조하고 대변까지 막혀 있으니 실열(實熱)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라는 것이다. 상한병은 감기와 같은 외감병을 총칭한다.

그러자 명의는 "병은 짐작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상한은 반드시 맥에 근거해야지 증상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양증처럼 보일지라도 맥이 이미 음맥(陰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양병(陽病)에 음맥이 나타나는 것은 고방(古方)에서 가장 크게 꺼리는 징조입니다."라고 했다.

아들의 가족들은 명의의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의가 의견을 굽히지 않자, 급히 한 첩만 먼저 다려서 먹였더니 곧 편안히 잠들 수 있었고 열도 내렸으며 병세가 절반 이상 호전되었다. 가족들은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아들을 처음 치료했던 의원이 어떻게 알았는지 부리나케 와서 아들을 다시 진찰해 보고는 "어제 명의라는 의원이 온보하는 처방을 했다고 들었소이다. 그런데 이런 온보(溫補)하는 약을 썼는데 다행히 해가 없었을 뿐입니다. 만약 계속 쓰면 반드시 큰 화를 부를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화해산(和解散)을 쓰라고 권하였다.

화해산은 소시호탕(小柴胡湯)으로 몸속에 머물러 있는 사기를 조화롭게 풀어주고 열을 내리는 효능이 있는 처방이다.

갑자기 찾아온 의원이 겁을 주자 이생은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본래 주견이 없고 또 겁이 많아 양쪽 의원의 말을 두고 망설인 끝에 약을 모두 중단해 버렸다. 그러자 아들의 여러 증상들이 저절로 조금씩 나아지는 듯하였다. 그러나 5~6일이 지나자 처음 증상이 다시 나타났고, 거기에 가래와 기침까지 생겼다.

이생은 다시 명의를 불러 치료를 부탁했다. 명의는 진찰해 보니 담병(痰病)인 것을 알고서는 육군자탕(六君子湯)을 써서 5~6첩 복용하게 하니 완전히 나았다. 육군자탕(六君子湯)은 비위(脾胃)를 보하고 기(氣)를 북돋우며 담(痰)을 제거하는 처방이다.

아들이 이렇게 해서 완치된 것이 소문이 나자, 중간에 찾아왔던 의원이 명의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그러자 명의는 "상한병 가운데 맥이 허하고, 얼굴빛이 참담하며, 손톱이 푸르고, 번조가 심한 경우에는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치료하여 여러 차례 효과를 보았소이다. 대개 상한병은 다른 질병과 같지 않소이다. 상한병은 오로지 증상이 아닌 맥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의원은 명의에게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한의학에서는 맥상이 증상과 일치하지 않을 때는 증상보다 맥상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환자의 호소나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 쫓아 처방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특히 상한병(감염병)과 같은 급성 열성질환에서는 잘못된 판단으로 한량한 약을 남용하면 오히려 병세를 악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옛 의가들은 상한은 맥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맥진은 물론이고 설진, 안색, 음성, 호흡, 정신상태 등 다양한 진찰 소견을 종합적으로 살펴야만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가능하다.

결국 명의(名醫)와 용의(庸醫)의 차이는 증상만 보는가, 아니면 몸이 보내는 전체적인 신호를 읽어내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역시만필(歷試漫筆)>李生子年十八始娶, 數旬後十月間, 得傷寒症, 頭疼肌熱, 而三日後衂血, 自病初大便閉者, 已六日矣, 其間服敗毒散·柴葛湯·無價散, 至五六日, 始服月經水·野人乾等藥, 熱候尤加, 余其時適病臥, 李生來懇不已, 不得已往診之, 六脈俱虛微, 爪甲微靑, 衣被厭厚, 煩躁不寧, 余診畢, 乃驚曰: 此非陽症實熱, 若過用寒凉之劑, 必危矣, 宜用傷寒門麥門冬湯, 加人參二錢, 連進數貼, 可以救之, 衆皆驚訝, 坐上有一大家子, 素閱方書, 乃曰: 我雖昧方技, 以臆見論之, 則此少年新昏未久而得傷寒, 必是犯熱傷寒, 而且如是煩極便閉, 非實熱而何. 余曰: 病不可以意治之, 而且傷寒當憑脈而不憑症, 雖是陽症, 脈旣見陰, 則陽病得陰脈者, 古方所大忌. 病家聞余言, 始驚惶罔措, 急煎進此藥一貼後, 能穩睡熱退, 病減太半, 翌日, 當初看病之醫來診曰: 用此溫補, 幸以無害, 若繼用則必致大禍, 勸用和解散, 主人素無主見, 而且生大怯, 彼此之藥, 姑停不用, 諸症自爾稍勝, 五六日後, 前症復發, 且有痰嗽, 更召余治之, 用六君子湯, 五六貼而愈, 余於傷寒之症, 脈虛·面慘·甲靑·煩躁者, 以此法治之, 累得效, 盖傷寒非他病之比, 專以脈斷之, 可也. (이생의 아들은 열여덟 살에 처음 장가를 갔다. 혼인한 지 수십 일이 지난 10월경 상한병에 걸려 머리가 아프고 몸에 열이 났다. 병이 시작된 지 사흘 뒤에는 코피가 났고, 병이 시작될 때부터 막혀 있던 대변은 이미 엿새째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패독산, 시갈탕, 무가산을 복용하였고, 병이 오륙 일쯤 되었을 때 비로소 월경수와 야인건 등의 약을 먹었으나 열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그때 나는 마침 병으로 누워 있었는데, 이생이 와서 간곡히 청하기를 그치지 않아 부득이하게 가서 진찰하였다. 맥을 짚어 보니 여섯 부위의 맥이 모두 허약하고 미세하였으며 손톱은 약간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환자는 두꺼운 이불 덮기를 좋아하였고 몹시 답답하고 안절부절못하였다. 나는 진찰을 마치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이것은 양증의 실열이 아니다. 만약 차고 서늘한 약을 지나치게 사용하면 반드시 위태로워질 것이다. 상한문에 나오는 맥문동탕에 인삼 두 돈을 더하여 여러 첩 계속 먹이면 살릴 수 있다." 그러자 모두가 놀라고 의아해하였다. 그 자리에 있던 한 부유한 사람이 평소 의서를 읽어 본 적이 있었는데 말했다. "나는 비록 의술은 모르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 젊은이가 혼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상한에 걸렸으니 반드시 방사로 인해 열이 생긴 상한일 것이다. 게다가 이처럼 몹시 답답해하고 대변까지 막혀 있으니 실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말했다. "병은 짐작으로 치료할 수 없다. 또한 상한은 마땅히 맥을 근거로 해야지 증상만을 근거로 해서는 안 된다. 비록 양증이라 하더라도 이미 맥이 음맥으로 나타났으니, 양병에 음맥이 나타나는 것은 옛 의서에서 가장 크게 꺼리는 것이다." 병자의 가족들은 내 말을 듣고 비로소 크게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급히 그 약을 달여 한 첩 먹인 뒤 환자는 편안히 잠들 수 있었고 열이 물러나 병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다음 날 처음 진찰했던 의원이 와서 보고는 말했다. "이런 따뜻하게 보하는 약을 써도 다행히 해가 없었을 뿐이다. 만약 계속 사용하면 반드시 큰 화를 부를 것이다." 그러면서 화해산을 쓰라고 권하였다. 집주인은 원래 주견이 없고 또 매우 겁이 많아 양쪽 의원의 약을 모두 일단 중지하였다. 그러자 여러 증상은 저절로 조금씩 나아지는 듯하였다. 그러나 오륙 일이 지나자 처음 증상이 다시 나타났고 가래와 기침까지 생겼다.
다시 나를 불러 치료하게 하였는데 육군자탕을 오륙 첩 사용하니 나았다. 나는 상한병 가운데 맥이 허약하고 얼굴빛이 좋지 않으며 손톱이 푸르고 답답해하며 안절부절못하는 경우에는 이 방법으로 치료하여 여러 차례 효과를 보았다. 대체로 상한병은 다른 병과 같지 않아서 오로지 맥으로 판단해야 한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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