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로와 제네시스의 공통점…'대담한 꿈'의 힘
파이낸셜뉴스
2026.06.14 05:00
수정 : 2026.06.14 05: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허드슨강 바람이 불어오는 뉴욕 맨해튼 미트패킹 디스트릭트. 과거 소고기와 돼지고기 냄새가 진동하던 창고 거리는 이제 뉴욕에서 가장 세련된 문화 거리로 변했다. 하이라인 고가공원 아래를 걷다 보면 유리 외벽으로 둘러싸인 제네시스 하우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맞은편에는 리틀아일랜드가 떠 있고, 거리에는 수많은 관광객과 뉴욕 시민들이 오가며 이 공간을 즐기고 있다.
뉴욕의 현재가 응축된 이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뜻밖에도 1960년대 할리우드의 아이콘 마릴린 먼로를 만난다. 뉴욕의 현재와 20세기 대중문화의 상징이 한 공간에서 교차하는 순간이다.
제네시스 하우스 입구를 들어서면 제네시스 플래그십 차량들이 손님들을 맞이한다. 제네시스 블랙 에디션부터 GV80 쿠페, GV60 마그마까지 뉴욕의 세련된 분위기와 어우러지며 브랜드의 럭셔리 정체성을 드러낸다.
1층 제네시스 전시장을 뒤로 하고 아래층으로 향하면 2026년 뉴욕의 세련됨은 1960년대 할리우드의 향수를 불러낸다. 어둠 속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선율과 벽면을 가득 채운 흑백 영상은 시간을 60여년 전 할리우드로 되돌린다. 전시 제목인 '매니페스팅 마릴린(Manifesting Marilyn)'은 단순한 회고전이 아니라 한 인간이 어떻게 세계적 아이콘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추적하는 여정이다.
제네시스는 마릴린 먼로 탄생 100주년을 맞아 뉴욕 제네시스 하우스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이번 전시를 직접 기획해 전시장을 꾸몄다. 테드 멘지스테 제네시스 북미법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마릴린 먼로는 영화배우이자 문화적 아이콘"이라며 "올해 6월 1일은 마릴린 먼로 탄생 100주년이었는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녀의 발자취와 성취가 기억된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금세 익숙한 얼굴이 등장한다. 바람에 흩날리는 흰 드레스, 붉은 입술, 특유의 미소. 벽면 속 마릴린 먼로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중앙에는 마릴린 먼로를 다룬 수많은 언론의 헤드라인이 빼곡히 전시돼 있다. 왜 그녀가 당대 최고의 스타였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세상이 기억하는 '마릴린 먼로'의 원래 이름은 '노마 진 모텐슨(Norma Jeane Mortenson)'이다. 192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노마 진은 어린 시절 대부분을 위탁가정과 고아원에서 보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정신질환으로 오랜 기간 시설 생활을 해야 했다. 전시장에 놓인 어린 시절 사진 속 소녀는 훗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이 될 운명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듯하다. 제네시스 관계자는 "먼로가 어린 시절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12곳의 위탁가정을 전전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노마 진 모텐슨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라디오플레인(Radioplane) 공장에서 낙하산과 무인 표적기 조립 작업을 했다. 군수공장에서 일하던 평범한 여성은 육군항공대 홍보 사진작가 데이비드 코노버의 카메라에 우연히 포착됐고, 이를 계기로 모델 활동을 시작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노마 진은 머리를 금발로 물들이고 이름을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로 바꾸며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
모델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먼로는 곧 할리우드의 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단역과 소규모 배역을 전전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1953년 영화 '나이아가라(Niagara)'와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Gentlemen Prefer Blondes)'가 연이어 흥행에 성공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특히 '금발 미녀'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으며 미국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인물로 부상했다.
그러나 먼로는 외모만으로 소비되는 배우에 머무르기를 원하지 않았다. 1955년 직접 '마릴린 먼로 프로덕션'을 설립했다. 당시 스튜디오 시스템이 배우를 사실상 계약 상품처럼 관리하던 시대에 작품 선택권과 출연 조건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여성 배우가 제작사를 설립하는 일은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도전이었다.
연기 공부에도 매진했다. 뉴욕으로 건너가 연기계의 명문으로 불리던 액터스 스튜디오(Actors Studio)에서 메소드 연기를 배웠다. 그 결실은 1959년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에서 드러났다. 먼로는 이 작품으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단순한 섹스 심벌을 넘어 배우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았다.
멘지스테 제네시스 북미법인 최고운영책임자는 제네시스가 먼로 전시회를 기획한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시 여성들은 경력에 제약이 많았고 먼로 역시 남성 중심의 산업에 있었음에도 자신의 경력을 개척하고자 하는 비전과 대담성을 갖고 있었다. 특히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전형적인 역할을 넘어 보다 드라마틱한 연기를 하고자 했으며, 당시로서는 매우 진취적으로 감독을 꿈꾸고 자신만의 제작사를 만들고자 했다."
"그녀의 이러한 발자취는 제네시스의 도전과도 닮아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럭셔리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을 때 세상은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대담하고 용감한 꿈에 도전했고, 10년 후 세상은 제네시스에 주목하고 있다."
전시장 중앙에 마련된 서재 공간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가장 오래 머물게 한다. 연녹색 다이얼 전화기와 책장으로 꾸며진 공간은 화려한 스타 이미지와 전혀 다른 먼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문학서와 철학서, 희곡집들이 놓여 있다. 먼로는 평생 독서광으로 살았다. 배우 수업을 받으며 셰익스피어와 도스토옙스키를 읽었고, 지식인들과 토론하기를 즐겼다. 세상이 기억한 '금발 미녀'라는 이미지 뒤에는 끊임없이 인정받고자 했던 진지한 예술가가 있었다.
대형 스크린에서는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 '뜨거운 것이 좋아' 등의 장면이 흘러나온다. 관람객들은 웃고 있지만 화면 속 먼로의 삶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공간.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 사이로 먼로의 사진이 천천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1962년,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녀의 생애는 짧았지만 여전히 문화와 패션, 영화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상을 떠난 지 60년이 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를 이야기하고 연구한다. 먼로는 더 이상 한 시대의 영화배우가 아니라 꿈과 야망, 그리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창조했던 한 인간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멘지스테 제네시스 북미법인 최고운영책임자는 "누구에게나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며 "크고 작은 꿈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나설 때 마릴린과 제네시스가 그러했듯 대담하고 용감한 꿈을 품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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