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르망 출발선에 서다…제네시스 역사적 첫 질주 시작
파이낸셜뉴스
2026.06.14 15:39
수정 : 2026.06.14 15:27기사원문
한국 자동차 브랜드 최초로 최상위 '하이퍼카 클래스' 도전 제조사 빌리지 입구 명당 차지…부스엔 '뷰티풀' 디자인 찬사 그리드 워크서 마그마 앞 두꺼운 인파…페라리·포르쉐 못지않아 무뇨스 "완주로 배운 품질·내구성, 양산차에 적용"
【파이낸셜뉴스 르망(프랑스)=김동찬 기자】 13일(현지시간) 오후 3시, 프랑스 르망의 라 사르트 서킷. 24시간 사투의 막을 여는 출발 세리머니가 시작되자 그리드 위로 출전국의 국기가 하나씩 펼쳐졌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깃발, 일장기, 독일 삼색기가 늘어선 사이로 익숙한 깃발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태극기였다.
1923년 시작돼 한 세기 넘게 이어진 르망 24시간 역사에서, 대한민국 자동차 브랜드가 최상위 하이퍼카 클래스 출발선에 처음 선 순간이었다.
이날 출발선에 선 주인공은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GMR)이 개발한 하이퍼카 'GMR-001'이다. 제네시스는 세계 최고 권위의 내구 레이스인 르망 24시간의 가장 높은 등급 무대에 한국 브랜드 최초로 도전장을 던졌다.
■1년새 달라진 제네시스 위상
라 사르트 서킷 한편에 마련된 '제조사 빌리지'는 르망을 찾은 팬들이 좋아하는 브랜드의 기술력과 색깔을 가까이서 만나는 공간이다. 포르쉐, 맥라렌, BMW, 알핀, 푸조, 포드, 도요타 등 내로라하는 완성차 브랜드들이 저마다 부스를 차리고 관객을 맞았다.
그 빌리지의 입구를 지킨 것이 제네시스였다. 지난해엔 도요타 부스 옆에 자리했지만, 올해는 빌리지에 들어서는 모든 관객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자리에 300㎡ 규모의 부스를 폈다. 1년 새 달라진 위상이 부스의 위치에서부터 드러났다.
부스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건 단연 GMR-001이었다. 마그마 오렌지에서 차량 뒤쪽으로 갈수록 짙어지는 붉은 그라데이션은 제네시스의 한국적 뿌리와 에너지를 형상화했고, 차체 측면을 가로지르는 한글 '마그마' 레터링이 시선을 붙들었다. 단순한 경주차가 아니라 제네시스의 고성능 정체성을 색과 글자로 새긴 차였다. 차량은 17번과 19번 두 대로, 19번에는 흰색 하이라이트를 더해 구분했다. 차량을 본 관객들 사이에선 "뷰티풀(beautiful)"이란 감탄이 연신 터져 나왔다.
루크 동커볼케 현대차그룹 최고디자인책임자(CDO) 겸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사장)는 "양산차를 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늘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며 제네시스만의 고유함을 지키려 했다"며 "글로벌 디자인 조직이 레이싱 팀과 긴밀히 협업해 올 시즌 최대 무대인 르망 24시간을 위한, 강렬하면서도 가벼운 리버리를 완성했다"고 말했다.
■페라리·포르쉐 사이, 마그마에 모인 인파
경기 당일, 트랙을 직접 걸으며 경주차를 코앞에서 만나는 '그리드 워크'는 축제의 절정이었다. 페라리와 포르쉐, 도요타 등 쟁쟁한 강호의 차량이 늘어선 가운데, 마그마 빛 GMR-001 앞에는 유독 두꺼운 인파가 몰렸다. 익숙한 유럽·일본 브랜드 사이에서 처음 보는 한국 브랜드를 향한 현지 팬들의 호기심이 그대로 드러난 장면이었다. 차량을 배경으로 카메라 셔터가 쉴 새 없이 눌렸다.
르망 24시간은 1923년 시작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내구 레이스로, 모나코 그랑프리·인디애나폴리스 500과 함께 '모터스포츠 트리플 크라운'으로 꼽힌다. 단순히 가장 빠른 차를 가리는 경기가 아니다. 세 명의 드라이버가 번갈아 24시간을 쉬지 않고 달리는 동안 차량은 극한의 내구 시험을 치른다. 작은 기계 결함이나 사고 하나로 중도 이탈하는 차가 속출해, 끝까지 살아남아 완주하는 것만으로도 기술력과 신뢰성, 팀워크를 입증하는 무대로 통한다.
오후 4시 출발 세리머니에서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가 군악대의 연주로 울려 퍼지고, 출전국 국기를 든 기수들이 차량 앞에 도열했다. 르망 24시간이 완성차 브랜드 간 자존심 대결이자 국가 간 기술 경연임을 보여주는 의식이다. 그 대열의 한 자리를 태극기가 채웠다.
이윽고 출발 신호와 함께 경주차들이 굉음을 토하며 출발선을 박차고 나갔다. 발끝부터 타고 오르는 진동과 귀가 찢어질 듯한 배기음이 온몸을 때렸다. 타이어가 노면을 긁으며 타는 듯한 냄새가 코끝을 파고들었고, 관중석을 가득 메운 함성까지 뒤엉키며 오감을 자극했다. 그 사이로 마그마 빛 GMR-001 두 대가 붉은 잔상을 남기며 트랙 속으로 사라졌다. 한국 브랜드가 한 세기 넘게 이어진 르망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순간이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가장 빠른 차가 아니라 24시간을 견뎌내는 차가 르망에서 승리한다"며 "완주를 통해 얻은 품질과 내구성, 신뢰성에 대한 교훈을 양산차 개발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우리가 이 무대에 선 이유"라고 말했다. eastcold@fnnews.com 김동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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