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시론] 차량 5부제와 음주운전/김동률 KDI 연구위원
나는 이번 겨울이 그리 춥지 않게 지나가고 있는 것을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행여 한파가 몰아 닥칠까 남 몰래 노심초사하기도 한다. 난방비가 걱정이 돼서도 아니고 겨울이면 부쩍 힘들어 하는 노모의 건강 때문은 더 더욱 아니다. 관공서에서 아침 일찍부터 덜덜 떨며 정문을 지키는 방호원으로 불리는 수많은 하급 공무원 때문이다. 이들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5부제를 위반하는 차량을 돌려보내느라 쩔쩔매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6월부터 행한 차량 5부제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단지 국제유가가 올랐다고 해서 관공서에 차량 출입을 막을 권리가 정부에 있는지는 의문이다. 세금을 꼬빡꼬박 내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관공서에 출입할 수 있어야 하지만 부제에 걸린 차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의회의 입법 없이 일방적으로 차량 출입이 거부되는 나라를 두고 민주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유가는 이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앞장서 감산에 나설 만큼 떨어졌지만 5부제는 여전히 시행되고 있고 소비자 유가는 엄청난 세금부담 때문에 내린 만큼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나라를 정말 좋은 나라라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까.
주말 오후 서울로 진입하는 동부간선도로에 조금 못미쳐 음주운전 단속을 받았다. 주말 골퍼들의 음주운전을 단속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같은 공권력 행사는 또 얼마나 정당할까. 극소수 주말 골퍼의 음주 단속을 위해 도로 전체를 막고 가족 나들이에 나선 전체 운전자에게까지 음주 측정기를 들이미는 나라, 시민 전체를 잠재적인 범법자 (음주운전)로 보고 하는 일제 단속, 우리는 정말 이런 나라에 세금을 내야할까.
예전에는 그랬다. 담배 가게를 새로 내려면 옆 담배 가게에서 얼마 이상 떨어져야 하고 지방마다 특정 소주를 마셔야 하고 신문은 1도 1사를 원칙으로 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그때는 그런 일들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먼 옛날 얘기가 아니다. 물론 사이비 언론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거나 상대적으로 영세한 지방 소주사의 도산을 막는다거나 명분은 대체로 그럴 듯했다. 그러나 그 당시 권위주의 정부는 민주국가라고 스스로 자부하지도 않았고 시장경제를 한다고 떠벌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정부는 자유시장 경제를 주창하고 있다. 그래서 중고생 교복이 70만원을 훌쩍 넘기지만 자유시장 경제체제라 어찌할 수 없다고 억울해한다. 아파트 분양가 공개도 시장경제 체제에 곤란하다는 게 정부의 일관된 주장이고 이같은 정부의 주장은 대체로 맞다.
그러나 자유시장경제를 하는 나라에서 5부제를 강제 시행하고 또 시민의 권리를 일방으로 제한하는 것은 무엇인가. 벌건 대낮에 가족 나들이 나서는 가장에게 음주측정기를 불쑥 들이미는 나라가 진정 민주국가일까.
개발연대에는 ‘공동체 우선(Communitarianism)’ 이라는 구실로 정부의 간섭이 국민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밀고 들어왔다. 그러나 선진국일수록 규제보다는 자유로움이 지배하고 있다. 규제는 시장 자율보다 효과를 거두지 못하거나 더 큰 폐해를 초래하고 있고 선의로 도입된 규제도 결국 그 선의를 배반하는 경우가 오히려 많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수많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것들을 규제를 통해 해결하려고 할 때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 그만큼 멀어지게 됨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안다. 규제는 큰 정부에서 나온다. 그래서 시장경제 실현과 규제 완화는 언제나 ‘작은 정부’를 실현하는 데서 비롯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작은 정부론은 과거 서구의 여러 나라에 해당하는 얘기지 우리에게 맞지 않는 이론”이라고 주장하며 “정부가 챙기는 것이 (오히려 시장보다) 낫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아예 “작은 정부를 공약하지 않는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한다고 밝혔지만 들리기에는 ‘큰 정부(Massive Government)’로 들린다. 문제는 대부분의 큰 정부는 정부가 하지 말아야 할 일까지 사사건건 참견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참여정부의 남은 1년이 자못 궁금해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