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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기준이 ‘동네북’인가

안상미 기자
파이낸셜뉴스

회계기준이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

업계마다 회계기준을 바꿔달라고 아우성이기 때문이다. 당국도 업계의 요구에 맞춰 회계기준을 입맛대로 바꿀 수 있도록 허용했다. 금융위기와 함께 폭락해버린 금융상품의 평가손실도 실적엔 잡히지 않게 됐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시작된 신용경색이 이제 국내는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을 흔들면서 엉뚱하게도 그 파동이 회계기준으로 흐르고 있다. 이런저런 손실로 실적이 대거 악화된 기업들이 이 모두를 ‘회계’ 탓으로 돌리면서다. 기업들의 ‘읍소’에 당국이 기존 회계처리 기준에서 이리저리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는 식으로 이를 수용되면서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을 앞두고 ‘누더기’ 식 손질이 이어지고 있다.

비상장 중소기업의 경우 파생상품 평가손익을 기재하지 않을 수 있는 특례를 소급적용할 수 있도록 했고 조선사 등은 파생상품의 회계처리 방법을 바꿀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다 기업들의 금융상품 평가손실 민원에 대해서는 금융상품의 분류범주를 변경할 수 있도록 수용했다.

■회계, ‘불리하면 바꿔라’

회계기준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키코(KIKO)로 인해 중소기업들의 평가손실이 눈두덩이처럼 불어나면서다. 일부 기업은 관련 손실로 자본잠식이 우려되면서 파생상품 평가손익을 재무제표에 기재하지 않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당국에 요청했다.

기존 중소기업들을 위한 ‘기업회계기준서 제14호 중소기업 회계처리특례’의 경우 파생상품 손익을 기재하지 않을 수 있게 했기 때문에 이것이 해결사가 됐다. 발생한 손실을 기재하지 않는 것은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한 일. 따라서 일단 비상장 중소기업에만 소급적용토록 했지만 상장 중소기업들의 요구는 끊이질 않고 있다.

조선업이 앞장서서 바꿔버린 파생상품 평가 회계처리 방법도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재무제표에 이득이 됐을 때는 그대로 뒀다가 환율 상승으로 손실이 되니까 바꾸자고 나섰기 때문이다. 조선업체가 혜택을 보게 되면서 건설은 물론 다른 업계도 이 방법으로 부채비율을 낮출 채비를 하고 있다.

업계는 이런 처리가 회계기준 위반은 아니라고 말한다. 원래 있던 회계원칙에 어긋난 것도 아니고 다른 방안을 찾았을 뿐이라는 것. 또 현재 그렇게 회계처리를 하고 있다는 일부 해외 사례도 보탬이 됐다.

하지만 외견상으론 국제 회계기준에 부합한다지만 ‘이익은 잡고 손실은 감추는’ 식으로 회계방식을 땜질하면서 한국의 회계 신인도가 하락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부작용 어떻게 감당하려고

감독당국은 조만간 금융상품의 분류범주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현재 논의 중인 대로 단기매매 증권을 매도가능 증권이나 만기보유 증권으로 재분류할 수 있도록 할 경우 일부 금융상품은 시가가 아닌 공정가액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채권가격 등의 하락에 따른 평가손실로 고민하는 기업들은 이 방안 하나로 실적 악화에서 개선으로 단번에 탈바꿈할 수 있는 것.

회계기준원 관계자는 “우리나라도 금융상품의 분류범주를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국제 회계기준 변경에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회계기준이 외부 상황에 따라 빈번하게 바뀌는 것은 바람직하진 않지만 국내기업들이 다른 기준으로 불이익을 받지는 않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제 기업들은 눈에 보이는 재무제표상으로는 부담을 덜게 됐다. 그러나 이를 넘어 회계 신인도 측면에서는 부담이 커지게 됐다. 외국인투자가 입장에서는 굳이 주석까지 꼼꼼히 챙겨보지 않는 한 점점 더 못 미더운 재무제표가 될 수 있기 때문.

회계업계 관계자는 “기존 원칙에 위반되는 것은 없다고 해도 회계기준을 입맛에 맞게 바꾸는 것은 국가 회계 신인도를 추락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mail protected] 안상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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