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변호사의 관점
가끔씩 같은 사무실 변호사들끼리 쟁점이 되는 사건에 대해 함께 논의할 때가 있는데 다들 바쁜 경우가 많아 길게 이야기할 짬을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묻고자 하는 변호사가 사건의 사실관계를 줄줄이 이야기할라손치면 듣고 있던 변호사는 말을 끊고 '우리는 어느 쪽인데'라고 되묻는다. 즉 변호사는 판사가 아니니 일방의 대리인일 수밖에 없는데 일단 사실관계는 둘째치고 어느 편에서 생각해야 하느냐가 논의의 시작점인 것이다. 가령 원고냐 피고냐 아니면 고소인이냐, 피고소인이냐. 그런 다음에야 사건의 사실관계를 재조명하기 시작한다. 상대방이 주장하는 사실관계는 다툼 없는 사실 내지 입증이 되기 전까지는 법정에서 아직 사실이 아니며 상대방이 원용하는 판례는 우리 사건과 사실관계가 달라 적용되지 않는 판례거나 유사한 판례가 있어 우리 사례에 적용된다 치더라도 전원합의체 판결로 바꿔야 하는 아주 부당한 판례인 것이다.
판.검사 위주의 교육 중심인 사법연수원을 갓 수료한 변호사 1, 2년차 때에는 필자가 이런 변호사로서의 마인드가 아직 갖춰지지 않아서 그런지 의뢰인과 상담하다 '법규정, 판례에 의하면 이 사건은 패소이니, 소송을 진행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심지어는 '왜 안 되는 소송을 하려고 하느냐'고 마치 판사인 양 쉽게 단언하고 승패를 예단했으나 막상 변호사 연차가 쌓이다 보니 판결문에 나타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이른바 '입증책임원칙에 의해 걸러진 사실'들이었다. 그러한 원칙들에 의해 의뢰인에게 유리한 사실을 만드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인 것이다. 어느 선배 변호사의 이야기다. 의뢰인이 시무룩해하면서 '법규정에 이러이러하게 불리한 내용이 있으니 이 사건 애초 질 사건 아니냐'고 얘기하자 그 변호사가 '어느 법에 그런 규정이 있느냐'고 도리어 다그쳤는데 의뢰인이 막상 해당 법 규정을 제시하자 그 선배 변호사는 "아니 이런 부당한 법이. 이거 위헌이야. 헌법소원해야겠구먼"이라고 했단다. 웃어넘길 수 있겠지만 이게 변호사의 관점이다. 애초 넘어뜨릴 수 없어 보이던 철옹성 같은 판례, 다툼의 여지가 없어 보이던 법조문 하나하나에 변호사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잽을 조금씩 날리다 보면 그것이 새로운 전원합의체 대법원 판례가 되는 것이고 위헌법률이 되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한국을 바꾼 시대적 판결 12건'에 선정된 '여성을 종중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종중의 조치가 부당한 여성 차별에 해당되고 국가의 기본적 법질서에 어긋난 것'이라고 판시한 2005년 전원합의체 판례다. 이러한 판례 변경은 법관의 치열하고 심도 있는 결단에 의해 이뤄지기는 했겠지만 당연하게 인정됐던 관습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미혼인 여성 또는 결혼해 출가한 여성과 그 자손은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1992년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감히 도전장을 내민 용인이씨 사맹공파 여성 5명과 그 변호사의 소장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필자 또한 저축은행사태 당시 금융상품 성격 자체가 은행이 파산되면 전혀 원금 회수가 되지 않는 후순위사채에 대해 피해자의 법적 구제가 될 수 없을까 치열하게 고민했고 이에 소송을 제기해 최초로 법적 구제에 대한 판례를 얻어낸 바 있다. 이러한 이유로 새로운 생각을 거침없이 제시할 수 있는 변호사가 나는 좋다. 상식에 도전하는 일방의 대리인이 되고 싶다.
이성우 법무법인 중정 변호사
◇약력 △40세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 △동 대학원 석사과정 △법무부 중소기업법률자문단 변호사 △Seoul Global Center 자문 변호사 △한국공정거래조정원 법률지원 변호사 △서울변호사협회 소비자보호대책특별위원회 위원 △법무법인 중정 변호사(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