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최원득 후손 찾습니다"
울산 3·1운동 독립유공자 2005년 훈장 추서됐지만 10년 지나도록 전달 못해
올해로 3·1절이 96주년을 맞은 가운데, 울산 병영 3·1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특히, 지난 2005년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대통령표창)이 추서됐지만, 10년이 지나도록 후손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1일 중구청과 병영삼일사봉제회(회장 김기환)에 따르면 최원득(崔元得) 애국지사는 19세의 나이로 지난 1919년 4월 4월 병영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병영 3·1만세운동은 지역 청년들의 주도로 병영동 일신학교(현 병영초등학교)에서 주민 및 학생 등이 대거 참여해, 축구경기 시축을 신호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면서 시작됐다.
이틀간 열린 만세운동은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4명이 순국하고 3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최 지사를 포함, 19명이 체포됐다.
일제는 구속된 22명에게 보안법 위반혐의를 씌워 17명에게는 6개월~2년의 징역형을, 최 지사 등 5명에게는 태형 90도(대)를 선고했다.
김기환 회장은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목격한 유학생들이 고향으로 내려와 한 달간 준비 끝에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높게 차 올린 것을 신호로 일제히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며 "많은 애국지사들이 일제의 총칼에 목숨을 잃는 등 갖은 고초를 겪었다. 갑오개혁때 야만적 행위로 폐지됐다 일제때 부활한 태형은 얼마나 매가 매운지 이 형을 받고 장독으로 10년도 못 살고 돌아가신 분이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유족을 찾지 못하다 보니 최 지사에 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 2007년 봉제회에서 발간한 '병영3·1독립운동사' 자료에 따르면 아호가 송제(松齊)고 본관이 경주이며, 1900년 12월 11일 태어나 1930년 2월 4일 30살의 나이로 순국했다.
또, 본적은 당시 주소로 경상남도 울산군 하상면 서리 276번지(현 중구 서동)이고, 가족관계는 아버지 최용만(崔用萬), 어머니 박수임(朴壽任)의 장남으로, 부인 박난이(朴蘭伊)여사 사이에 1남 1녀를 뒀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 회장은 "병영만세운동으로 건국훈장 애국장 등 26명이 독립유공자 국가포상이 이뤄졌다. 이들 중 순국한 엄준 열사는 당시 부모 및 처자식 없는 것으로 알려져, 지난 2005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된 최 지사만이 유일하게 10년이 지나도록 후손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중구청은 병영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순국하거나 옥고를 치른 26명의 애국지사를 추모하기 위해, 지난 1987년 동동에 삼일사당을 지어 위패를 모시고 매년 제를 지내고 있다.
김 회장은 "유족회 차원에서 보훈청에 대신 훈장을 수령하려 했지만 친인척이 아니면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던진 선조들의 고귀한 정신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 늦기 전에 반드시 그분의 후손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김기열 기자




